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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이룬 여신의 꿈 화폭에 펼치다

[리뷰] '김혜연전' 학고재아트센터에서 11월13일까지

등록|2007.11.12 13:37 수정|2007.11.12 14:40

▲ '김혜연전'이 열리는 학고재 아트센터 2층 전시실 입구. 전시포스터. '구두 가게' 요철지에 채색 73×136cm 2007(오른쪽) ⓒ 김형순


김혜연 세 번째 개인전이 인사동 학고재아트센터에서 오는 13일까지 열린다. 2005년 한전프라자갤러리 작가공모선정, 2006년 청년비엔날레 대상, 2007년 문예진흥기금 등 꾸준히 주목을 받는 작가다. 이 전시회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고 진행되고 있다.

김혜연의 첫인상은 수줍어 보인다. 그러나 굉장한 에너지가 넘친다. 그림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다. 밥상을 정성스럽게 차려놓고 손님들이 그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강권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관객 나름으로 즐기라는 표정이다.

이번 전의 주인공은 대부분 여성이다. 자의식이 강한 여성작가로서 자연스런 일이다. 여성으로서 자신을 발견해 가는 과정을 주변 여성상을 통해 구현하고 있다. 물론 흔한 일상에서 영감을 얻겠지만 거기엔 작가의 꿈과 이상도 함께 담겨 있다.

작가 내면, 여신(女神) 동경

▲ '은반의 여왕' 요철지에 채색 204×146cm 2007. 피겨스케이팅의 요정 김연아를 형상화한 작품 ⓒ 김형순


작가와 짧은 대화를 통해서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작품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여신을 동경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대체적으로 평범한 여성 속에 숨겨진 여신의 흔적을 찾는다. '은반의 여왕'은 요즘 한참 각광을 받고 있는 피겨스케이팅의 요정 김연아를 그린 것이라 좀 예외적이긴 하지만 이 그림도 대중스타다운 눈부신 요정이라기보다는 힘이 넘치는 여신의 모습이다.

물론 작가는 남성들이 좋아할 법한 그런 예쁜 여자는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장 뒤퓌페나 아웃사이더 화가들이 그린 사람들의 무심한 표정이다.

그렇지만 그의 그림에는 시각전달자 강철 말대로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있다. 우선 한지나 요철지에 그리는 한국화라는 점에서 믿음직스럽다. 한국적인 것에 세계인의 정서와 현대적 감각을 접목해보려는 야심이다. 이는 분명 힘든 과제지만 그 가능성은 커 보인다.

거리의 여인, 우아한 여신상

▲ '의자에 앉은 여자 I(거리의 여인)' 한지에 채색 149×106cm 2007 ⓒ 김형순


이 작가가 주는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장식적이고 세련된 현대감각을 띠고 있어 처음엔 유럽유학파인 줄 알았다. 하긴 작가는 그림 속에 서구적 취향을 물씬 풍겼을 뿐이다.

'의자에 앉은 여자(I)'는 작가가 현장을 직접 보고 그린 거리의 여인인데 누가 봐도 빼어난 미인 아니 우아한 여신이다. 물론 작가는 '유혹하는 여자'와 같은 에로스여신을 안 그린 건 아니지만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이런 고고한 자태는 아마도 작가의 소신에서 나온 것 같다. 비록 거리의 여인이라도 여성으로서의 그 고유함과 인간성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는 뜻일 것이다.

이렇게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자는 장식성과 해학성과 관능성에도 여신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아니 여자를 볼 때 그렇게 소중하게 봐달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깔려 있는 것 같다.

당당하게 일하며 즐기는 여자

▲ '카드를 쥔 여자' 요철지에 채색 100×72cm 2007 ⓒ 김형순


'카드를 쥔 여자'는 가슴이 드러나 있다. 작가는 남성의 뭇시선을 끌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 역시 여성의 강한 자의식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 말한다. 하긴 여성의 못 말리는 노출본능이 있다고 하지만 여기서도 그런 것과 다른 여신의 품격이 풍겨진다.

작가는 19살 때 첫 직장에서 힘들었던 3개월간의 경험은 여성이 자신의 일을 가졌을 때 당당함과 떳떳함을 갖추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런 면을 그림의 주제로 삼고 있다. 그리고 보면 여자의 얼굴에 담긴 피곤함 뒤엔 뭐라 말할 수 없는 에너지가 넘친다.

