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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협, 무슨 규정으로 '김용철 징계' 운운하나?

윤리강령상 "인권옹호·사회정의 실현"이 우선

등록|2007.11.09 17:42 수정|2007.11.09 17:59

▲ 김용철 변호사. ⓒ 남소연

삼성그룹의 재무팀과 법무팀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통해서 삼성그룹의 비자금 실태, 에버랜드에 대한 형사재판 과정에서의 증거조작과 떡값검사 명단 공개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삼성그룹을 향하여 포문을 열고 있다. 여기에 참여연대가 가담하여 삼성그룹을 상대로 검찰에 형사고소를 하였고, 그 과정에서 떡값검사 명단을 공개하기 전까지는 수사에 착수할 수 없다는 검찰과 형사고소가 된 이상 즉시 수사를 개시하여야 한다는 참여연대 측의 마찰이 있었다.

그러나 검찰의 입장은 떡값검사 명단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가 이루어졌을 경우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취지에서 명단의 공개를 촉구하였을 뿐 실제적으로 명단의 공개여부에 따라서 수사의 개시여부가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과 이를 반박하는 삼성그룹 중에서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이제 검찰의 수사를 통하여 밝혀질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와중에서 대한변협이 "김용철 변호사가 의뢰인의 비밀을 공개해 내부 윤리규정을 위반하였다면서 징계여부를 검토하겠다"는 내용의 언론 발표가 있어 국민들을 의아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이 허위의 사실인 경우에는 당연히 대한변협의 징계사유가 되는 것을 넘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에 재직하는 동안 알게된 비밀을 폭로하여 양심선언을 하는 것이 현재 시점에서 대한변협의 징계대상이 되는 것일까? 

비밀준수 규칙 위반? 사회정의 실현 아닌가

먼저, 대한변협의 윤리규정에 대하여 알아보자. 대한변협의 회칙으로 '변호사윤리장전'이 있고, 변호사윤리장전은 7개로 구성된 윤리강령과 38개조의 윤리규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윤리강령이나 윤리규칙에 위반할 경우 변호사징계규칙에 따라서 징계처분을 받게 된다. 대한변협이 내부윤리규정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은 변호사 윤리장전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용철변호사의 양심선언이 변호사 윤리장전을 위반하는 것인가? 결론적으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윤리규칙 제23조에서는 "비밀준수"라는 제목하에 "변호사는 업무상 알게 된 의뢰인의 비밀을 공개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공익상의 이유가 있거나 변호사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를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우선적으로 김용철 변호사와 삼성그룹은 의뢰인과 변호사의 관계가 아니다. 의뢰인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개별적으로 사건을 위임받아 법률사무를 처리하는 입장에 있어야 한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그룹에 고용되어 법률적인 자문 등을 해주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므로 의뢰인 관계가 아니라 고용주와 피용자의 관계인 것이다. 따라서 의뢰인의 변호사에 대한 신뢰를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마련된 위 윤리규칙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

또한 의뢰인이라 하더라도 공익상의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비밀준수의무가 적용되지 않는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내용은 경제정의의 실현, 잘못된 경제구조의 개선, 사회적인 비리척결 등의 목적에서 공익성이 인정되는 것이고, 그동안 우리 사회는 재벌그룹의 편법적인 지배구조와 불법적인 부의세습을 타파하는 것이 지상의 과제로 되어 있고 국민적 합의가 형성된 상태다.

더욱이 윤리강령에서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한다(1호). 변호사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에 힘쓰며 부정과 불의를 배격한다(5호)."고 규정되어 있고, 위 윤리강령은 윤리규칙보다 우선적인 효력이 있는 것이므로 처음부터 비밀준수의무 위반을 이유로 징계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검찰의 수사로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대한변협이 징계여부를 검토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럴 수도 없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대한변협의 징계논의가 대한변협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논의 자체가 언급되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한변협이나 변호사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문제이다. 혹여 대한변협이 삼성그룹으로부터 막대한 로비를 받은 것은 아닌지 국민들이 의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용철 변호사의 처신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이 진실이더라도 그 정당성에 대하여는 많은 논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용기있는, 그리고 양심적인 변호사였다면 삼성으로부터 불법적인 업무지시를 받았을 때 그것을 거부하고 회사를 사직하였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금원을 지급받으면서 오랜기간 동안을 근무하였고, 더욱이 회사로부터 받은 보수도 상상을 초월하여 불법의 대가로 생각되는 돈을 지급받아 오다가 회사로부터 그 직을 사임한 후에야 비밀을 폭로하고 나선 것은 어느모로 보더라도 정당성을 인정받기에 미흡하다. 김용철 변호사가 진정으로 용기있는 행동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질서가 투명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면 자신이 삼성으로부터 받은 모든 경제적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이번 일을 시작하는 것이 그 정당성을 부여받는 길일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 한꺼번에 다 털어놓고 대응하라

그동안 우리 사회가 삼성그룹에 대하여 가지고 있었던 여러 가지 의문들이 현실화 되고 있다는 점에 대하여 국민들이 느끼는 당혹감은 매우 크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 국민들은 김용철 변호사가 비밀을 폭로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상당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단지 우리나라의 경제질서가 바로 잡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진정으로 삼성그룹을 비롯한 재벌기업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사건이 시작되었다고 믿지는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삼성그룹, 더 나아가서 우리 경제가 어떠한 타격을 입은 것이 아닌지에 대한 걱정도 매우 크다.

이러한 상태에서 김용철 변호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밀, 자신이 경험한 삼성그룹의 부정 등에 대하여 시간을 끌어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소모전을 펼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모든 사실들을 한꺼번에 털어 놓고 법률적으로 대응하여야 한다. 언론이나 다른 세력들을 동원하면서 지리한 싸움을 계속할 경우 그 순수성에 의심을 받는 것은 물론 국민과 우리 경제 모두에게 바람직스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검찰도 드러난 의혹들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수사하여 한점의 의혹도 없이 국민들에게 공개하여야 한다. 수사를 지연시킨다거나 수사의 범위를 인위적으로 축소시키는 것은 국민과 역사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다. 언론 또한 추측성 보도로 소설을 쓸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을 한점 보태지 않고 그대로 보도하여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우리 경제질서의 건전성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계기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에 공개된 대한변협의 태도는 비록 공식적인 의견은 아니지만 국민들의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자칫 잘못하면 대한변협이 거대한 재벌기업의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 변호사들이 재벌그룹을 비롯한 기업에 취직하는 데 있어서 애로사항은 없는 것인지 등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얽매이는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상태에서 대한변협으로써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내용에 대하여 검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에서 엄정하게 수사하여 공정한 법집행이 이루어지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이 사건의 초점은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내용이 진실인지, 그리고 진실이라면 법집행이 엄정하게 이루어질 것인지가 그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벌그룹도 충실히 법을 지켜야 하며 법집행에 있어서 어떠한 예외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용철 변호사에 대하여 윤리강령 위반여부를 조사하고 징계여부를 검토하는 문제는 수사기관이 삼성그룹에 대한 수사를 완결하여 법적인 처분이 끝난 다음에야 비로소 검토되어야 하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징계운운하는 태도로 사건의 핵심을 벗어나도록 하는 것은 대한변협의 정통성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 국민들로부터 외면받는 태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정범 기자는 법무법인 민우 변호사이며 한양대 법대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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