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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조화와 대비로 공간 재창출

'다쯔노 도에코 전' 진화랑에서 12월16일까지

등록|2007.11.21 10:17 수정|2007.11.21 11:01

▲ '2007-3-22'(왼쪽) 캔버스에 유화 2007. '핑크색선과 자주색선(오른쪽)' 캔버스에 유화 2007. 왼쪽에서 3번째 여자가 작가 다쯔노 도에코씨. 진화랑 입구에 전시된 작품 '2006-12-11'(아래) ⓒ 김형순


일본의 중견작가 다쯔노 도에코(57) 개인전이 종로구 통의동 진화랑에서 12월 16일까지 열린다. 그의 작품을 처음 2007 국제인천여성비엔날레에서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 관객을 빨려들게 하는 독특한 색채가 좋았고 시공간을 무한대로 넓혀주는 힘이 있어 보였다.

다쯔노 도에코는 1950년 오카야에서 태어나 도쿄국립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1973년 첫 개인전 이후 30여 년간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의 첫 인상은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처럼 보였고 미소는 소녀를 닮았다. 다만 그림에 대한 열정은 누구 못지 않아 보인다.

그는 추상작가로 프린트, 드로잉, 유화 등 여러 장르에 도전했지만 한 가지 변화지 않은 건 실제적 혹은 현실적인 것과 관념적 혹은 이상적인 것의 대비를 통한 공간의 여백을 무한대로 확대시킨다는 점과 색채를 통해 회화의 본질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작가만의 색채창출

▲ '2007-6-10' 캔버스에 유화 162×130cm 2007. 단순한 색채와 형태가 추상화의 근간임을 보여준다 ⓒ 김형순


작가라면 예외 없이 자기만의 고유한 색채를 창조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비교적 성공적이다. 그의 작품이 서울 시립미술관과 대림미술관 그리고 일본 전역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는 그가 작품 속에서 그만의 색채를 잘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위 작품은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형태에 붉은색 계열을 쓰고 있는데 작가는 어깨를 못 쓸 정도로 수없이 덧칠했다고 말한다. 그때 사용한 같은 붉은색이라도 수천, 수만 가지 다른 색으로 칠한 것이고 또한 그것이 합쳐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색채에서 뭐라 할 수 없는  깊이와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그의 색채는 일본적이면서 그 범위를 뛰어넘기에 우리에게도 좋다. 그럼에도 우리를 끓어오르게 하는 격한 감흥을 일으키기엔 뭔가 부족한 것 같다. 우린 붉은 악마의 지우천왕(蚩尤天王)에서 보듯 고추장처럼 맵거나 된장처럼 구수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도 사실이다.

평면의 극복과 심연의 발굴

▲ 2층 전시실 '2007-5-24'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62×130cm 2007(맨 왼쪽). '2007-5-26'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62×130cm 2007'. 2007-8-7' 캔버스에 유화 162×130cm 2007(오른쪽) ⓒ 김형순


그는 또한 평면을 딛고 이를 심연의 깊이로 대처해 보려고 애쓴 흔적이 위 작품에서도 엿보인다. 오른쪽 파스텔 톤은 그것대로, 왼쪽 진한 적청색이나 노란색은 그것대로 색채의 대조를 통해 그림 안에서 뭔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원뿔형의 다면적 공간을 잉태시킨다.

색채를 보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이보다 마음이 큰 부자는 없겠지만 그의 풍요로운 색채를 보면 왠지 가슴이 넉넉하고 윤택해진다. 그러나 이런 힘이 넘치고 매혹적인 색이 나오기까지 예순이 다 되도록 작가는 신념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색채에 생기 불어넣기

▲ '2007-3-3' 캔버스에 유화 227×180cm 2007. 그림 속에 혈관이 흘러 숨 쉬고 있는 것 같다 ⓒ 김형순


물론 작가는 미술의 본질을 공간창조에서 찾겠지만 그에게 있어 고유한 색채의 창조와 함께 또 하나의 과제는 색채에 그의 호흡과 숨결을 불어넣는 일일 것이다.

