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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긴장한 탓에 언어영역을 밀려썼지...

3년전 수능을 봤던 형이 동생에게 쓰는 편지

등록|2007.11.14 08:42 수정|2007.12.04 10:15
형이 마지막 대입수학능력시험(수능)을 본 지도 벌써 3년이나 지났구나. 네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지가 어제같은데 벌써 수능을 보고 대학을 가겠다고 말하니 눈 감았다 뜨면 가는 것이 시간이라는 말이 가슴을 찌르는구나.

네가 알다시피 형은 고3 수능시험에서 인생 최악의 쓴맛을 봤다. 너무 긴장한 탓에 언어영역을 밀려썼지. 일년을 넘게 피나게 노력했던 결과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은 다시는 돌아보기 싫은 기억이다. 혹시 내 경험을 듣고 네가 지금 수능 공포에 떨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는구나.

형이 지금 네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수능 전날인 오늘(14일), 그리고 내일 시험장에서 긴장을 풀고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해주는 것밖에는 없다.

D-1, 푹 쉬는 게 최고, 공부는 간단히

수능 전날, 네가 학교에 도착하기도 전에 학교는 이미 난리가 아니었겠지. 후배들은 예비소집 가는 선배들을 배웅한다며 교문부터 본관까지 길게 늘어서 박수를 치고 있고, 그 가운데를 걷고 있는 너는 손에 수험표를 든 채 부들부들 떨고 있겠지.

혹시나 떨다 못해 울고 있는 친구들이 있으면 달래줘라. 별거 아니라고 금방 끝날 거라고 친구에게뿐만 아니라 너에게도 이야기하거라. 후배들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후배들이 배웅을 끝내고 교실로 들어간 후에 교문을 나서는 것도 불안을 더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구나.

예비소집으로 찾아간 학교에서는 절대 오래 있지 마라. 담당 선생님이 조금 늦게 나오는 것 같으면 교실만 확인하고 그냥 집으로 와라. 한참 뒤에 찾아올 내일을 기다리며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떨며 괜스레 긴장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버스도 타지 말고 택시 타고 와라. 택시비는 형이 줄게.

집에 도착했다면 지금까지 본 모의고사 문제지와 가장 신뢰하는 파이널 문제지 한 권, 교과서만 두고 모든 책을 베란다로 옮겨라. 굳이 많은 책을 두고 어떤 책을 볼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모의고사에서 많이 틀린 문제와 관련한 단원을 한번씩 교과서에 찾아서 읽어봐라. 그래도 시간이 많이 부족할 거다.

언어영역은 쓰기 부분에서 틀린 문제들을 논리적으로 다시 풀어보고 지문들을 술술 훑어봐라. 다음날 지문을 읽는데 어색하지 않도록 최대한 여유를 가지고 보거라.

수리영역은 네가 자신 있게 풀 수 있는 단원을 확실하게 돌아보고, 맞힐 수 있었는데 틀린 문제들을 다시 풀어보거라. 괜스레 못 푸는 문제 잡고 있지 마라. 내일 절대 안 풀리는 문제다.

탐구영역은 과목별로 교과서를 한번씩 훑어보거라. 특히 사회탐구는 교과서가 가장 중요하다.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커닝 쪽지를 만들어라. 국사 연대표든 지도든 어떤 것이어도 괜찮다. 커닝 쪽지를 만들다 보면 저절로 외워지더라.(들고가더라도 시험 전엔 반드시 버려라)

외국어영역은 그동안 푼 문법 문제를 정리하고 언어영역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풀어 본 모의고사 지문을 훑어보거라. 역시 내일 수능시험지를 봐도 적응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다. 그리고 이왕이면 수능 시험지랑 같은 재질의 종이에 쓰인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라. 시험지가 눈에 익는 속도가 훨씬 빨라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마무리하기 전에도 해는 이미 사라져 버렸을 거다. 저녁을 두둑이 먹고 마무리가 끝나면 너의 1년을 돌아보거라.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나는 어느 대학에 가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왕이면 형이 재수를 하면서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도 같이 생각해줬으면 하는구나. 그런 생각은 너에게 부담이 되기보다는 자신감과 사명감을 심어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형이 이래 봬도 심리학과잖니.

그리고 생각이 끝났으면 푹 자거라. 잠이 잘 안 올지도 모르나 배를 따듯하게 덮고 발만 이불 밖으로 내놓으면 잠이 좀 오더라. 아니면 엄마께 따뜻한 꿀물 좀 타달라고 해서 마시고 잠자리에 들어라. 절대 밤 늦게 잠자리에 들지 마라. 9시에 잠자리에 들어도 한두 시간 뒤척이고 나면 실제 잠드는 시간은 11시가 넘을테니….

