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 폭탄'이 왜 그렇게 문제지?
[이슈 점검] 검찰이 열어야 할 BBK사건의 네 가지 열쇠
▲ 한국으로 송환되는 재미동포 김경준씨. ⓒ
검찰의 BBK 사건 수사는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행보에도 큰 영향을 주는 사안이기 때문에 정치권도 벌써부터 극도의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BBK 사건은 세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사건이 아니다.
금융사기 사건이다 보니 전문용어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LKe뱅크·MAF·EBK 등 외우기 힘든 영문의 기업 이름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골치 아픈 '산수'를 동원해야 할 때도 많다. 벌써부터 이 사건이 전 국민을 '줄기세포 전문가'로 만들었던 황우석 사건의 재판(再版)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이끌지도 모를 대통령후보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을 접을 수는 없는 법. <오마이뉴스>가 검찰이 풀어야 할 네 가지 의혹을 정리했다.
① BBK의 실소유주는 누구인가?
BBK 실소유주 논란은 김경준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 이를 둘러싼 공방이 지금도 뜨겁다.
99년 4월 김경준씨가 설립한 BBK 투자자문(이하 BBK)은 2년 뒤 만들어진 옵셔널벤처스 코리아(이하 옵셔널벤처스)의 전신이다. 김씨는 옵셔널벤처스의 주가를 조작하고 384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2001년 12월 미국으로 도피했다.
앞서 지난 8월 15일 김씨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BBK가 100% 이 후보의 회사이며 관련 이면 계약서가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한나라당은 "이 후보가 BBK의 실소유자가 아니다"고 주장하지만, 이 후보가 BBK의 경영·소유에 관여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옵셔널벤처스의 주가조작 등의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한나라당은 "이 후보가 2000년 2월18일 김씨와 함께 인터넷 기반의 자산관리사 LKe뱅크를 만들었다가 이듬해 4월 18일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적은 있지만 후보가 BBK의 발기인이나 주주·이사가 된 적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후보가 BBK와 '특수 관계'에 있었다고 의심할 수 있는 정황들은 수두룩하다.
▲ '이명박'을 다룬 <중앙일보> 인터뷰이 인터뷰에 따르면 이명박 후보는 당시 "BBK를 창업한 바 있다"고 발언했습니다. ⓒ <중앙일보>
▲ 하나은행은 2000년 6월24일 LKe뱅크에 5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는데, 당시 내부문건에서 "LKe뱅크가 700억원 규모의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BBK를 100% 소유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문건 작성자가 오인해 작성한 것"이고, 하나은행도 "김씨의 설명만을 듣고 작성한 문건"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 해 5월 3일과 15일 하나은행에서 있었던 두 차례의 투자설명회에 이 후보의 측근 김백준씨가 LKe뱅크 부회장 자격으로 배석한 사실이 확인됐다. 하나은행이 정말 김씨의 말만 듣고 투자를 결정했는지, 이 후보가 오해를 일으킬 만한 설명회 내용을 전혀 몰랐는지는 검찰 수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 지난 6월 한나라당 경선 와중에 이 후보가 BBK와 LKe뱅크를 계열사로 둔 회사의 대표이사였다고 표시된 명함과 홍보책자, 이 후보의 BBK 이사회 의결권을 명시한 정관이 잇따라 발견돼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이 후보 측은 "김경준이 명함과 브로슈어를 만들었지만 사용된 적이 없고, 정관은 김경준이 위조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BBK와 LKe뱅크가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사무실을 둔 것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가 "증권사 설립단계에서 업무제휴 차원에서 같은 층에 위치해 사무실을 분리사용한 적은 있지만 별개의 회사"라고 해명했다.
이외에도 ▲ 2001년 9월27일 이 후보가 전세호 ㈜심텍 사장(같은 해 10월 13일 BBK에 50억원 투자)과 식사를 한 뒤 제출했다는 'BBK 법인카드'의 존재 ▲ BBK로부터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한 전 사장이 2001년 10월 이 후보를 상대로 낸 부동산 가압류 조치를 서울주앙앙지법이 '인용'한 이유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물론, 이 후보에게 불리한 정황 증거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1년 3월 금융감독원은 김경준씨가 BBK 자금 30억원을 유용해 LKe뱅크의 유상증자대금으로 납입한 사실을 적발하자 김씨는 금감원에 자필서명 진술서를 제출하는데, 이 서류에는 "내(김경준)가 BBK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고, 결국 BBK는 사실상 내 영향력에 있는 법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적혀있다.