위 작품은 2007년 근작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작가의 기(氣)와 혼을 불어넣으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마치 그림 속에 생명발전기라도 돌리는 것처럼 그가 직접 그림 속으로 들어가 감정이입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그림을 잘 그린다, 못 그린다 보다는 그림의 기본인 색채와 형태, 구성과 대조가 어떻게 회화적으로 잘 조화를 이루고 결합하는가에 초점을 두는 것 같다. 그러기에 그의 그림은 때론 터무니없이 무모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엄연히 질서와 원리가 담겨 있다.

공존하는 대조의 역동성

▲ '2007-2-18' 캔버스에 유화 194×194cm 2007. 중간지점에 그림자(blur)를 주어 무거운 물체가 가볍게 떠 있는 효과를 준다 ⓒ 김형순


'2007-2-18'은 작가의 주특기인 대비되는 대상을 공존시켜 그 속에서 발생하는 역동성을 솜씨 있게 일궈낸 작품이다. 파란색과 빨간색의 원통 속에 대비되고 공존하는 중량감과 볼륨감은 커 보인다. 그는 추상화가지만 작가 스스로도 그림 속에 현실세계의 중력을 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작가는 그림제목에 날짜를 붙일 정도로 그림을 열심히 그려왔다. 그의 생활신조도 '일기일회(一期一會, 평생 기회는 단 한 번)'이다. 이 작품은 단순해 보이지만 30년 이상 진화해온 결과물이다. 분명 그를 대가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보이는 획기적 작품이다.

일단 그는 두 상반된 대상의 대비를 통해 수많은 가상공간을 창출하고 환각(幻覺)의 꽃을 피우며 놀라운 위력을 뿜어낸다. 또한 두 원이 닿는 부분에 그림자 효과를 주어 관객으로 하여금 평면이 아닌 깊은 심연에 빠져드는 착란을 일으켜 짜릿한 맛을 보게 한다.

단순하지만 다채로운 색채

▲ '2007-3-22' 캔버스에 유화 162×130cm 2007. 구조의 대칭미와 음영법이 효율적으로 쓰였다 ⓒ 김형순


작가는 오랫동안 색채와 형태에 대한 다양한 변주와 실험을 해왔다. 위 작품에서 보듯 책장 같은 사각판자를 연결시키는 구조는 작가가 즐겨 쓰는 방식이다. 그의 그림이 주는 미덕 중 하나인 입체감과 음영감을 잘 살렸다. 여기서도 그림자(blur)주기는 특효약이 된다.

그의 작품에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이 주이지만 '2007-3-22'에선 초록색을 썼다. 이 색도 수천, 수만 가지의 초록을 생성시킨다. 이렇게 그의 색채는 단순하고 평이해 보이지만 실은 아주 다양하고 다채롭다.

외적 단순함과 내적 심오함

▲ 별관전시실. '41/50' 프린트 III 70×54cm 2000(왼쪽). '41/50' 프린트 IV 2001. 이런 작품은 단순한 외적 형태에 깊은 내적 울림이 담긴 것 같다 ⓒ 김형순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이 작가의 매력 중 하나로 '외적 단순함에 비해 내적 심오함이 주는 풍요로움'을 손꼽는다. 정말 보이는 공간보다 보이지 않는 공간의 멋과 아름다움을 은밀하게 표현하는 것이 이 작가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이제 끝으로 그의 발문 중 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다쯔노의 작품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화면의 공간문제를 다시 상기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공간의 문제는 투시도법과 같은 화면에서의 깊이의 거리를 회복시키는 것과는 차원이 아니다. 반복구조와 상반된 색채의 대비적 공존이 가져오는 분명한 형태의 표상이 이 공간을 치열하게 자각시킨다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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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쯔노 도에코

덧붙이는 글 다쓰노 도에코 작가 홈 http://www.kohjiogura.com/tatsuno 참고
1950년 나가노 현 오카야 생. 1995년 일본국립현대미술관 다쓰노 도에코 특별전(도쿄)
1996년 46회 뉴 아티스트 프라이즈(New Artist Prize)수상(일본 문부성)

진화랑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7-35, 38 전화 02)738-7570 www.jeanart.net
교통편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에서 청와대 가는 길 중간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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