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우리는 왜 더 잘 살게 되었는데도 행복하지 않는가?

<진보의 역설> 서평

등록|2007.11.07 12:14 수정|2007.11.07 14:58

▲ <진보의 역설> ⓒ 에코리브르

우리나라의 국민소득 증가속도는 세계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다. 해방 이래 무한질주의 고속성장을 통해 국민소득이 300여배 가까이 뛰어올랐으며 환률 하락 덕에 마침내 2만달러까지 달성하였다. 경제규모는 세계10위권이다.

WHO(세계보건기구)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해방시기의 50세에서 2005년에 와서는 78.5세로 늘어났다. 이 역시 OECD 국가중 가장 빠른 속도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의식주 면에서 오늘날처럼 눈부신 발전과 번영을 누려본 적이 없다. 이에 우리는 상당히 편안한 환경에서 오랜 기간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누군가 “그래서 300배 넘게 행복해졌나요?”하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통계청이 2006년 전국 3만3천 가구 7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통계조사에서는 국민 10명 중 3명만이 '현 생활에 만족'하다고 했고 10명중 1명은 '자살충동'을 겪었다고 답변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매년 자살자수가 만 명이 넘어 10만 명당 자살율이 OECD국가 중 1위에 올랐다.

미국의 비영리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타의 2007년 '글로벌 애티튜드 프로젝트' 연구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의 국가와 지도자에 대한 만족도는 최하위이다. 이렇다보니 영국의 신경제학재단이 178개국을 대상으로 측정한 '국민행복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108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 일본, 유럽 사람들도 행복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삶이 행복하기는커녕 더욱 불행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미국과 유럽연합 곳곳에서 우울증 발병률은 풍요의 증가율과 섬뜩하리만큼 일치한다. 늘 원인모를 우울함에 시달리는 '단극성' 우울증 환자는 50년 전보다 10배나 더 많아졌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왜 더 잘 살게 되었는데도 행복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진보의 역설>(2007년 에코리브르 출간, 그레그 이스터브룩 지음)이 그것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미국이 의식주, 교통, 통신, 환경, 보건의료, 자유와 평등의 민주주의 가치 등 모든 면에서 진보해온 덕에 미국인이 얼마나 풍요의 혜택 속에 살고 있는지를 구체적 통계수치로 제시한다.

루스벨트, 트루먼, 케네디, 클린턴 정권 등 민주당 정부의 경제정책에 깊이 관여하며,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존 갤브레이스가 1958년 쓴 책이 <풍요한 사회(Affluent Society)>이다. 이 책의 주제는 미국인들이 벌써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기에 점점 더 응석받이가 되어간다는 것이었다. 또 삶의 수준이 너무 높아져서 더 이상 높아지기 어렵다고도 했다.

그런데 미국은 한 세대가 지난 후에 실질평균소득이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과거의 사치품이 이제는 필수품이 되었다.

그럼에도 문제는 오늘날 많은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이전 세대가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았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옛날 사람들이 더 행복했다고 단언하면서 자신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인들은 여전히 불만족하며 삶이 점점 더 힘들어진다고 투덜거린다.

좋은 소식을 두려워하는 미국인들, 지식인과 언론 등이 꾸준히 조장

저자는 '왜 미국인들이 좋은 소식을 두려워할까?'하면서 그 원인을 위기위식과 불안심리에 의한 번영과 행복의 단절에서 찾고 있다. 저자는 미국사회에 끊임없이 위기위식과 불안심리를 조장하는 세력과 집단이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집단이 권력엘리트 지식인과 언론, 오락산업 등이다. 그들은 미국이 발전하는 게 분명한데도 상황이 악화된다고 끊임없이 과장하거나 반복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1992년 앨 고어는 미국이 '인류역사상 가장 큰 불행'에 처했다고 했으며, 1995년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은 미국을 '와해될 운명에 처한 문명'이라고 했다. 2000년 대선에서 공화당은 '민주당에 의해 미군이 공동화하고 파멸되어 가고 있다'고 공세를 펼쳤다. 언론은 한술 더 떠 '미국사회가 폭력과 마약과 섹스에 의해 언제든지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곳'이라고 선동했다.

저자가 두 번째로 제기하는 요인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 자체가 최악의 상황을 믿도록 자연 선택돼왔다'이다. 불평과 불만 그리고 불안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아예 진화심리학은 인간은 주변 환경에 대해 불행하게 느끼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코티솔이라는 스트레스 유발 호르몬이 인간의 몸속에 널리 흐르고 있고, 스트레스가 인간생존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운명적으로 인간이 불행하게 느낀다면 인간이 행복함을 느끼는 방안은 없는 것인가? 저자는 긍정심리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행복하거나 훌륭한 사람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에 사지마비 장애자들이 복권당첨자보다 더 행복감을 느낀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오체불만족>이란 책을 통해 인간승리의 표본임을 전세계인에 알린 오토다케 히로타다야말로 대표적인 사례이다. 저자는 긍정심리학의 효용성을 강하게 믿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서구사회는 온통 긍정심리학, 행복학 열풍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각종의 긍정심리학 종류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긍정심리학의 핵심정신은 '감사와 용서'이다. 다분히 종교적이다. 저자는 비참하고 절망적인 다른 세계 빈곤층의 실상과 비교해서 미국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는 용서하는 사람의 행복지수가 용서하지 않는 사람보다 높다는 등의 연구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용서와 감사를 잘하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한다.

탐욕과 화, 분노, 복수, 욕망을 다스리기 위해서 '감사와 용서'의 정신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결국 종교와 도덕과 윤리의 범주에 속한다. 이 책이 풍요의 시대에 만족할 줄 모르고 오히려 불행하다고 느끼는 현대인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있다. 끊임없는 경제성장을 통해 얻어지는 물질만능주의가 무조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만큼 풍요롭지도 못한데다 만족도도 더 낮은 우리나라로서는 단순비교가 쉽지 않다. 또한 '감사와 용서'를 체득하고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안까지는 제시하고 있지 못함도 아쉽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