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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소환을 대선 의제로!

진보세력이 주도하는 새로운 대선의제 제안

등록|2007.11.07 13:45 수정|2007.11.07 13:57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대선판은 어이없게도 이명박과 이회창의 대결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이 땅의 진보세력이 그동안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대중활동을 가장 헌신적으로 펼쳐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신자유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대선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 둘은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진보세력이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해온 정책을 고수하는 인물들이다. 여론에서 사라진 진보정당, 진보적 정체성의 가장 반대쪽에 존재하는 두 후보의 경합. 이런 대선 구도는 우리에게 답답한 갈증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 그동안 진보세력이 가장 반대해왔던 성향의 두 정치인이 대선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은 진보가 처한 '영향력 상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새로운 구도형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진보세력의 정치전략의 부분적 실패와 수구세력 정치전략의 완전한 성공에 적지 않은 원인이 있다.
진보진영은 그동안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대미굴종외교에 대해 강하게 비판해 왔다. 그러나 진보세력의 비판은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에 의해 ‘노무현 반대’라는 결과만이 전달되었을 뿐, 그 의도와 의미는 실종되어 버렸다.

물론 진보임을 자임했던 노무현 정권의 사기성 정치발언이 국민에게 진보적 가치의 혼란을 일으켰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진보세력의 정치전략은 이러한 여러 조건을 감안하고서라도, 노무현 정권을 반대하는 국민정서를 흡입하는데 실패했다. 노무현을 반대하자는 결론적 상황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하기보다, 현실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틀을 국민들에게 제시하는데 주력해야 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이러한 조건을 활용했다. ‘무능한 진보, 부패한 보수’라는 정치담론을 유포하면서 “보수는 부패했지만 유능하고, 진보는 윤리적이지만 무능하다”는 인식을 성공적으로 유포했다. 이런 프레임을 받아들이고 나면 보수의 부패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유능의 근거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진보는 어떤 정치적 성과도 ‘무능’의 틀에 갇혀버리며, 부패사건이 부각되면 “무능한데다 부패하기까지 한”, 국민의 인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최대악’으로 전락한다.

‘노무현은 진보’라는 노무현 정권과 한나라당의 위선적인 합작품의 최대 피해자는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동당은 노무현정권의 실정에 억울하게도 ‘공범자’로 인식되었으며, 이를 피하기 위한 적극적인 ‘반노무현’투쟁의 성과도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이 얻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노무현 정권과 한나라당 등 신자유주의세력의 합작품인 ‘노동귀족’ 논쟁은 소수 노동자들의 고액연봉이 마치 저소득 노동자의 임금을 갈취한 것인 양 포장하여 노노갈등을 불러일으키고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의 대중적 지지를 깎아 내리는데 성공했다.

이런 복합적인 정치구도와 전략이 오늘 날 한나라당의 지지율 고공행진을 만들었다. 부패사건을 아무리 들추어봐도 ‘한나라당은 부패한 대신 유능하다’는 프레임을 강화시킬 뿐이다. 한나라당 정책에 대한 치열한 검증도, ‘무능한 세력이 진행하는 검증’으로 큰 설득력을 전달시키기 못하게 된다.

새로운 틀을 제기하고 이를 주도해야

그렇다면 대선을 맞이하는 진보세력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해답은 현 대선구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것 밖에 없다. 정권심판이나 반수구연합의 틀로 대선에 개입하거나, 대선출마를 선언한 여러 후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대립구도를 형성해내고 이를 주도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대선구도를 형성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가? 대선은 다양한 정치전략이 치열하게 각축하는 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략적인 입장에서만 접근할 수는 없다. 그것은 기득권 세력의 ‘국민 속이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더구나 새로운 정치를 구현하려는 진보세력이 추구할 바도 아니다.

핵심은 진보적 민주주의의 원칙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 원칙이란 국민을, 민중을 정치의 중심으로 세워 놓는 것이다. 정치가 소수 정치전문가의 독점물 아니라면, 사회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는 파수꾼들의 잔치가 아니라면, 평범한 국민과 절대다수의 민중을 정치의 주인주체로 세워 내야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민중운동단체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백만민중대회 또한 그 일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대선’이라는 특수한 시기를 맞아 압도적 다수, 불특정 다수의 국민이 대선 과정의 관람객이 아닌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찾아야 한다.

수구세력이 던져준 계기 - 기초의회 의정비 대폭 인상

그런데 실마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수구세력들이 던져줬다. 대다수 국민이 공분을 자아내고 있는 ‘기초의원 연봉인상’이 그것이다.

