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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이 독자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

[서평] 하진의 <기다림>

등록|2007.11.12 11:48 수정|2007.11.12 14:00

▲ <기다림>겉표지 ⓒ 시공사

중국소설들이 대거 등장한 때가 있었다. 쑤퉁과 하진, 류헝의 신작이 새롭게 소개된 때가 그랬다. 이때만 하더라도 쑤퉁과 류헝의 소설이 인기를 끄는 반면 하진이 약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예상됐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기다림>의 하진은 그들 사이에서 밀리지 않았다. 독자들의 힘을 바탕으로 그들 못지 않은 인기를 얻은 것이다.

<기다림>이 인기를 끈 이유는 무엇일까? <기다림>에는 3명의 남녀가 등장한다. 그들 모두 공교롭게도 무언가를 기다린다. 남자주인공 린은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했다. 부모님 뜻 때문이었다. 이제는 아내와 자식만이 남은 곳을 떠나 도시에서 군의관으로 일하고 있는 린은 매년 아내와 이혼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아내는 쉽게 이혼해주지 않는다. 바득바득 대드는 건 아니지만, 이혼해주겠다는 말을 하다가도 막상 그 순간이 되면 눈물을 훔치며 이혼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사이, 린은 별거한 지 17년이 되는 순간만을 기다린다. 17년이 지나면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린이 이혼하는 그날을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나'라는 간호사 때문이다. 만나와 린은 서로 사랑한다. 하지만 그것을 공개할 수는 없다. 병원이라는 곳의 규정이 그렇다. 만나는 하루빨리 린이 이혼하기만을 기다린다. 린이 이혼하면 행복이 넝쿨째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랑할 수도 있고 마음껏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매년 이혼을 요구당하는 린의 아내 '수위'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야속한 남편을 기다리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는 린이 도시에서 애인이라고 부를 만한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혼만 해준다면 남편이 무슨 짓이든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내로서 그렇게 비참한 순간이 있을까? 하지만 수위는 기다린다. 남편을 기다린다.

린의 이혼요구와 수위의 거절, 그것을 안 만나의 짜증이 매년 반복되는 동안 마침내 17년이 지난다. 린과 수위는 정식으로 이혼을 하게 된다. 기다렸다는 듯이 린과 만나는 함께 살게 된다. 그들은 행복했을까? 그들의 기다림은 대상은 다르지만, 본성은 행복이었다. 기다린 만큼 보람이 왔을까? 그런 것 같다. 그들은 행복하다. 하지만 린의 마음에 수위와 딸에 대한 가책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린은 수위와 딸을 가까운 곳에 놓고 돌보기로 한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흐르는 사이, 린은 실수를 한다. 만나와 싸움이 계속되는 것이 짜증나 수위에게 간 것이다. 수위는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했을까? 참으로 오랫동안 기다렸던 그 순간이 왔을 때, 수위의 마음은 어떻게 됐을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기다림>은 애틋한 소설이다. 다들 기다리지만, 그들의 기다림은 동시에 충족될 수 없다. 엇갈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때 '선'과 '악'의 개념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하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지고지순한 사랑을 품고 있고 그것을 위해 기다리는 것이 정의롭다고 보여주고 있다. 누구 한 명을 응원할 수 없고, 누군가가 안 되기를 바랄 수가 없는 구조, 그것이 <기다림>을 애틋하게 만든다.

문장이 짧고 간결하다. 화려한 수식어를 배제하는 대신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생하게 그렸다. 읽는 맛이 풍부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또한 매순간 짙은 여운을 만들어내고 있다. 소설의 끝은 문장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여운이 그것을 완성해야 한다. 그래야 더 상상할 수 있고, 한 뼘 더 가까이 다가서서 언어를 느낄 수 있다. 하진은 그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말을 아끼고 틈을 열어두었다. 그 사이로 짙은 여운이 나오니 <기다림>의 맛이 감미로운 건 당연한 일일 게다.

간결한 문장이 이어지지만 종래에는 짙은 여운이 감돈다. 애틋한 감정들이 살아나게 만드는 것은 또 어떤가. 하진의 <기다림>이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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