시험 당일, 평소와 다름없이 그저 그렇게 흘려라

아침에 일어나면 '수능'이라는 부담감은 어느새 네 가슴을 깊이 파고들어 쉴새 없이 가슴을 조여들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부담을 품어안는다면 넌 초반부터 수능이라는 괴물에게 한수 지고 들어가게 된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숨을 깊게 쉬어보거라. 소리를 크게 질러보아도 좋다. 어깨도 좀 으쓱으쓱 해보고.

식사는 많이 하지 않도록 해라. 밥 많이 먹어서 배부르면 졸리다. 차라리 초콜릿으로 꼬르륵 소리만 막는 한이 있더라도 밥은 많이 먹지 말아라. 수능 시험장도 더운데 배까지 부르면 '잠신'에게는 최적의 조건이다. 잠신에게 신들리기 싫으면 무조건 밥을 적게 먹어라. 기름기 있는 음식은 손도 대지 말고. 긴장해서 체할 수도 있으니까.

옷은 얇은 옷을 겹겹이 껴입거라. 실제 수능 시험장은 학교에서 평소에 히터를 틀어주는 온도의 세 배는 된다. 밖이 춥다고 껴입고 갔다가 땀 뻘뻘 흘리면서 시험 본다. 형이 시험볼  때는 반팔을 입고 있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까 옷은 겹겹이 입거나 교복을 그냥 입고 가거라.

가방에 책은 딱 10분 볼 만큼만 담고. 형 말을 들었으면 커닝 쪽지 만든 것이 있을 거다. 요약집이나 틀린 문제를 모아둔 공책, 커닝 쪽지를 돌아보는 데 10분 정도가 걸릴 거다. 그러니까 그만큼 문제지를 더 가져갈수록 네 단기 기억력에는 해가 된다고 생각하거라.

참, 손목시계랑 초컬릿, 각도기, 자는 절대로 잊지 말고 가져가라.

실제 수능 시험장 앞에 도착했을 때는 뒤도 옆도 돌아보지 말고 교실까지 그냥 들어가라. 엠피3 있으면 그거 끼고 들어가는 것도 좋다. 후배들이 나눠주는 사탕 받고 꽹과리 소리 듣고 뜨거운 인삼차나 커피 한잔 마시면 긴장 바짝 한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에 꼭 껴입은 외투 사이로 칼바람이 쉴 새없이 몰아친다. 형은 오죽했으면 그때 선생님이 건네준 인삼차가 꿀차인 줄 착각했단다.(따뜻한 시험장 안에 들어간 뒤에야 인삼차인 줄 깨닫고 버렸다)

시험장 안에 들어가면 외투부터 벗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집에서 준비해 온 공부거리들을 펴고 한번씩 훑어보거라. 순서는 외국어, 탐구, 수리, 언어 순이 적당하다. 그리고 종소리 시간에 맞춰 하루 계획을 대충 설정하고 그에 맞춰 시험을 보거라. 그 이상은 너에게 달렸다. 인생에서 가장 지루한 시간이, 아니면 가장 빠른 시간이 될지 모르겠다. 그 시간이 부디 네게 큰 의미가 될 수 있기를 빈다.

혹시나 수험표에 답을 써오려는 생각은 접어라. 시간이 남아 돌 때는 모르겠지만 완벽히 시험을 끝내기 전에 수험표에 답을 쓰는 것은 바보같은 행동이다. 시험시간 일분 일초가 네가 코피 흘린 시간의 열배씩이라고 생각해라.

시험 끝, 할 것은 남았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다른 곳으로 새지 말고 일단 집으로 와라. 그리고 각 입시학원이나 EBS 사이트에 들어가서 문제지를 보며 네가 적은 답을 확인해라. 절대 답을 맞추지 마라.

그러면 오늘 하루는 끝났다. 아니 네 고3의 8할은 끝났다. 나머지 남은 일들은 선생님이든 형이든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다. 뒤는 걱정하지 말고 이제 한 달을 너의 것으로 만드렴.

세진아. 지난 일년 정말 고생 많았다. 다른 과목들은 역대 최고점수를 맞고도 언어영역을 밀려써 재수했던 못난 형이지만, 두번 수능 경험이 이렇게 네게 도움이 되는구나. 네가 이 글을 본다고 해서 그대로 행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고, 긴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형으로서, 그리고 그 시기를 거쳐간 인생의 선배로서 최소한 동질감은 느끼길 바란다. '형도 했는데 나라고 못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구나.

고3 최세진, 그리고 60만의 세진이 친구들 모두 시험 잘 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부디 실수 없이 모든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능일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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