11월 1일 행정자치부와 서울시 각 자치구 등에 따르면 의정비 인상여부를 결정한 전국 217개 자치단체 중 212곳에서 인상을 결정했다. 전국 기초의회의 평균 인상률은 39%에 이르며, 서울의 경우 의정비 인상률은 무려 평균 60%에 이른다. 전북 무주 군의회의 경우 98.1%의 인상률을 결정해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강동구의 경우 2868만원에서 5400만원으로 88%를 인상해 서울 최고를 기록했다.
 

▲ 지방의원의 의정비 인상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일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지역 시민단체 ⓒ 경기매일



임금노동자의 한달 평균 월급이 178만원이고, 자영업자의 한 달 평균 소득이 171만원이다. 지금도 대다수 기초의원의 월급은 이들보다 월등이 높다. 평범한 노동자, 자영업자들이 일 년 사이에 39%의 연 수입 상승을 기대할 수 있을까?

대다수 국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귀족노동자 대 비정규노동자의 대립과 같은 허구적 대립구도를 정치‘꾼’들과 일반 국민 간의 대립으로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을만한 쟁점이다. 구의원들은 의정비 인상의 이유로 ‘국장급 연봉’을 주장하고 있지만, 평등주의적 지향이 강한 국민들은 이런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고 있다. 무급 의원이 유급이 된 것도 불과 일 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이런 국민의 불만과 좌절을 단순히 ‘의정비 인상반대’, ‘의정비 삭감 투쟁’ 등의 입장을 제시하는 기자회견 수준의 대응으로는 성공적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국민을 대상화하는 정치선전식 여론확산에만 머물게 된다면 국민의 정치적 소외는 가속화되고 불만과 분노는 정치냉소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다수가 정치에 대해 관심이 멀어지게 되거나 냉소적이 될 때 이득을 보는 것은 수구정치세력 뿐이다. 문제는 ‘명확하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통해 국민의 참여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주민소환제를 강력한 무기로!

우리에게는 올해 5월부터 시행된 ‘주민소환제’라는 ‘제도적 무기’가 있다. 주민소환제는 지방자치 수준에서 주민이 뽑은 선출직 공무원을 주민이 다시 소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얼마 전 시장과 의원에 대한 성공적인 소환추진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은 하남시 사례는, 비록 서명양식의 문제로 무효로 판결되기는 했지만 이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줬다.
지난 8월 한나라당 임인배 의원의 대표발의로 소환사유제한을 핵심으로 한 주민소환제법의 개정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기득권을 누리고자 하는 정치인들에게 상당히 위협적인 수단이다.

현 '주민소환에관한법률'에 따르면 주민소환투표청구권자 총수의 20% 이상 서명을 받으면 소환투표가 상정될 수 있고 유권자의 1/3 투표에 과반수가 소환에 반대하면 선출직 공무원 자리를 박탈할 수 있다. 지금 기초의원 의정비 인상에 대한 국민의 분노수준을 감안할 때, 이는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대선투쟁과 소환추진의 결합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코앞이 대선인데 소환추진이 가능하겠느냐고. 그러나 바로 대선이기 때문에 소환추진이 가능하며, 대선이기 때문에 더욱 더 소환운동을 추진해야 한다.

선거는 어느 때보다 정치세력의 대국민 접촉이 강화되는 시기다. 대선운동을 소환 추진 서명운동과 결합시켜 낸다면 이보다 강한 소환추진운동도, 이보다 강한 대선운동도(물론 소환운동에 찬성하는 정치세력에 한해서만) 없을 것이다.

정치세력이 자신의 정치의제를 국민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정치세력과 국민 사이에 공유된 인식틀이 존재해야 한다(이런 것을 프레임 다리 놓기라 한다). 가장 효과적인 정치선전은 국민을 대상화하는 일방적 선전선동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 정치선전의 내용을 수행하는 일주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의정비 인상반대만을 가지고 대선에 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에겐 입체적 전략이 필요하다. 중앙차원의 선거운동은 비정규직 반대와 삼성비리, 한미 FTA 등 국가적 의제를 확산시켜야 하지만, 지역에서는 지역 나름의 가장 영향력 있는 독자적 의제로 선거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기초의원 의정비 인상에 반대하는 소환추진 서명운동을 벌여나가는 것이 대선국면에서 진보세력이 담당해야 하는 모든 측면의 정치활동과 연계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그리고 대다수 민중)을 배제한 정치엘리트들의 ‘소수지배’에 반대하고, 민중이 주인·주체가 되는 진보정치를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고도의 정치활동이 될 수 있다.

