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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고황제주필유지비'가 세워진 오목대

조선왕조의 흥망을 한눈에 보다(하)

등록|2007.11.16 16:52 수정|2007.11.16 17:01
정몽주의 고려를 향한 충성심도 허사였던가. 이성계는 조선왕조를 세운다. 하지만 그 시작은 장대하였으나 삼라만상은 자연의 섭리 앞에 평등한 것. 조선왕조는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쇠락의 길을 걷게 되고 마침내, 국운이 기운다. 조선왕조의 몰락을 거부하고 전통 왕조를 재건, 강건히 하고자 했던 고종황제는 1900년 오목대에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蹕遺址)라는 비와 비각을 세운다. 이 비와 비각이 전주라는 도시에 세워졌다는 것은 전주가 상징적으로 조선왕조의 어머니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비각안에 고종황제의 친필 비가 있다. ⓒ 양태석



세상사 힘들고 지치면 찾게 되는 것이 어머니의 따스한 품이다. 그래서 우리는 큰 뜻을 품거나 어려운 일을 헤쳐나가려면 누구보다 먼저 부모님을 찾아뵙고 큰절 올리며 마음을 다잡게 되고, 돌아가셨다면 산소를 찾아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 그것이 사람 사는 이치다.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遺址) 비고종황제의 어필. 여기서 駐?이란 임금이 머무른 장소라는 뜻이다. ⓒ 양태석


그렇기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이성계는 그의 모태인 오목대를 찾았고, 나라가 기울어 가는 것을 어떻게든 바로 세우기 위에 오목대에 '태조고황제주필유지' 비를 세우고 자신의 정체성을 다잡으려는 고종황제의 마음 역시 그런 점에서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목대(梨木臺) 이 비에는 목조대왕구거유지(穆祖大王舊居遺址)라 새겨져 있는데 고종 황제의 친필이다. 목조는 조선조를 건국한 이태조의 5대조로, 목조가 어릴 때 이곳에서 진법놀이를 하면서 살았던 유적지로 알려져 있으며, 그러한 내용이 용비어천가에도 나타나 있다. ⓒ 양태석


전주한옥마을 오목대에서 바라본 전통한옥마을 ⓒ 양태석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담겨있는 이곳을 찾는 이는 이제 전주 사람이 아니고는 별로 없다.
점점 잊혀 가는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버릴 것만 같은 오목대, 그 오목대에서 바라본 전주 한옥마을이 고도(古都) 전주를 대변해 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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