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산에서 만난 가을의 작은 표정들
겨우 존재하는 것들과의 벅찬 만남에 대하여
▲ 가을 산길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가까운 산을 찾았습니다. ⓒ 안준철
▲ 쑥부쟁이 핀 길한산한 산길에 좋아하는 들꽃이 피어 있어 반가웠습니다. ⓒ 안준철
드디어 11월 둘째 주 토요일이 왔고, 건강 문제로 아직은 먼 산행이 어려운 아내와 함께 동네 뒷산이나 다름없는 가까운 산을 찾았다. 조금은 억울한 생각이 없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날을 손꼽아 기다리듯 마음을 조이며 기다려온 날인데 걸어서 십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산에서 가을과 조우해야하는 기분이 어찌 유쾌할 수만 있었겠는가.
▲ 붉은 낙엽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 가을을 찾아나섰습니다. ⓒ 안준철
▲ 맹감저 붉은 열매 이름이 맹감입니다. 어릴 적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목이 마르면 파란 열매를 따먹기도 했지요. ⓒ 안준철
▲ 겨우 가을을 느끼게 하는 것들겨우 존재하는 것들, 겨우 가을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오히려 죽은 감각을 일깨워주었습니다. ⓒ 안준철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능동적 가을 산행'이라고나 할까? 눈에 확 띄는 화사한 단풍이 없으니 잠들어 있거나 죽은 감각을 되살려서라도 숨어 있는 가을을 찾아나서야 했던 것이다. 그동안 가을 명품만을 선호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고급화 되어버린 입맛을 예전의 소박함으로 되돌려 놓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 붉은 이파리 저 붉은 이파리마저 없었다면 가을산에 온 보람이 없었겠지요. ⓒ 안준철
▲ 낙엽솔잎 아래 편히 누운 붉은 낙엽이 예뻐 보였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 안준철
하지만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아내와 더불어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이다. 남들처럼 체력이 강건하지는 못해도 가까운 산이나마 함께 오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아내 덕에 천천한 걸음으로 가을을 맞이하고, 또한 천천한 걸음으로 가을을 떠나보낼 수 있으니 또한 기쁜 일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문득 학창시절에 본 영화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워드워즈의 시구도.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것이 되돌려지지 않는다고 해도 서러워말지어다. 오히려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힘을 얻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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