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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숲, 형형색색 물든 가을빛 숲길

법주사로 가는 속리(俗離)의 길

등록|2007.11.16 09:57 수정|2007.11.16 11:21

지난 봄 법주사 가는 길의 봄풍경가을이 온 지금, 어떤 색깔로 변해 있을까 궁금하다 ⓒ 문일식


사과농원에서 풍성함을 가득 맛본 뒤 가까운 속리산에 잠깐 들르기로 했다. 속리산의 단풍도 알아주는지라 보은까지 내려와서 그냥 올라가기는 못내 섭섭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가을의 속리산과 법주사는 처음이다. 지난해 봄에 들렀던 때 그 푸릇푸릇한 신선함이 있었던 봄풍경이었고, 그 푸릇푸릇한 풍경만큼이나 아름다운 가을풍경을 그려내고 있을까 무척 궁금했다.

이제는 반쪽이 되어버린 정이품송을 지나 널찍한 상가단지를 지난다. 어수선함이 이어지는 속리산 입구는 매표소 이르기 전 다리를 건너면서 다른 세상을 맞이한다. 어쩌면 이곳까지가 속세인지 모르겠다. 회사에서 야유회를 나왔는지 떠나갈 듯한 마이크 소리가 수행을 하고 있는 법주사의 선승들에게까지도 들릴 듯하다. 산행하고 내려오는 사람, 술 한잔에 거나해진 사람, 물건을 팔고, 음식을 권하는 사람들….  다리를 건너 법주사 매표소에 이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조용하다. 다행이다. '속세와 이별함'은 바로 이곳을 두고 하는 말이 진정 맞는 듯하다.

법주사 가는 길... 오리숲을 거닐다.매표소에서부터 법주사에 이르는 짧은 숲길을 오리숲이라 부른다. 실제로는 5리가 되지 않는다 ⓒ 문일식



법주사로 가는 길은 단풍으로 화사하기 그지없다.오리숲을 따라 걸어 내려오는 등산객들... ⓒ 문일식


봄의 황제 벚나무는 가장 먼저 겨울을 맞이하나보다. 가지에 나뭇잎 하나 없이 을씨년스런 풍경만 연출하고 있다. 벚나무 아래로는 황토 지압길이 벚나무의 길이만큼이나 길게 놓여져 있다. 늦은 오후여서인지 속리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가는 사람은 많아도 법주사로 오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법주사 매표소에서 법주사 경내까지는 참나무, 떡갈나무 등 가을의 낙엽을 대표하는 활엽수가 가득하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숲길을 사람들은 '오리숲'이라 부른다. 숲길의 거리가 약 오 리 정도 된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법주사 경내까지는 불행히도 오 리가 채 되지 않는다.

법주사 자연관찰로 안내표지판매표소를 들어서면 자연관찰로를 따라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며 법주사까지 갈 수 있다. ⓒ 문일식


매표소를 들어서자마자 큰 간판이 시선을 붙든다. 바로 자연관찰로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다. 속리산 깊은 계곡으로부터 이어지는 사내천과 어울려 자연관찰로를 만들어놓았다. 총 16개의 테마로 구성된 자연관찰로는 어린이들뿐 아니라 무심코 지나는 어른들에게도 숲에 대한 알찬 정보를 제공한다. 나무의 뿌리가 드러나 죽어가는 과정, 쓰러진 나무가 숲에 해주는 역할, 나무가 의사소통을 어떻게 하는지 등 쉽게 접하지 못하는 설명이 곳곳에 있다.

'호서제일가람' 법주사의 일주문법주사 일주문 사이로도 가을빛이 완연하다 ⓒ 문일식



법주사 경내까지 이르는 오리숲을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연관찰로를 따라 자연 그대로를 즐기며 거니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비록 시멘트 길이긴 하지만 울창한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숲길을 거니는 방법이다.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에 들어섰다. 일주문 사이로 가을빛이 완연하다. 법주사 일주문은 '호서제일가람'이라는 현판을 가지고 있다. 사찰의 경계 역할을 하는 일주문은 속세와의 이별을 재촉한다. 경건한 마음으로 일주문을 들어서고, 또다시 오리숲에 안긴다.

숲 한켠에 마련된 벤치벤치 주변으로 가을의 색감이 화려하다. ⓒ 문일식



흩날리는 바람 속에 힘없는 낙엽들도 흩날린다. 아니다. 춤을 춘다는 표현이 맞겠다. 뱅글뱅글 돌아 떨어지는 나뭇잎은 분명 상쇠가 상모돌리는 듯하다.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나뭇잎, 바람에 흔들리다 떨어지고 마는 나뭇잎(낙엽), 이내 땅바닥에 뒹구는 낙엽… 나뭇잎으로 있을 때는 아름다운 색감으로 눈을 유혹하지만, 떨어지는 나뭇잎에서는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안타까움이, 땅바닥에 뒹구는 낙엽에는 왠지 모를 허전함과 서글픔이 남는다.

오리숲, 법주사 가는길.. 왠만하면 천천히 천천히 걷고 싶은 길이다. ⓒ 문일식



과연 어디서부터가 낙엽인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일까? 아니면 땅바닥에 나뒹구는 순간부터일까? 땅 위로 떨어진 낙엽은 사람들의 발길에 바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또 다른 생을 마감한다. 이제 그들은 진정 자연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자연관찰로와 나란히 가는 사내천의 풍경떨어진 낙엽들이 수면을 가득 채우고,남은 물빛 속으로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 ⓒ 문일식


속세와 단절시켜주는 오리숲이 한층 더 아름다운 이유는 속리산 깊은 계곡으로부터 시작되는 사내천 때문이다. 매표소에서부터는 자연탐방로와 길을 함께 한 사내천 맑은 물 속에는 또 다른 가을빛이 맴돌고 있다. 물속으로 비춰지는 세상은 눈으로보는 뭍세상보다 한층 더 깨끗하고 단아해 보인다. 물 속으로 비쳐지는 세상은 눈으로 보이는 허상이라는 듯 바람 한 점에 이는 물살로 이내 흐트러진다. 떨어진 낙엽들이 물 위를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내려서지 못하는 물길에서는 차곡차곡 쌓여 낙엽들이 가을의 운치를 멋드러지게 표현하고 있다.

수정교에서 바라본 사내천의 풍경사내천 주변 암반위로 마치 눈이 내린 듯 낙엽이 소복하다. 맑은 물빛이 잔잔하고 여유롭다 ⓒ 문일식


오리숲은 수정교를 지나면서 끝이 난다. 하지만, 등산로를 따라 세심정까지 이르는 길도 제법 운치가 있다. 오리숲은 몇 번이고 거닐고 싶은 그런 길이다. 어쩌면 오리밖에 안 되는 짧은 길이 때문에 느껴지는 아쉬운 여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연관찰로를 따라 걷는 길은 가을을 밟고 가는 길이다.떨어진 낙엽이 바닥에 지천이어서 푹신거리는 느낌이 참 좋다 ⓒ 문일식


늦은 시간이지만 오리숲을 거닐어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매번 여행을 다니면서 어떤 여행지라도 사계절을 다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쉽지는 않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속리산 오리숲의 가을을 담았으니 언제고 매미소리와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 가득한 여름과 소리없이 눈이 내리는 조용한 겨울의 오리숲길을 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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