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속, 뒷모습의 아이들
아이들 떠나보내는 마음이 슬프지만은 않았습니다
▲ 가을속 아이들조계산(선암사) 입구에서 아이들 뒷모습을 찍었습니다. ⓒ 안준철
왜 뒷모습만 찍었는지 아이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겨울 방학 때 이곳에 한 번 더 오자고 했습니다. 그때는 앞모습도 찍자고 했습니다. 아이들도 그러자고 했습니다. 꼭 그러자고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 나무다리를 지나며뒷모습의 아이들 ⓒ 안준철
막막했습니다. 너무도 막막한 마음에 저는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울먹이면서 저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지 못하니 내가 대신 운다."
▲ 가을 산길산길을 거닐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안준철
"선생님께 죄송하고요, 면목이 없고요…."
그것은 물론 제가 원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다시 부탁했습니다.
"선생님께는 그렇고, 네가 힘들게 한 아이들에 대한 생각을 말해봐. 솔직하게, 좋게 말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그러자 그 아이의 입에서 제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단어가 흘러나왔습니다.
"죄책감이 느껴졌습니다."
"죄책감? 그런 감정을 전에도 느껴본 적이 있니?"
"아니요."
"그럼 처음이란 말이야?"
"예."
▲ 가을 산길겨울에 다시 오면 그때는 앞모습도 찍자고 약속했습니다. ⓒ 안준철
솔직히 저는 아직 아이들을 모릅니다. 다만, 그들에게 매를 댄 적이 없지만 한 번도 제 지도에 불응한 적이 없다는 것. 그것은 아이들에게 인격이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이 제가 아는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나와 함께 산을 오른 여섯 명의 아이들 중 두 명의 아이가 어제 학교를 떠났습니다.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너무 미안했습니다. 저녁 무렵, 그 중 한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죄책감을 느꼈다는 바로 그 아이였습니다.
"선생님, 애들에게 사과하고 싶어요. 그래서 내일 학교 가려고요."
▲ 가을풍경저 아름다운 빛깔이 어디서 왔을까? ⓒ 안준철
저는 아이를 떠나보내며 인생을 길게 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어깨를 한 번 힘껏 껴안아 주었습니다. 마음이 슬프지만은 않았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러 학교를 떠나게 되었지만 그런 와중에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운 마음을 되찾았으니까요. 아이와 함께 걸었던 가을 산길이 자꾸만 눈에 밟힙니다.
▲ 가을 속 하얀 길아이와 함께 걸었던 가을 산길이 유난히 하얗습니다. 아이의 마음이 저 하얀 길을 닳아 깨끗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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