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하찮은 것들'을 향한 따뜻한 배려
[서평] <빛깔이 있는 현대시 교실>을 두루 살펴본 마음
▲ <빛깔이 있는 현대시 교실>겉그림 ⓒ 창비
살아 있다는 평범한 사실에 문득 놀라 감격해 하고 살을 당겨 아픔을 느껴보려 하신다면, 그런 당신은 따뜻한 삶을 살길 바라고 또 바라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파랑새 찾아 헛된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주위에서 아주 쉽게 그러나 아주 민감한 눈길로, 무심코 흘러가는 행복 한 자락을 정성껏 담아 올리는 당신과 함께 작은 쉼터에 이름을 짓습니다. <빛깔이 있는 현대시 교실>이라고.
몇 마디 말끝에서 느끼는 온기 때문에 그리고 몇 번 내젓는 몸짓에서 보는 뚜렷한 그림 때문에 더 알고 싶은 사람, 여러분은 그런 사람을 만나보셨습니까?
살아 꿈틀대는 삶이 지닌 결 따라 때로는 흐느적대고 때로는 격하게 내딛으며 우리를 그 길에 동반자 삼고자 손짓하는 사람, 지은이 김상욱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시 이야기를 다시 들려드립니다.
익숙해서 곧잘 숨어드는 아니 미처 더 깊이 마음 주지 못하는 우리 삶은 한없이 평범하지만 반드시 필요하고 또 중요한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다못해 정말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는 숨도 단 한 번만 완전히 끊기면 그 순간 삶은 멈춥니다. 평소에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아니 아예 관심 두지 않던 숨이 한 번만 완전히 끊기면 그토록 질긴 삶도 허무하게 끊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그토록 소중한 ‘지극히 하찮은 것들’에 문득 마음 한 곳을 내주는 배려를 할 때 삶은 오히려 많은 보물로 가득 차게 되고 그 기쁨에 몸과 마음이 들썩입니다. 시가 태어나려고 하는 신호입니다.
“시가 진정으로 우리에게 건네려 하는 것 또한 배려가 아닐까 싶을 때가 더러 있다. 나와 함께 존재하는 다른 사람을 위해 가만히 손을 내미는 것, 그리고 나를 향한 다른 사람의 몸짓에 담긴 의미를 충분히 아는 것. 덧붙여 그 따스함을 오래오래 기억하는 것. 그러고 보면 배려야말로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몸짓이다. 오직 인간만이 나눌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빛깔이 있는 현대시 교실>, 38쪽)
고등학생이 주된 독자인 한 월간지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이 책을 엮었다는 지은이는 그래서인지 이 책을 집어들 독자들을 배려하는 마음 또한 참 곱습니다. 시란 무엇이며 시를 어떻게 읽을 때 제 맛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시를 짓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지를 설명하는 아니 보여주는 그 역시 다른 삶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 배려에 선뜻 손을 내민 저는 다른 한 손을 지금 여러분께 내밀어 이 책을 타고 흐르는 온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시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삶뿐만 아니라, ‘마땅히 존재하는 삶’을 수많은 언어의 미끄러짐 속에서도 붙잡아 두고자”(5쪽) 합니다. 그렇게 해서 시가 찾으려는 것은 진실입니다. 왜냐하면 삶은 진실이라는 보물로 가득 찼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시를 아끼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것이 시가 삶을 빛내는 재능이며 배려이며 사랑입니다.
이런 고마운 마음을 지닌 시를 타고 흐르는 삶은 쉽사리 다른 삶으로 흘러들어가고 서로 상대방을 빛내줍니다. 그렇게 시는 삶에서 삶으로 배려하는 마음을 심습니다. 그렇게 시는 다시 태어납니다.
시는 마음을 읽는 순간 태어날 준비를 하며 그 마음을 터뜨리는 순간 태어납니다. 시는 마음에 글말이라는 색을 입혀 윤곽을 드러내며 입말을 통해 다른 맘으로 흘러들어갑니다. 시는 이름없이 흘러가버렸을 ‘지난 그때’를 불러 세워 이름 붙이고, 그렇게 이름 붙인 ‘지난 그때’는 이제는 겹겹이 쌓일 삶에 묻혀 사라지지 않는 ‘지금 이때’로 영원히 살아 있게 됩니다.
삶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가 태어나고 그렇게 태어난 시가 다시 삶을 살찌운다는 평범한 진리, 지은이는 그런 소박한 진리를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우리에게도 아주 쉽고 자연스런 말과 손짓으로 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가 시 이야기를 들려주는 <빛깔이 있는 현대시 교실>은 그래서 딱딱한 수업이 아닌 살아 있는 삶 그 자체로 다가옵니다.
십대 시절 어느 수학여행에서 몰래 마신 술기운에 감정에 북받쳐 집에 두고 온 엄마를 생각하며 대성통곡한 적이 있다는 지은이 김상욱은 그때 자기 말고 그런 친구가 한 명 더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바로 옆에서 자기 못지않게 서럽게 우는 (사실 그 친구가 우는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겠지만) 그 친구를 측은히 여기며 꼭 껴안고 더 서럽게 같이 울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꾸중을 듣고 잠자리에 들려고 방에 들어온 친구들이 보내는 따가운 시선과 황당해 하는 웅성거림을 귓가로 흘리면서.
그토록 여린 마음을 안고 십대를 보냈다는 지은이는 많은 세월이 지난 어느 날,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함께 서러운 눈물을 흘리던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함께 서럽게 울던 그 친구가 현대시를 전공한 대학교수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물론 지은이 역시 이 책이 말해주듯 시와 더불어 사는 사람입니다. 친구를 통해 시를 자연스레 삶에 담는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그리고 시를 사랑하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새삼 느낀 지은이는 문득 독자를 향해 말을 겁니다.
그 한마디는 선뜻 시를 품지 못하고 주저하는 이들을 격려하고 배려하는 지은이 마음입니다. 부디 그 배려를 뿌리치지 마시고 오히려 지은이 맘을 잘 받아 다른 이를 배려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느덧 여러분 삶은 시로 가득 찰 것입니다.
“만약 그대들도 스스로 조금 모자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 남의 눈을 피해 가만히 서점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일이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제목의 시집을 한 권 사 볼 일이다. 하여 시집을 읽으며 시와 함께 마음이 출렁이며 젖어든다면, 마침내 내 안에 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아닌가?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는 것인가. 이 자본의 시대에.” (184쪽)
덧붙이는 글
<빛깔이 있는 현대시 교실> 김상욱 지음. 서울: 창비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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