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후보님, 날카로운 창은 준비 하셨나요?

대학생이 이회창 후보에게 보내는 편지

등록|2007.11.08 08:53 수정|2007.12.04 10:16
지난 2002년 대선이 생각납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제게 대선은 월드컵보다 분명 흥미없는 이야깃거리였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 정몽준 후보 연대의 대선구도는 어린 눈에도 치열한 전쟁 같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후보의 승리.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에는 역시 정몽준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연대 파기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들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면에는 항상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문제, 불법대선자금 사용 내역, 원정출산 의혹 등이 패배의 이유라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승부가 결정된 이후 이 후보님은 대쪽이라는 별명답게 정계 은퇴를 선언하셨습니다. 그후 미국 스탠퍼드대의 한 연구소에서 연수를 받고 있다는 기사만 보았을 뿐, 그 이후의 소식은 접할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조심스레 후보님의 정계 복귀설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언제부터인가 여론조사에 이회창이라는 이름이 포함되기 시작했습니다. 신문들은 앞다퉈 후보님의 정계 복귀를 점치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정계 복귀를 찬성, 또는 반대하는 집회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대선의혹 해명하고 정당한 명분 만들어야

설마 했던 생각이 현실로 다가온 계기는 후보님이 선영을 옮기셨다는 기사를 본 후였습니다. 후보님의 측근들은 다른 기사에서 '선영이 도로 주변이고 곧 아파트가 지어질 예정이라 부득이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대선 후보들이 선거 직전에 선영을 옮긴 경우가 많다는 것을 전제했을 때 정계 복귀는 기정사실화 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쪽'이라는 별명답지 않게 정계 은퇴를 번복한 점에 대해서는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모든 지위를 다 버리고 다시 대선에 도전하기까지 후보님의 고민과 부담이 얼마나 컸을까 짐작도 해봅니다.

하지만 대선 출마에 앞서 후보님은 지난 대선에서 불거져나왔던 몇 가지 의혹에 대해 분명히 설명하셔야만 합니다. 아들의 병역비리, 불법대선자금의 사용처, 원정출산 의혹 등 지난 선거에서 후보님의 발목을 잡았던 사건들에 대해 저는 아직 후보님으로부터 충분한 해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만약 많은 의혹들에 대해 충분한 해명이 없을 때 다른 후보들은 다시 이 약점을 꼬집고 선거 내내 후보님을 괴롭힐 것입니다.

또한 선거에는, 특히 대선에는 무엇보다 명분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현재 한나라당의 후보가 국민의 열망에 부흥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은 건강한 명분이 아닙니다.  한나라당 후보의 대북관이 모호해 북핵재앙을 막을 수도,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정착도 기대할 수 없다면 정작 후보님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분명하게 제시해 주셔야 합니다.

구체적인 공약 제시가 필요한 때

후보님은 기자회견에서 큰 틀의 공약을 제시하셨습니다. 분명 이 나라를 위해 분명 필요한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그 말들은 지난 대선에서, 혹은 한나라당 내에서 항상 이야기하던 정책들인것 같아 실망스럽습니다.

과감한 정치개혁, 대북정책 및 외교정책의 재정립, 불법 시위자들의 엄중한 법적 처벌, 우리 기업들이 마음껏 뛰게 할 것, 젊은이들의 일자리 고민 덜기, 사회 곳곳의 갈등을 치유하고 분열을 봉합하는 화해와 통합의 시대를 열겠다 등은 이미 많이 나왔던 이야기들입니다. 더이상 신선한 공약들이 아닙니다.

국민들은 더이상 추상적인 말을 맹신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성장한 만큼 후보자의 정책을 파고드는 국민들의 눈은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후보님은 지난 5년 동안 후보님은 미국 대학에서 연수를 하셨고, 사무실을 내 '현실 정치의 시야를 벗어나 좀 더 크게 이 나라의 미래를 보고 걱정을 해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기자회견에서 말씀하신 위 내용들은 나라의 미래를 보고 걱정해왔다는 말이 무색해질만큼 추상적이고 새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시대의 정책을 답습한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과감한 헌법개정과 권력구조 개편안은 무엇인지, 한미 동맹이 무너졌다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이며 어떤 방안이 미래지향적인 동맹이 될 것인지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시위의 불법성을 논하며 도로를 점거하고 쇠파이프로 전경을 때려 언론의 주목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기업들이 마음껏 뛸 수 있게 하면서 어떻게 힘없는 약자, 저소득층, 소외된 사람도 다시 일어서게 만들 것인지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셔야 합니다. 무너진 공교육을 되살리는 방안과 사회 사회 곳곳의 갈등을 치유하고 분열을 봉합하는 방안도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5년간 구상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제시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후보의 공약보다도 신선하고, 국민의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공약을 제시했을 때에만 국민들의 마음이 후보님께로 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쪽' 네거티브 아닌 정책으로 승부하길

후보님은 자신이 만들고 대표를 지내고 두번이나 대선후보를 지낸 당을 떠나 혼자만의 길을 가려 하십니다. 후보님은 그 길을 가시밭길이라 말하고, 몇몇 정치인은 철새라고 욕하기도 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후보님의 선택을 반기기도, 꺼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미 활시위는 당겨졌습니다. 떠난 화살이 대통령이라는 과녁에 명중할지, 아니면 다시 땅으로 곤두박질 칠지는 후보님이 당긴 활시위에 달려있습니다.

이회창 후보님. 평생을 지켜왔던 명예와 자존심도 버리고 험난한 가시밭길을 가겠다고 마음먹은 만큼 정정 당당하게 네거티브가 아닌 정책으로 승부할 수 있는 선거를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깨끗하고 정직한 선거만이 큰 정치인으로서, 세 번이나 대선을 치르는 후보로서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모습입니다.

'대쪽' 마지막이 될 당신의 멋진 선거를 기대하겠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