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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꽃풀아, 널 먹어도 되니?"

[서평] 권정생 선생의 <하느님의 눈물>

등록|2007.11.16 16:01 수정|2007.11.16 16:21
지난 5월 17일 권정생 선생께서 육신의 장막을 내려놓았습니다. 그 분이 남긴 많은 글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저는 <하느님의 눈물>이라는 동화를 제일 좋아합니다.
돌이 토끼는 산에 사는 산토끼입니다. 돌이는 어느 날 문득 '칡넝쿨', '과남풀'이 맛은 있지만, 자신이 뜯어 먹게 되면 풀이 모두 없어질 것 같아 걱정을 합니다. 풀이 없어지는 것이 마음은 아프지만 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보면서 갈등합니다.

산에 오르면서 돌이는 풀무꽃풀을 만났습니다.

"풀무꽃풀아, 널 먹어도 되니?"
"……"
"널 먹어도 되는가 물어 봤어. 어떡하겠니?"

돌이가 물었을 때 풀무꽃풀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풀무꽃풀의 대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갑자기 그렇게 물으면 넌 뭐라고 대답하겠니?"

돌이는 생각할 수 없는 대답이었습니다. 허를 찌른 답입니다. 배가 고픈 돌이는 그냥 해본 말입니다. 돌이도 배가 고플 때마다 먹으니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돌이는 생각 없이, 악의 없이 풀을 먹지만, 어쩌면 풀무꽃풀은 생각해서 물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대하는 모습을 그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힘 있는 자는 자기 배를 채우는 일에 관심을 가집니다. 자기 배만 부르면 다른 사람이 배고픈 것을 알지 못합니다. 내가 더 배부르면 다른 사람이 배고픈 것을 알지 못합니다. 풀무꽃풀은 말합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대답을 제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니?"
"정말이구나. 내가 잘못했어. 풀무꽃풀아. 나도 그냥 먹어 버리려니까 안 되어서 물어 본 거야."

돌이는 배가 고파 먹고 싶어 그냥 해 본 말이지만 풀무꽃풀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가장 중요한 물음입니다. 돌이와 같은 물음을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돌이는 지금 욕심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도 욕심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심코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자기 중심, 이기적인 생각이 내면에 흐르고 있습니다. 돌이가 풀무꽃풀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자기 중심입니다. 자기 중심은 욕심을 잉태합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결국은 죽음을 낳게 됩니다. 지금 세상은 너무 욕심이 많습니다. 세상이 먹히고 먹히는 세상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먹히는 위치에 서 있는 사람에게 '너 먹어도 되겠니?'라는 물음은 먹히는 것도 더 무서운 일입니다. 풀무꽃풀은 아예 말합니다.

"차라리 먹으려면 묻지 말고 그냥 먹어."

'그냥 먹어.' 진심입니다. 사실입니다. 그냥 먹으면 되는데 왜 묻는거야. 그런 말이 나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나에 대한 모욕이라는 말입니다. 힘 있는 네가 마음대로 하면 되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니 그냥 먹어라는 말은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삼성비자금 생각이 납니다. 삼성은 힘 있는 자입니다. 엄청난 시혜를 베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힘은 어쩌면 돈에서 나오는지 모릅니다. 시혜를 돈으로 갚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네가 배고픈 것 알고 있다. 돈 줄 테니까 그냥 있어'라고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협합니다. 보십시오.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 면면을 보면 지극히 힘 없는 자-세상의 기준인 권력과 돈-입니다. 하지만 힘 있는 자-세상의 기준인 권력과 돈-는 경제가 어려우니 특검을 하지 말자. 국가근간이 흔들린다고 합니다. 힘 있는 자들이 오히려 더 두려워하고, 걱정이 많습니다. 우스운 일 아닙니까?

오늘 김인국 신부님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부패에 너무 관대하다. 그 실상을 보는 게 가장 충격이다. 작년 이맘 때 '인문학의 위기'로 한바탕 소란을 떨었는데 그걸 종교적으로 말하면 '하느님이냐, 재물이냐'이다. 재물에 영혼을 팔고 그런 거래를 한 번도 후회하지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는 실상이 깜짝 놀랄 만한 일이다. 재물의 힘이 워낙 막강해서 한번 영혼을 팔면 판단능력도 없는 것 같다."<오마이뉴스 '김인국신부인터뷰'>

돈에 자신을 팔았습니다. 어쩌면 저 자신도 돈에 저 자신을 팔았는지 모릅니다. 돌이가 풀무꽃풀에게 하는 '너 먹어도 되겠니'란 물음은 돈에 자신을 팔아버린 죽은 인격을 가진 것과 별 다르지 않습니다. 돈에 자신을 파는 것과 나만 생각하고 다른 이는 생각하지 않는 말과 행동 때문에 그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내 맡기게 하는 일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죽은 인격을 되살릴 방법은 없을까요?

돌이는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고 차라리 죽는 것 낫겠다고 합니다. 그 때 하늘을 보았습니다. 돌이는 말했습니다.

"하느님, 하느님은 무얼 먹고 사세요?"
"보리수 나무 이슬하고 바람 한 줌, 그리고 아침 햇빛 조금 마시고 살지."
"어머나! 그럼 하느님, 저도 하느님처럼 보리수 나무 이슬이랑, 바람 한 줌, 그리고 아침 햇빛을 먹고 살아가게 해 주셔요."

이슬만 먹는 다는 것은 '욕심이 없다'입니다. '내 살자고 다른 사람 것을 빼앗지 않겠다'입니다. 하느님 말씀에 돌이는 이슬만 먹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돌이처럼 온 세상이 다른 사람 생명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세상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오로지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해합니다. 하느님께서 애타게 기다리지만 사람들은 남은 것을 탐내는 일에만 관심을 가질 뿐입니다. 그 때 하늘에서 이슬 한 방울이 돌이 얼굴에 떨어졌습니다. '하느님의 눈물'입니다.

이슬만 먹고 사는 세상은 만들 수 없을까요? 답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길은 있습니다. 돌이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이슬만 먹는 것은 나와 네가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하느님의 눈물> 권정생 글 ㅣ 도서출판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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