수구정당을 고립시킬 수 있는 유력한 전술

또한, 주민소환제를 대선투쟁과 결합시키는 것은 이상하리만큼 지지율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수구정당의 본질을 폭로하고, 이들을 고립시킬 수 있는 전술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거의 대부분의 기초의원은 특정 정당소속 정치인으로 채워져 있다. 만일 지역에서 대선운동이 주민소환운동과 결합되어 추진될 수 있다면, 또한 그것이 주민들의 압도적 지지속에 전개될 수 있다면, 그들의 선거운동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지역에서 가장 큰 이슈가 의정비 인상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수구정당의 허구적 이미지는 폭로될 것이며, 그들의 선거운동원들은 적대적 주민정서와 맞서야 하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지역에서 작은 계기가 전체 선거판의 흐름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 비록 서명양식의 문제로 법원에 의해 무효로 판결되긴 했지만, 하남시 주민소환 사례는 이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하남시 주민들은 시장 소환에 필요한 서명인수의 두배에 가까운 서명을 받아냈다. ⓒ 민중의소리



총선까지 연계한 주민소환운동

주민소환운동은 비록 대선에서 신자유주의세력의 집권을 저지하는데 실패하더라도, 총선에서 진보세력의 약진을 기대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이를 위해서는 총선까지의 전략적 일정을 모색해야 한다.

가장 위력적인 주민소환운동 방법은 대선운동기간에 의정비 인상을 주도한 의원들에 대한 소환추진 연서명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진보세력의 대국민 접촉도와 지지도는 획기적 반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며, 의제가 선점된다면 보수정당의 선거운동은 무력화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선거법상 대선기간 동안 어떤 종류의 서명운동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선기간에 국한된 단기적 전망으로 주민소환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대선과 함께 총선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선거운동기간에 돌입하기 전에 기초의원 의정비 인상에 대한 반대여론을 유지시키고 주민소환 추진 의사를 확고히 표명해야 한다. 범국민적 압박이 심해지면 의원 스스로 자신들의 결정을 번복할 수 있지만, 이는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최소 목표다. 물론 이것 자체가 거대한 정치적 성과이며, 이는 곧 진보세력의 지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의원들이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고 국민저항에 반발한다면,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정치적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바로 구태 정치판을 총선과 연계하여 뒤집는 것이다.

대선운동에 돌입할 즈음 주민소환을 추진할 지역별 기구를 출범시킬 수 있다. 선거운동기간 중 서명운동을 추진할 수 없음을 알리며 대선 직후 전면적인 주민소환 서명운동을 벌일 것과, 이에 대한 동참 호소를 선거운동의 중심으로 전개한다.

주민소환 추진 기구는 주민소환에 동의하는 모든 정치세력, 모든 단체에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 이 운동 자체가 어느 한 지역, 한 세력의 힘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국적인 ‘바람’이 필요하다. 소환추진 기구는 전국적인 조직으로 제안되어야 한다.

대선운동기간에는 전국적인 주민소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주민소환투표가 총선 전에 시행될 수 있도록 대선 직후 전면적인 서명운동을 펼쳐 나간다. 대선과 총선 사이에 주민의 직접적인 정치참여의 흐름을 형성하고, 이를 진보세력이 주도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힘을 기울여야 한다.

주민소환운동을 위해 형성한 지역조직은 향후 좀 더 높은 수준의 정치활동을 위한 조직으로 발전시켜 내야 한다. 그것은 ‘국가’ 수준이 될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거대한 국민(압도적 민중)의 힘을 정치체계 내로 투입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면 어느 때 보다 위력적인 진보적 총선구도를 창출 할 수 있다. 이는 곧 ‘87년 체제’를 뛰어 넘는 새로운 국가체제 건설을 위한 동력이 될 것이다.

진보세력, 의제를 주도하자!

진보세력은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역동성이 가장 중요한 자신임이 분명한데도, 그동안 구태의연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진보적 미래에 대한 확신과 낙관은 사라지고 있으며 무지, 무능, 무기력이 만성화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민중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얻어진다는 것을 믿는다면, 민중을 가장 역동적인 정치공간의 주체로 세워낼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다.

현 시점에서 진보세력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역동적 힘과 창조적 발상을 최대한 발현시켜, 대선승리만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체제를 건설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해답은 진보의 영원한 자산인 대중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진보적 생활인이 만드는 정책마당 이스트플랫폼(eplatform.or.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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