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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 짜증을 견뎌줘!"

수능 시험 보는 딸을 응원하며

등록|2007.11.15 14:48 수정|2007.11.15 16:20

▲ 수능 이틀 전에 여고 앞을 지나오면서 펼침막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마도 고3 학부모라 어쩔 수 없었나 보다. ⓒ 한미숙


어둑한 기운이 남아 있는 15일 아침 6시 45분, 딸아이는 책배낭을 맸다. 두 손엔 보조가방과 도시락을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자기가 쓰던 핸드폰을 내게 건넸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한다.

“엄마, 나 갔다 올게!”

▲ 딸애의 수험표를 보니 왠지 뭉클해졌다. 지금쯤 이 수험표를 옆에 놓고 시험을 치르고 있겠지. ⓒ 한미숙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니 딸애가 조금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본다. 나는 팔을 높이 들어 크게 흔들었다. 회색코트를 입은 딸애가 골목을 지나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 손엔 딸애의 핸드폰이 꼭 쥐어져 있다.

아침마다 젖은 머리에 봉고차를 타려고 달리던 때와 달리, 딸애는 오늘, 느긋하고 편안해 보였다.

▲ 그동안 함께 했던 딸애의 책들. 이 많은 책들 속에 파묻혔던 시간들이 오늘 하루 시험으로 '결과'가 정해진다는 것이 안타깝고 아쉽다. ⓒ 한미숙


수능 한 달여 전 즈음해서 딸애는 무척 힘들어하고 예민해져 있었다. 그때도 하루가 멀다 하고 문제집은 계속 집으로 배달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보충수업에 ‘야자’가 있었고 그게 끝나면 독서실로 갔다. 새벽에 집을 나가면 다시 늦은 새벽 두 시가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던 때, 딸애는 수능을 잊은 아이처럼 '놀토'가 들어 있는 어느 날, 계속 잠을 자기도 했다.

하루는 아이가 보통 집에서 나가는 시간을 20여분이나 앞당겨 움직였다. 딸애는 무표정하게 ‘그냥 천천히 좀 걷고 싶다’고 말했다. 바쁘게 걷거나 뛰어가는 사람들에 섞여 아이가 밟으면 꺼질 듯 걸음을 살살 내딛었다. 아이를 좇는 내 눈은 마치 딸애가 회색도시를 걸어가는 동화 속의 ‘모모’처럼 보였다.

‘수시’가 한창 진행되던 때였다. 어느 날, 딸애가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말했다.

“엄마, 내 짜증을 견뎌줘!”

나는 딸애를 꼭 안았다. 그러자 참고 있던 눈물이 터졌다. 나도 딸아이도.

‘짜증을 견뎌달라니. 엄마는 네가 짜증을 부렸다고 여기지 않았단다. 수험생이 되어 표현하고 싶은 감성을 참느라 오히려 네가 잘 견뎠다고 생각한단다.’

▲ '인강'을 듣다가 아빠와 함께 잠시 감성을 나누기도 했던 딸. 아빠는 팬플룻으로 딸애는 리코더로 '히브리노예들의 합창'을 부르고 있다. 그 옆에서 나는 행복했다. ⓒ 한미숙


딸애는 집에서 승용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둔산여고에서 시험을 본다. 시험장소까지 같이 따라갈까 했지만 딸애는 친구와 함께 가기로 했다.

지금쯤 점심을 먹고 있을 수험생들. 딸애의 도시락엔 평소 아이가 즐겨먹던 소박한 음식을 넣었다. 현미와 찹쌀이 들어간 밥에 된장찌개와 김치, 계란장조림과 햄 약간, 귤 두어개. 그리고 보온병에 싸준 보리물이 전부다.

아침에 잠깐 흐리고 쌀쌀하던 날씨는 오후가 되면서 포근해졌다. 바람도 부드럽고 떨어지는 은행잎들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수능 추위, 입시 추위라는 말은 올해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 딸아, 애쓰고 있구나. 힘껏 응원하고 있으마! ⓒ 한미숙


딸애한테 건네받은 핸드폰을 열자 화면에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이 보인다. 무슨 장면인지 잘 모르겠지만, 사진 아래 ‘내가 기적이 되자’라는 글이 있다. 지금 그 기적에 한 발 다가서고 있는 딸애와 대한민국의 모든 고3 수험생들에게 힘찬 응원을 보낸다.
덧붙이는 글 수능 보는 딸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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