이는 "BBK 주식은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 후보의 일관된 주장을 뒷받침하는 물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경준씨는 8월9일 <한겨레21>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런 자술서를 작성할 만한 한국어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고, 금감원에 그런 문서를 제출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또한 미국 연방법원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후보 측과 김경준의 소송에서 이 진술서를 '믿을 만한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외국인 명의의 여권 7개와 외국인설립회사 인증서 19장, 운전면허증, 심지어 사망한 동생의 여권까지 위조한 전문위조범으로 믿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한나라당의 공세도 김경준 주장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② 다스와 도곡동 땅도 이명박 소유?
▲ 이명박 한나라당 예비후보는 지난 6월 7일 서울 여의도 캠프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투자운용회사 BBK회사의 주식을 한 주도 가져본 일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다스는 2000년 3월(50억), 10월(50억), 12월(90억) 세 차례에 걸쳐 BBK에 190억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자본금 29억 8000만원에 불과한 다스가 BBK에 6배가 넘는 190억원을 투자한 배경을 놓고 'BBK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이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또한 <한겨레>에 따르면, 2000년 12월 28일(80억)과 30일(10억) 다스는 투자금 190억원중 90억원을 BBK에 나누어 송금했다. 다스의 대주주들은 이에 앞서 도곡동 땅 매각대금 중 157억원을 5년 만기 보험상품에 묻어놓았는데, 이 돈을 인출한 시점이 공교롭게도 같은 해 12월 29일이었다.
도곡동 땅 매각대금이 다스에 유입된 뒤 BBK까지 흘러간 게 아니냐는 추정을 할 수 있는 대목인데, 한나라당은 "다스는 BBK 투자금 190억원을 납품대금으로 받은 어음 할인금과 정기예금 해지 등으로 100% 투명하게 조성한 자금"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③ LKe뱅크는 돈세탁 창구였나?
순환출자·역외펀드·전환사채(CB) 등 전문적인 금융용어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기자들과 독자들이 이해하는 데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이다.
이명박 측 미국 변호인단이 지난 1월 미 법원에 제출한 5번째 수정소장에 따르면, LKe뱅크는 2000~2001년 최소 79억원(미화 700만 달러)을 들여 MAF의 전환사채(CB)를 사들인다.
MAF는 BBK가 운용한 역외펀드였는데, 2002년 2월 MAF의 운영자금 중 약 100억원(LKe뱅크 자본금+다스의 BBK 투자금 등으로 추정)이 다시 미국의 유령회사 A.M.파파스로 유입됐다.
A.M.파파스가 다시 LKe뱅크의 지분 60%를 액면가의 3배인 100억원에 사들이는 방식으로 순환출자가 이뤄졌는데 일련의 과정들이 전형적인 '돈 세탁'이라는 게 대통합민주신당의 주장이다.
이 후보는 LKe뱅크에 돌아온 100억원을 온라인 증권사 이뱅크증권중개(eBK)의 자본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MAF는 김경준과 그의 누나 에리카 김 등이 주도한 펀드였고, 김경준이 자금 세탁 과정에서 펀드 돈을 떼먹기 위해 우리나라를 이용한 것"이라며 김씨 남매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
④ 주가조작은 누구의 '작품'?
김경준씨는 2000년 12월부터 2002년 3월까지 옵셔널벤처스의 주가를 조작해 5200여명의 개미 투자자들에게 600억원이 넘는 피해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문제는 이 후보가 2001년 4월18일 LKe뱅크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기 전 LKe뱅크의 계좌가 44차례나 허위 매도·매수 주문에 이용됐다는 것. 김재윤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옵셔널벤처스의 주가가 가장 높이 올라갔던 시기는 2001년 3월 이전으로, 이 후보가 LK이뱅크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시기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김경준이 단독으로 주가조작하고 공금을 횡령한 사실은 미국 판결에서 인정됐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더 나아가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은 "김씨가 설령 주가를 조작했다고 해도 무리하게 주가를 띄워 차익을 실현하는 '작전'은 없었기 때문에 김경준 사건의 본질은 '주가조작'이 아니라 '횡령'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 BBK 정관 30조와 공인인증. 송영길 의원 대정부질문 자료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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