그의 배경그림은 화려한 장식들로 수놓아진다. 그 배치며 구성하는 안목이 탁월하다. 의자그림에서 보듯 직선을 사용하는데도 곡선 이상으로 그 효과를 잘 살린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자는 모딜리아니를 연상시킬 정도로 얼굴과 목뿐만 아니라 손발이 길다. 이런 불균형에도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더 돋보여 이채롭다. 그만큼 여성적 미를 개성 있게 묘사하는 데 남다른 감각을 지녔다.

요철지에 채색, 유화 못지않아

▲ '화분과 소녀' 요철지에 채색 147×101cm 2007 ⓒ 김형순


'화분과 소녀'도 역시 그렇지만 대부분 작품이 한지 중에 하나인 요철지에 채색화를 쓰고 있는데 입체감과 색채감에서 서양화에 못지 않다. 그래서 한지를 사용하면서도 서구적이고 현대적으로 보인다. 게다가 검은 먹과 독특한 철선이 조형적 효과를 최대로 끌어올린다.

위 작품에서 특히 검은색과 노란색이 잘 어울린다. 작가의 작품에 노란색이 많은 건 고향에서 흔히 보는 들꽃의 빛깔 때문이고 바람 휘날릴 때 그 향기 때문이란다.

여기서 여자가 목을 빼고 있는 건 남자를 기다린다는 의미보다는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색가를 연상시킨다. 꽃을 즐기는 여성적 취향도 자연스럽지만 동시에 창조하는 자의 상상이나 사유도 남성의 전유물이 아님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잔 다르크 풍으로

▲ '당구치는 여자' 요철지에 채색 112×101cm 2007 ⓒ 김형순


'당구치는 여자'는 그 모습이 의연하다. 카드놀이나 당구치는 여자가 예전 그림엔 잘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니 여성에게 당구가 더 잘 어울리는 놀이 같다. 당구대를 잡은 모습은 잔 다르크 풍이다. 어떤 전투에 나가도 물러설 기색이 전혀 없어 보인다.

작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되 동시에 이상적 여신을 그림에 감정이입시킴으로써 여성들에게 힘과 용기와 위로와 희망을 준다.

당구치는 여자도 머리는 가분수처럼 크고 목은 길고 가슴은 작아도 여전히 여성적 아름다움에서 손상이 없다. 게다가 중세 기사처럼 절제되고 정연한 힘도 넘친다. 이렇게 아름다우면서 위풍당당함을 지닌 여신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여신처럼

▲ '미용실 풍경' 요철지에 채색 73×136cm 2007 ⓒ 김형순


'미용실 풍경'도 작가가 그런 의도는 아니겠지만 이집트 여신을 연상시킨다. 그렇다고 남자를 내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포용하고 감싸 안는 분위기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꾸미는 고유한 취향에서는 도무지 남성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작고 소박한 풍속화와 크고 과장된 상상화의 공존이다"라고 했지만 그의 말 속에 일상의 풍경은 물론이고 그 이면에 담긴 이상화된 세계 즉 작가의 내면에 강력한 갈망으로 여신상이 꿈틀대고 있다.

작가는 앞으로도 주변의 평범한 여자를 통해서 그들 속에 숨겨진 여신을 발굴하는 일은 이어질 것이다. 그런 여자들 모습은 바로 작가를 비추어 보는 거울이고 또한 다른 모습이기에 작가는 이렇게 남성중심의 신화를 깨는 여신을 계속 그려나갈 것이다.

끝으로 최근 3년간 작가의 괄목할만한 발전으로 볼 때 앞으로도 많은 기대가 된다.
덧붙이는 글 [작가소개] 개인홈페이지 http://blog.daum.net/drawing200
2002 관동대학교 조형예술학부 한국화학과 졸업 2006 중앙대학교 대학원 한국화학과 졸업
개인전 2007 제3회 개인전 학고재아트센터(서울). 2006 제2회 초대전 한전프라자갤러리(서울)
2005 제1회 개인전 한전프라자갤러리(서울)
소장처 한국전력 아트센터(서울). 한국전력 강남본점(서울). UBS은행(스위스)

[전시장] 학고재아트센터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00-5. 전화 02-739-49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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