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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가장 끝자락에 피어나는 꽃은?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56] 바위솔

등록|2007.11.14 10:37 수정|2007.12.07 17:45

바위솔입동이 지난 지금도 피어날 꽃들이 가득하다. ⓒ 김민수

한 해의 가장 끝자락에 피어나는 꽃은 무엇일까? 저 남도에서야 동백도 피어나고 12월이면 수선화도 피어날 것이며, 비파나무의 꽃도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간혹 양지바른 곳에 바보꽃들도 피어나겠지만 중부내륙을 넘어오면 서리가 내리고 입동이 지나면 대부분의 꽃들은 그 긴 여정을 마치고 쉼의 계절로 들어간다.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의 끝자락에 만난 바위솔, 그는 참으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한 해의 끝자락에 피어나는 꽃인데 그리 쉽게 보여줄 수 없다는 듯 지난 가을 꽃대를 올리고, 꽃몽우리를 송송이 달기 시작하더니만 피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다가 입동이 지난 후부터 작은 별을 닮은 꽃들을 앞다퉈 피워내고 있다. 이미 어떤 것들은 찬 서리에 피웠던 꽃들을 거두고 내년을 기약하는 것들도 있다. 

바위솔작은 꽃몽우리들 붉은 꽃술을 가득 품고 있다. ⓒ 김민수

 참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그는 천천히 느릿느릿 피어났고, 그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기다리는 마음도 점점 퇴색되어갔다. 그러나 한 번 꽃대를 올리고 꽃몽우리를 낸 꽃들은 포기하는 법이 아닌가 보다. 입동이 가까워지고나서야 하나 둘 피어나더니만 입동이 지나고 아침저녘으로 춥다는 소리가 절로나고, 김장을 담근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비로소 붉은 립스틱을 닮은 꽃술로 유혹하던 꽃이 문을 열었다. 작은 별을 닮았다. 

바위솔작은 꽃들이 별같다. ⓒ 김민수

 그들은 다육질 이파리만큼이나 단단해 보였다. 작은 별을 닮은 꽃마다 붉은 색 립스틱을 닮은 꽃술을 내어놓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보라색 꽃술로 옷을 갈아입는다. 그리고 이내 처음 싱그럽던 꽃이파리는 추위와 맞서 싸우느라 처음의 빛을 잃어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아직 꽃대에 남아있는 피어날 꽃들을. 바위솔을 보면서 '기다림'의 미덕을 배운다.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나는 것이니 인내라는 미덕은 기본일 것이고, 인내는 기다림과 그리 멀지 않은 친구간이라 생각하니 한 해의 끝자락에 피어난 바위솔을 바라보는 맛이 쏠쏠하다. 

바위솔피어나기 전 앙다문 입술 ⓒ 김민수

 아직도 바위솔 꽃대에는 피어날 꽃들이 많다. 올해 꽃을 만나려면 이제 저 남녘땅으로 가야 한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낙화가 아름다운 동백과 깊은 향기 가득한 수선화와 비파의 꽃을 만나려면 남녘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바위솔이 아직은 기다리라 한다.자기의 때가 다 끝나지 않았으니 기다리라고 한다. 

바위솔아기자기 뭉쳐 피어나 서로를 감싸주는 꽃의 마음 ⓒ 김민수

 꽃들마다 자기의 사는 방식이 있고, 향기가 있듯 사람도 그렇다. 피어날 때가 있고 시들 때가 있는 법이며, 그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면 자연의 미를 잊어버리게 된다. 지금도 화원에 가면 계절과는 상관없이 화들짝 피어있는 형형색색의 꽃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 많은 꽃들이라고 할지라도 시들어가는 들꽃 한 송이만 못하다. 대선을 앞두고 오로지 자신만이 이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을 보면 저들이 과연 대통령감일까 의아스럽다. 나라는 국민들이 이끌어가는 것인데, 누가 대통령이 된들 국민들이 이끌어가는 것인데 자기가 안되면 마치 이 나라가 없어지기나 할 것처럼 안하무인이다. 거기에 춤을 추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좀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진득하게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가 실종된 시대를 살아가는 듯하여 씁쓸하다.  리더를 상실한 시대, 한 해의 끝자락에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괜한 말인가 보다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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