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볼모정치', 경선승복은 어디로?
[유창선 칼럼] 이명박·이회창에 대한 분명한 입장 밝혀야
▲ 이명박의 50% 벽을 깬 이회창 전 총재. '오만의 극치'라며 분을 토해 낸 박근혜 전 대표. 우연의 일치일까? 이명박을 협공하는 모양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박근혜 전 대표는 '이회창 출마'의 최대 수혜자이다. 이명박 후보는 직격탄을 맞았고, 정동영 후보도 문국현 후보도 유탄을 맞았지만, 박 전 대표만은 몸값이 상한가를 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수진영 내부의 대선판도가 박 전 대표의 선택에 달린 상황이 되어버렸다. 만에 하나 박 전 대표가 이회창 전 총재와 연대할 경우, 이명박 우위의 대선구도가 무너질 수 있다.
봇물터진 박근혜측 요구
박 전 대표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보수진영이 두 동강 나고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십분 활용해서 박 전 대표측은 이 후보를 향한 강력한 압박에 나서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이재오 최고위원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사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가운 말만 남겼을 뿐이다.
이 최고위원의 사퇴없이는 이 후보측과의 화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박 전 대표측의 입장이다. 이명박 후보를 향한 박 전 대표측의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방호 사무총장의 사퇴도 요구하고 나섰다. '이회창 전 총재 대선자금 수첩 발언'으로 이 전 총재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만들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이다. 그러나 결국 이 후보측의 당권 장악을 막겠다는 의미가 실린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가 하면 당권·대권 분리 얘기도 나오고 있고, 심지어 내년 총선 공천권에 관한 말도 나오고 있다. 내친 김에 갈 데까지 가보자는 모습같기도 하다. 지금 박 전 대표측이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커밍아웃'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후보측은 난감한 표정이다. 이 전 총재가 이 후보의 표를 가져가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든 박 전 대표를 껴안고 가야하는 다급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 최고위원을 사퇴시킨다 해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함을 이 후보측은 알고 있다. 그래서 이대로 끌려갈 수만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불난 집에서 튀밥 얻어먹겠다는 심보"라는 불만이다.
양측의 갈등이 충돌로 가느냐, 봉합으로 가느냐에 따라 대선판도가 커다란 영향을 받게되어 있다. 아직은 서로가 봉합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만, 그래도 좀 더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의원이 비공개 회동을 마친 뒤, 함께 나오고 있다. ⓒ 이종호
경선승복 선언은 유효한가
그런데 후보경선에서 만족할만한 흥행효과를 거두고 깨끗한 승복이 이루어졌던 한나라당에서 왜 이같은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명박 후보의 정치력 부재를 지적하는 시각이 있다.
"이명박 후보가 맞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박근혜 전 대표가 상징하는 한나라당의 ‘기존 세력’과 타협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성한용 "이명박 위기 본질은 ‘정치’의 부재" <한겨레> 11월 6일자)
부분적으로는 수긍이 가는 지적이다. 경선 이후 패자의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한 최종적인 책임은 승자에게 향할 수밖에 없다. 승자 이명박은 패자 박근혜를 포용하지 못하는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경선승복 약속에 대한 실천의 문제이다.
박 전 대표는 경선결과가 발표된 직후, 아무런 조건없이 깨끗한 승복을 선언했다. 박빙의 차이로 패배했는데도 주저없이 승복선언을 하는 박 전 대표의 모습은 매우 강한 인상을 남겼다. 평소 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분명한 경선승복의 모습에는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그 이후 박 전 대표는 침묵모드로 들어갔다. 막상 이명박 후보에 대한 어떠한 가시적 협력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박 전 대표측에서는 이 후보측이 화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를 따지고 있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승자는 승자대로, 패자는 패자대로 각자 자기의 책임을 다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협력에 '조건'과 '대가'가 붙을수록 경선승복의 정신은 퇴색되게 되어 있다. 선대위의 책임을 맡고 있는 인사들에 대한 사퇴요구, 당권보장, 공천권…. 이런 요구들이 조건으로 따르는 승복이라면 그것은 이미 진정한 의미의 승복이라 보기 어렵다.
박근혜, 이제 분명한 입장 밝혀야
최근 박 전 대표측이 보이고 있는 모습은 '볼모정치'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로 박 전 대표의 손에 대선정국의 열쇠가 쥐어진 상황을 볼모로, 정치적 실익을 챙기기 위한 요구들을 꺼내놓고 있다는 의미이다.
박 전 대표의 깨끗한 경선승복 모습에 박수를 보냈던 사람들에게는, 무엇인가 속은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드는 상황이다.
박 전 대표가 '차차기'를 기약하려는 정치지도자라면 정치적 저울질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잘못이다. 경선승복 선언을 조건없이 이행하든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면 차라리 경선불복 선언을 하는 것이 낫다.
이러저러한 요구조건들을 내놓으며 '창풍' 정국을 통해 실익을 챙기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경선승복의 정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로 정당정치의 기본이 무너지는 대선이 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더 이상 '모호성의 전략'으로 자신의 몸값을 높이려 해서는 안된다.
이제는 이명박 후보, 그리고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한 자신의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것이 정당정치의 기본을 지키는 일이다. 누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하고 하는 정치공학의 차원을 넘어, 우리 정당정치의 원칙을 지키는 일이 우선적인 과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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