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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단풍이 유혹하는 화려한 가을

경북 청송군 주왕산 국립공원을 다녀와서

등록|2007.11.07 10:48 수정|2007.11.07 15:42

어디든 떠나고 싶은 가을이다. 주왕산 제3폭포에서.  ⓒ 김연옥

가을이다.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 어디든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일상에 그저 머물러 있기에는 마음이 너무 쓸쓸하다. 메마른 내 마음에도 알록달록 예쁜 색깔을 덧칠하고 싶어졌다. 그렇지 않고서는 가을의 하루하루가 참으로 외롭기만 하니까.
신비로운 왕버들이 있는 주산지로 향하다

주산지에도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었다.  ⓒ 김연옥

지난 11월 3일에 나는 가까이 지내는 콩이 엄마와 함께 주산지(경북 청송군 부동면 이전리)가 있는 주왕산 국립공원으로 떠났다. 내가 그때까지 기억하고 있던 주산지는 저녁 어스름이 깔려 오면서 겨울 추위로 얼어붙은 고요한 풍경이었다. 차가운 수면 위로 흔들리듯 가지를 뻗고 있던 왕버들의 묵묵한 모습이 한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오전 11시께 마산에서 출발하여 오후 2시 30분에 주산지에 도착했다. 주왕산으로 단풍놀이 나온 사람들로 차가 많이 밀렸다. 주산지는 조선 경종 때(1721년)에 완공된 농업용 저수지라고 한다. 6천여 평 면적으로 수령 1백 년을 훨씬 넘은 왕버들들이 물속에 서 있는 풍경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이 촬영된 곳으로도 유명한 주산지. 그날 주산지에는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 풍경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슬픈 일, 기쁜 일에도 호들갑을 떨지 않고 그저 지켜 보듯 말없이 서 있는 왕버들에게서 우리는 과연 어떤 깨달음을 얻고 가는 것일까. 

▲   ⓒ 김연옥

우리는 주산지에서 오래 머물 수 없어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주산지 입구에서 콩이 엄마는 청송 사과를 한 봉지 가득 샀다. 남편의 직장 관계로 청송에서 8년 동안 살았던 적이 있는 콩이 엄마 말로는 청송 사과 맛이 기막히다고 했지만 지난 시절의 그리움이 더 컸으리라.

주왕산 단풍 보며 빨간 립스틱 짙게 바르던 콩이 엄마

청송 주왕산에서.  ⓒ 김연옥

빨간 사과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길가 과수원들의 그림 같은 풍경에 이따금 취하면서 주왕산 대전사(경북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50분께. 시간이 늦어 우리는 서둘러 대전사 경내로 들어섰다.

주왕산(720m)의 첫인상을 말해 보라고 하면 아마 대전사 보광전(경북유형문화재 제202호) 뒤로 우뚝 솟아 있는 기암(旗岩)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범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어 경이로운 느낌마저 주는 아름다운 기암은 주왕산의 상징적인 바위라 할 수 있다.

대전사 보광전 뒤로 우뚝 솟은 기암.  ⓒ 김연옥

주왕산은 기기묘묘하게 생긴 웅장한 바위들이 많다. 그래서 산의 형상이 돌로 병풍을 친 것 같다 하여 본디 석병산(石屛山)이라 불렀는데, 중국 당나라 때 주도(周鍍)라는 사람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주왕산(周王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자신을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면서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반기를 들었던 주도가 크게 패하여 깊고 험준한 주왕산까지 쫓겨 와서 숨어 지냈다고 한다. 이에 주왕을 없애 달라는 당나라 왕의 청을 받아들인 신라 왕이 마일성 장군을 보내 그 무리를 해치우게 했다.
결국 네 명의 아우와 합세한 마일성 장군의 화살에 맞아 주왕은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었다는 거다.

대전사(大典寺)라는 절의 이름도 고려 태조 2년(919년) 눌옹 스님이 그곳에서 주왕의 아들인 대전도군(大典道君)의 명복을 빌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가을 단풍은 아름다운 유혹이다!  ⓒ 김연옥


▲   ⓒ 김연옥

나는 울긋불긋 단풍이 곱게 물든 예쁜 길을 걸어가게 되어서 행복했다. 반갑게도 아기 다람쥐가 쪼르르 지나갔다. 고운 단풍 길에서 다람쥐까지 보게 되어 더욱 행복해졌다. 우리는 보는 방향에 따라 사람의 얼굴 같기도 하고 떡을 찌는 시루 같기도 한 시루봉, 청학과 백학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학소대 등을 지나 제1폭포에 이르렀다. 몇 번이나 봐도 늘 새로운 느낌을 주는, 한 폭의 그림 같이 예쁜 폭포이다.

시루봉(앞)에도 늦가을이 짙게 내려앉았다.  ⓒ 김연옥


주왕산 제1폭포. 그림 같은 풍경이다.  ⓒ 김연옥

벌써 오후 5시가 되어 가고 있어 나는 제3폭포로 올라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콩이 엄마가 갑자기 조그만 바위에 걸터앉아 립스틱을 바르고 있는 거다.

의아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는 내게 콩이 엄마는 "화려한 색깔의 단풍을 보니 문득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자연을 닮고 싶은 여자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콩이 엄마는 마음이 참 여유롭고 낭만적인 사람이다.

콩이 엄마, 조수미씨. 빨간 립스틱 바르고, 사진 찰칵!  ⓒ 김연옥

제3폭포에 도착하니 어둠이 점점 내려앉았다.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고 해서 곧바로 내려가기로 했다. 어둠을 뚫고 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눈에 불을 켜고 걸어가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도 콩이 엄마는 언제 봤는지 다람쥐가 막 뛰어갔다고 내게 말해 주었다. 그러면서 폭포로 올라가는 길에 도토리를 싹쓸이하듯 주워 가는 사람들을 봤다고 했다. 사람들의 욕심이 왠지 무섭다.

우리는 주차장 부근 음식점에 들어가서 점심 겸 저녁을 먹은 뒤 마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가을 단풍은 아름다운 유혹이었다. 나는 그 화려한 유혹에 몇 번이고 빠져들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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