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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기 담덕의 리더십이 불편한 이유

드라마 태왕사신기로 본 정치인의 리더십

등록|2007.11.14 11:53 수정|2007.11.20 09:47
대통령 선거철만 되면 사극이 대세다. 특히 왕을 중심으로 한 사극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현재 방송 3사에서는 광개토대왕, 성종, 정조, 대조영 등 다양한 왕들이 브라운관을 활보하고 있다.

다른 왕들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쭉 지켜봤는데 유독 <태왕사신기>(이하 태사기)의 담덕을 볼 때마다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역사시간에 배웠던 광개토대왕의 이미지와 담덕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광개토대왕은 카리스마 있고 추진력있는 행동파 왕

광개토대왕은 우리나라 왕 중에서 가장 많은 영토를 차지했던 정복군주였다.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백제의 석현성을 시작으로 많은 성을 함락시켰고, 신라를 넘어 왜구까지 손을 뻗쳤으며 연나라와의 싸움에서 이겨 중국 영토도 차지했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대단히 큰 일을 해냈던 사람이었다.

이쯤되면 광개토대왕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그는 전쟁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을 것이고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전쟁을 즐기는 전쟁광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그가 난폭하고 폭력적이라 한들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성격이 불같아 곧잘 화를 냈을지도 모르고 추진력이 있어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광개토대왕 하면 항상 카리스마있는, 야심있는, 추진력있는, 행동파 리더십을 떠올렸다. 하지만 태사기의 광개토대왕은 나의 이러한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처음부터 말이다. 태사기의 담덕은 카리스마는커녕 무르기 그지 없는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태자 자리에도 욕심이 없어서 알아서 물러나 줄테니 제발 보채지 말라고 주장하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아버지 고국양왕이 죽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왕위에 오를 생각같은 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기하)과 평범한 삶을 꿈꾸기도 하고,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귀하게 여길 줄도 안다. 비록 자신에게 칼을 겨누었던 대신들이라 할지라도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다.

특히 담덕의 불편한 리더십은 전쟁에서 더 빛을 발한다. 내가 상상했던 광개토대왕은 승리를 위해, 영토확장을 위해서 전쟁을 벌인 사람이었다. 군대의 맨 선두에 서서 목청 높여  "나를 따르라"하고 외치며 말을 타고 뛰쳐나갈 그런 사람 말이다. 목적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고 그 목적에 돌진하는 것이 바로 광개토대왕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진다고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태사기의 담덕은 이기기 위한 싸움을 하지만 자신의 수하에 있는 사람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그러니 어떡해서든지 자신의 병사들이 안 다치는 쪽으로 머리를 굴려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군대는 철수시키고 자기는 홀로 적진을 향해 가서 수지니를 구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살신성인의 자세까지 지니고 있다.

불편함의 원인? 담덕은 너무 이상적인 정치인

이쯤되면 '이거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담덕은 너무 이상적인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펼치는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그는 철저히 인본주의 정신에 입각해서 홍익인간을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말 그대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는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담덕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들이다. 때론 흑개장군처럼 덜 다듬어져 있고 고장군처럼 지나치게 담덕의 안위를 걱정하거나 주무치처럼 무모하게 담덕과 맞짱을 뜨기도 하지만 진심으로 담덕을 걱정하고 그에게 힘을 보태주기 위해서 애를 쓰는 사람들이다.

담덕이 이상적인 리더십을 펼치니, 사람들도 좋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게다가 백제와의 전쟁도 최소한의 피해로 승리를 거두고 좋은 결과를 낳았다. 담덕이 살았던 고구려시대에는 이상적인 정치인 담덕의 리더십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텔레비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서 나는 담덕을 볼 때마다 불편함과 동시에 부러움을 느꼈다. 담덕의 이미지가 내가 상상했던 사람과 너무 달라서 불편했고, 이 세상에는 담덕처럼 이상적인 정치인이 없을 것만 같아서 부러웠다.

사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 방식이 성공을 거두면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카리스마 있고 추진력 있는 정치가 성공적인 정치라는 관념에 매우 길들여져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이런 강한 군주가 가장 최고의 사람, 성공한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판단을 내려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태사기를 보면서 호개쪽에 맘이 더 끌렸던 것도 사실이다. 비록 지금의 호개는 기하의 손에 놀아나고 있지만 전의 호개는 가장 현실적인 정치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이 다가온다. 지금은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을지 마음속으로 가늠해보는 시기다. 나는 그러면서 혹시 담덕과 같은 정치인이 있는지 눈여겨 본다. 서울시장으로서 청계천 사업, 버스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끈 이명박, 분명한 의사전달을 무기로 기사회생한 정동영, 노동자, 농민, 서민 중심을 외치는 권영길, 깨끗한 기업인으로 더 유명한 문국현, 많은 경선을 치르고 선대 대통령을 모셨던 이인제, 당을 버리고 뒤늦게 끼어든 이회창까지.

이들 중에 담덕처럼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 사람이 있을까? 좀 있었으면 좋겠다. 좀.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 다음 블로거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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