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마음쓰지 않으면 엉터리가 되는 우리 '말'

[우리 말에 마음쓰기 142] 틀리게 쓰는 '예술 속', '보호 속'

등록|2007.11.16 11:50 수정|2007.11.16 13:17
ㄱ. 예술 속에서 지내 온

.. 나의 남편 게하르트는 나처럼 그림을 그렸고, 오랫동안 예술 속에서 지내 온 착한 노총각이다 ..  <노은님-내 짐은 내 날개다>(샨티,2004) 36쪽

“나의 남편”이 아니라 “내 남편”이나 “우리 남편”입니다.

 ┌ 예술 속에서 지내 온
 │
 │→ 예술과 함께 지내 온
 │→ 예술밭에서 지내 온
 │→ 예술 세계에서 지내 온
 └ …


보기글에 쓰인 ‘속’은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가를 두루뭉술하게 깔아 버립니다. 그래서 “예술을 즐기며 지내”왔는지, “예술과 부대끼며 지내”왔는지, “예술에 파묻혀 지내”왔는지, 아니면 “예술만 알며 지내”왔는지, “예술에 갇혀 지내”왔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어느 나라나 겨레 말이든, 그 나라와 겨레 삶과 문화에 가장 알맞게 써야 참으로 좋습니다. 한 나라와 겨레 삶과 문화에 가장 알맞게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일은, 말로는 어렵다고 느낄는지 모르나, 그 나라와 겨레로서는 자연스러우며 누구나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일이니, 그다지 어려울 일이 없습니다. 아니, 가장 쉬워요. 어느 나라나 겨레든, 아이들하고 주고받는 말, 가방끈이 짧은 사람하고도 나누는 말,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듣거나 들려주는 말을 쓰면 돼요. 이렇게 말을 하고 글을 쓰면 저절로 가장 알맞으며 깨끗하고 쉽고 아름다운 말이요 글이 된다고 봅니다.

ㄴ. 보호 속에서 보냈다

.. 앙리는 어머니 손에서 자랐고 일생을 어머니의 따뜻한 보호 속에서 보냈다 ..  <장소현-뚤루즈 로트렉>(열화당,1979) 16쪽

‘일생(一生)’은 ‘한삶’으로 다듬거나 ‘살아 있는 동안’이나 ‘죽는 날까지’로 풀어 쓰면 좋습니다.

 ┌ 어머니의 보호 속에서 보냈다
 │
 │→ 어머니한테 보호를 받으며 보냈다
 │→ 어머니가 보살피며 살았다
 │→ 어머니가 보살펴 주었다
 └ …


“보호 속에서” 산다는 말은 서양말에서나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쓰는 한국말에서는 “보호 속에서”가 아니라 “보호 받으며”입니다. 다음으로 ‘보호(保護)’를 ‘돌보다-보살피다’ 같은 말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보호 속에서 보냈다”는 토씨 ‘-의’도 얄궂게 끼어드는데, ‘보호’라는 말까지 다듬어서, “어머니가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다”로 풀어내면 걱정할 것 하나 없이 깨끗한 우리 말투가 됩니다. 낱말도, 말투도 살뜰하고 깨끗할 수 있도록 마음을 쓰면 참으로 반갑겠어요.

ㄷ. 한국 근대사 속에서

.. 한국 근대사 속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위치를 말할 때에 이광수와 김동인에 부딪치는 것은 새삼스레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  <김윤식-우리 문학의 넓이와 깊이>(서래헌,1979) 9쪽

“말할 것도 없는”이라 쓰니 반갑습니다. 다른 이들은 으레 “말할 필요(必要)도 없는”처럼 쓰거든요. “문학이 차지하는 위치(位置)”는 “문학이 차지하는 자리”로 다듬으면 좋습니다.

 ┌ 한국 근대사 속에서
 │
 │→ 한국 근대사에서
 │→ 한국 근대역사에서
 └ …


군더더기가 될 만한 말을 아예 안 쓰면서 살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참말로 군더더기 없이 말하기나 글쓰기가 어려워서 이리 못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만큼 마음을 덜 쓰거나 안 쓰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밥 한 그릇 고맙게 받아 먹으면서 밥풀 하나 남기지 않는 사람과, 밥풀 잔뜩 남기는 사람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요?

보기글을 보면 ‘것’이 두 차례 나옵니다. 뒤에 나온 ‘것’을 다듬어 통째로 다시 쓰고 싶습니다. “한국 근대사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자리를 말할 때, 이광수와 김동인에 부딪치는 일은 새삼스레 말하지 않아도 좋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에 놀러오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과 글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