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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마일드' 참치일까?

[우리 말에 마음쓰기 143] 물건이름 붙이는 문화

등록|2007.11.17 12:27 수정|2007.11.17 12:26
어제 가게에 가서 참치깡통 하나 샀습니다. 반찬감이 없을 때는 값싸게 먹을 수 있고, 늦은밤 술 한잔 생각날 때 가벼운 안주감으로도 좋아요.

- 마일드참치

그동안 느끼지 못하다가 어제 문득 느낍니다. 참치깡통을 보니 물건이름으로 ‘마일드참치’라 적혀 있습니다. 한글로 한 번, 알파벳으로 한 번.

온갖 물건이름을 워낙 미국말로 많이 짓는 요즘 흐름이기 때문이었을까요. ‘마일드참치’란 이름은 참 철딱서니없는 이름인데, 저부터도 이런 철딱서니없는 이름을 못 느꼈습니다. 아이들은 어떨까요? 아이들은 느낄까요? 아이들한테 이런 참치 반찬을 마련해 주는 어른들은 어떻지요? 술안주로 이런 참치깡통을 사는 어른은 또?

- 부드러운참치

‘부드러운-’이라는 말을 붙인 물건이름도 있는 줄 압니다. ‘마일드(mild)-’라는 말을 붙인 다른 물건이름으로는, 음, 담배 가운데 ‘마일드세븐’이 떠오르네요. 마일드세븐은 일본 담배라 하는데, 일본사람들도 참 얄궂군요. ‘마일드’하고 ‘세븐’을 붙여서 무슨 뜻이요 무슨 느낌일까요. 그냥 미국말이니까 쓰는 이름, 알파벳으로 적는 이름은 아닐는지요.

아무리 공장에서 수만, 수십만, 수백만 개를 찍어내는 물건이라 하더라도 이름 하나는 올곧게, 살뜰하게, 우리 삶과 문화에 잘 어울리게 붙여야지 싶은데. 모든 문화와 물질과 살림과 사회가 자꾸자꾸 뜬구름처럼 붕 뜨고 중심이나 가닥을 못 잡은 채 어지러이 휘둘리고 있어서일까요. 값싼 참치깡통 하나에 붙이는 이름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붙이는 이름은 아닐 텐데, 조금 더 마음을 쓰기란 이렇게도 어려울까요.

생각해 보면, ‘마일드’라는 말을 붙여도 아무 거리낌을 못 느끼는 우리들이고, 외려 이런 미국말로 이름을 붙여야 더 번듯하고 좋다고 느끼는 우리들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널리 나돌지 싶기도 합니다. 다만, 요즘은 어설픈 미국말 이름보다는, 부드럽고 깨끗하고 살가운 우리 말 이름, 말 그대로 ‘부드러운’ 느낌을 건네는 이름을 더 반기는 흐름이 있습니다.

우리 자연 삶터가 무너지고 사람들마다 자질구레한 병에도 많이 걸리며 환경이 소중한 줄 티끌만큼이나마 느끼기 때문인지 모르겠어요. 겉이 아닌 속을, 남들 눈치가 아니라 자기 마음을 살피며 가꿀 줄 아는 삶을 꾸려야지 싶습니다. 그래야 이름다운 이름, 우리 삶에도 걸맞고 알맞으며 반가운 이름 하나 얻을 수 있겠지요.
덧붙이는 글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에 놀러오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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