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에서 만난 공룡능선의 마지막 단풍
-원효의 전설이 서린 천성산에서 마지막 단풍을 보며
▲ 산행의 끝자락에서 만난 홍단풍 ⓒ 김대갑
원효대사는 그 명성에 걸맞게 전국 명산대찰에 수많은 일화를 남기기로 유명한 분이다. 그 중에서도 천명의 성인과 관계된 아름답고도 기이한 전설 하나가 전해져 오는 산이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경남 양산의 천성산이다.
▲ 봉우리로 가는 길 ⓒ 김대갑
그러자 그 대중들이 너도나도 원효의 제자가 되겠다면서 원효를 찾아왔다고 하는데, 그 숫자가 천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효는 그들을 모두 교화시켜 천명의 성인으로 만들었고, 그 때부터 이 산을 천성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알려진다.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전설임에 틀림없다. 어찌 보면 너무 황당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만큼 천성산의 산세가 신비하다는 이야기다. 내원사를 비롯하여 89개 암자가 산 요소요소에 숨어 있는 천성산에는 그 전설만큼이나 기괴한 암벽들과 계곡들로 유명하다.
▲ 봉우리 사이의 단풍들 ⓒ 김대갑
공룡능선을 타려면 일단 성불암 계곡 입구로 진입해야 한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가서 맨 먼저 부딪치는 수직 암벽, 일명 제1봉우리로 올라가면 공룡능선을 타게 되는 것이다. 이 수직 암벽이 가장 가파르면서도 험준한데, 이 봉우리만 지나면 그 다음부터는 제법 수월한 편이다. 그러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복병들이 있으니 그게 바로 수직으로 이루어진 암벽을 로프에 의지해 올라가야 하는 코스들이다.
예전 원효대사가 천 명의 대중들을 교화할 때, 그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곳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짚북재라는 곳이다. 널따란 공터인 이곳에 원효대사가 큰 북을 매달아 놓고 북을 치면 산 곳곳에서 수행 중이던 천명의 대중들이 모여들었다 한다. 이 짚북재까지 가기 위해선 일곱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5군데에 걸친 로프 구간도 넘어야 한다. 물론 로프 구간은 여성들도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짧으면서도 수월하다.
▲ 계곡의 단풍들 ⓒ 김대갑
험준한 제1봉이 사내다움의 극치라면 2봉과 3봉은 여성스러움을 간직한 부드러운 봉우리다. 그러나 제4봉은 삼각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급경사를 자랑한다. 그 삼각산 봉우리를 다 지나온 후 제5봉에서 잠시 물을 마시며 삼각산을 바라보는 맛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다. 그리고 곧 이어 나타나는 6봉과 7봉의 아기자기함. 아기의 부드러운 허리를 닮은 소담한 기운이 절로 느껴지는 봉우리들이다.
가만 보니 천성산 공룡능선은 휴식과 운동을 적절히 조화시킨 천혜의 운동코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게 올라가면서 온 몸의 노폐물을 실컷 배출하면 적당한 때에 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봉우리에는 펑퍼짐한 바위들이 보란 듯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바위 위에서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로 목을 축이며 아래를 내려다보면 절로 신통한 생각이 든다. 참 적당하게 올라가고 적당하게 쉬어가고, 알맞게 내려가게 만들었구나!
천성산에는 이외에도 수리봉, 옥녀봉, 집북봉, 애기암봉 등 수려한 봉우리 들이 많다. 계곡도 산하동 계곡, 성불암 계곡, 법수 계곡, 주남 계곡 등이 있는데, 이중에서 단연 아름다운 계곡은 아무래도 내원사 계곡일 것이다. 오죽했으면 이 계곡 근처를 소금강이라고 했을까? 넓은 암반을 하얗게 수놓으며 크고 작은 바위 사이를 흘러내리는 내원사 계곡은 자연의 조화가 빚은 한 폭의 수채화인 것이다.
▲ 고목의 고독을 바라보며 ⓒ 김대갑
내려가는 계곡에서는 삼단 폭포를 만날 수 있다. 만일 여름날이라면 청정하면서도 맑은 계곡수에 몸을 담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계곡 물은 너무 맑고 부드러워 선녀들의 욕탕이 되어도 족할 정도이며, 가끔씩 떨어지는 홍단풍과 황단풍 잎새가 물 위를 달려가는 단아함이 켜켜이 묻어 있기도 하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어느새 공룡능선 입구. 그 갈림길에서 잠시 신발을 벗고 맑은 물에 손과 발을 담아 본다. 푸른 물의 냉기가 발바닥을 타고 등줄기로 시원하게 밀려오는 쾌감을 느낀다. 그 쾌감에 가볍게 몸을 떤 후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아, 계곡은 온통 추야홍적의 세계였다. 그때, 그 단풍잎 사이로 날아가는 재두루미의 흰 빛 날개가 어찌 그리 황홀한지! 숲 사이로 들려오는 정갈한 독경 소리에서 결 고운 여승의 가향이 절로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글입니다. 천성산은 11월 10일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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