천불천탑에 서린 선인들의 투박한 손길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전남 운주사를 찾아
▲ 전남 화순 운주사의 9층석탑 ⓒ 서종규
1980년대 초 황석영은 <장길산>의 끝 부분에서 미륵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하룻밤에 천불천탑을 세우는데 미륵의 모습을 알 수 없어서 일손을 멈추고 있는 일꾼들을 묘사한다. 이야기는 그들이 손을 놓고 있을 때 늙은 노비가 나서 "미륵님은 바로 자네들의 모양"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일손을 놓았던 노비들은 다시 용기가 나서 이번에는 자기 모습대로 자기 미륵님의 모양을 만들어 나갔다. 골짜기 안에는 자기네처럼 성도 없고 이름도 없는 제멋대로 생긴 백성들이 꽉 들어차고 있었다.
- 황석영의 <장길산> 중에서
▲ 운주사의 석불 ⓒ 서종규
또 바위 밑에 어김없이 서 있는 많은 석불들도 세련하지는 않다. 투박한 손길이 정을 두드려 파낸 석불들이다. 어떤 것들은 거의 얼굴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것도 있고, 어떤 것들은 코도 떨어져 나간 것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바위 밑에 그대로 서 있다.
▲ 자연석 그대로 쌓은 운주사의 탑 ⓒ 서종규
▲ 화순 운주사의 탑들(보물 제798호인 원형다층석탑, 보물 제 797호인 석조불감) ⓒ 서종규
사실 1980년대에 운주사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절이다. 그런데 1984년 황석영이 <장길산>을 완성하면서 마지막 부분에 운주사의 전설을 그대로 차용하면서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장길산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었고 덩달아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1984년부터 1991년까지 네 차례 발굴조사와 두 차례 학술조사를 벌였다. 그래서 오늘날의 운주사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내가 처음 찾았던 1980년대 운주사의 모습은 아주 초라하였다. 교통편도 거의 없어서 화순에서 하루에 몇 번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시외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운주사가 나오는데,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대웅전 등 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입구에 우람하게 서 있는 일주문도 없었다.
지금 운주사 앞에 펼쳐진 탑들은 모두 논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많은 석불들도 논 가운데나 논두렁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어떤 석불은 논두렁 방천에 쓰인 것도 있었고, 개울둑에 사용된 것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정겨운 모습이었다. 여기저기 서 있는 석불들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 자신의 멋을 드러내고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세련된 석불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눈과 코, 귀와 입 등 달릴 것은 다 달린 석불들이 아무 곳에서 그대로 서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틈만 나면 운주사를 찾았다. 그냥 그 석불들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내 마음에는 평안함이 느껴졌다. 그 석탑들을 만져만 보아도 투박함에서 전해오는 선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개울을 뛰어 넘고 논두렁을 타고 가면서 하나하나 석불과 석탑과 만나는 동안 나는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 전남 화순군 운주사 바위 밑 석불들 ⓒ 서종규
▲ 전남 화순 운주사의 항아리 모양을 한 발형다층석탑 ⓒ 서종규
깜짝 놀란 사실 중 하나가 칠성바위이다. 칠성바위는 북두칠성의 별 크기에 따라 돌을 둥그렇게 깎아서 북두칠성처럼 땅에 배열해 놓은 돌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 일곱 개의 돌 중 두 개의 돌에 돌을 쪼갠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돌에 일정한 길이의 홈을 파 나무를 박아놓은 뒤 물을 뿌려 놓으면 나무가 물을 머금고 커져 돌이 쪼개진다. 운주사를 정비한 후에 그 칠성바위를 보니 일정하게 파 놓은 홈에 시멘트를 부어 메워 놓았다. 그래서 지금도 그 시멘트가 칠성바위 위에 그대로 남아 있다.
물론 운주사 터를 정비하고 복원한 사람들의 노력이 대단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석불들의 머리나 몸의 일부분, 그리고 많은 석탑의 탑신이나 돌들을 무더기로 땅에 놓아 둔 것을 볼 수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다층석탑 아래에 석불의 머리나 몸의 일부분을 쌓아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나가는 아이가 돌을 넘어뜨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바로 아무렇게나 쌓아 둔 석불들의 머리나 몸의 일부분을 넘어뜨린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곳을 밟고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곳에 앉기도 한다. 차라리 논두렁이나 개울가에 그대로 두었더라면 그들에게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자유라도 있었을 것이 아닌가?
▲ 군데군데 무더기로 쌓여진 석불의 얼굴이나 몸의 부분, 그리고 탑의 일부분들 ⓒ 서종규
▲ 돌을 쪼개다가 그대로 만든 석불의 얼굴 ⓒ 서종규
석조불감 안에 있는 불상은 2구가 등을 맞대고 있다.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이나 방을 뜻하는 것으로 석조불감과 쌍배불상의 모습이 특이하다. 석조불감 옆에 있는 원형다층석탑이나 항아리 모양을 한 발형다층석탑도 특이한 형상이다. 또한 땅에 박힌 바위에 그대로 정을 쪼아 만든 부부 와불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듯 운주사의 석불이나 석탑들은 모두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불국사의 다보탑처럼 세련된 미는 부족하지만 그 특이함은 대단하다. 전형적인 석탑의 모습을 완전히 무시한 것 같은, 맷돌을 그대로 포개 놓은 것 같은, 거지탑이라 이름 붙여진 석탑처럼 자연석 그대로 차곡차곡 쌓아 놓은, 규모가 작은 바위들을 그대로 9층까지 쌓아 놓은 탑 등 모두 특이하다.
그러나 그 특이함보다도 숙련된 석공의 솜씨가 아닌 것 같은, 황석영의 장길산에서 표현했던 천대받던 민중들이 만들었을 것 같은, 평면적이고 토속적인 얼굴모양, 돌기둥 모양의 불상의 신체, 어색하고 균형 잡히지 않은 손과 팔, 어색한 옷주름이나 탑의 문양, 둔중하거나 투박한 모습들이 모두 운주사 석불과 석탑이 주는 매력이다.
▲ 전남 화순 운주사의 명당탑 ⓒ 서종규
바위 아래 모인 석불 앞에서 곱게 예를 올리고 나오는 할머니는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 줄을 미처 몰랐다”고 몇 번이나 감탄한다. 사방에 석불이요 석탑이니 불심이 지극한 그 할머니의 마음에 큰 감동과 불심이 솟구쳐 올랐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석탑이나 석불을 전시해 놓은 것 같은 운주사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이다. 불심을 지닌 사람은 신앙으로서, 또 자연인은 석탑과 석불이 내미는 선인들의 투박한 손길을 잡아 보려고 찾기도 한다.
▲ 곳곳에 석탑과 석불이 있는 전남 화순 운주사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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