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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3'만 초청? 거꾸로 가는 방송사 대선후보 토론회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KBS·MBC, 이명박·이회창·정동영만 초청하는 까닭

등록|2007.11.19 11:08 수정|2007.11.19 18:07

▲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주최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 이인제 민주당 후보, 심대평 국민중심당 후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손을 맞잡아 들고 있다. ⓒ 권우성


지독한 ‘오만’이 읽힌다. 무서운 ‘독선’이 맨 얼굴을 고스란히 내밀고 있다. 명색이 공영방송이라고 하는 KBS와 MBC가 이른바 ‘빅3 후보’만 초청해 TV 합동토론회를 갖겠다고 한다. 그대로 밀고나간다면 이명박-이회창-정동영 세 후보 토론회가 오는 12월 1, 2일 두 방송의 전파를 타게 된다.

KBS와 MBC 두 방송사는 대선후보토론회 초청 대상 후보의 기준을 후보 등록일 전일부터 3주 이내에 공표된 중앙 언론사 조사 결과 ‘지지율 10% 이상’으로 했다. 두 방송사는 지난 2002년 대선까지만 하더라도 ‘지지율 5% 이상’을 그 기준으로 했었다.

KBS·MBC 두 방송사가 이번에 갑자기 대선후보토론회 초청 대상 후보 기준을 ‘지지율 10% 이상’인 후보로 상향 조정했는지는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왜 그런 기준을 정했는지에 대해서는 두 방송사 사람들까지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다.

이는 중앙선관위원회가 정해놓고 있는 대선후보 초청 토론 초청 대상 기준 보다도 훨씬 엄격한 것이다. 중앙선관위는 그 규칙으로 TV토론 초청 대상 기준으로 ‘여론조사 평균 지지율 5% 이상’인 후보는 물론 ‘원내 5석 이상’인 정당의 후보, ‘직전 선거에서 유표 투표 3% 이상’을 득표한 정당 후보로 하고 있다.

KBS·MBC 두 방송사가 왜 그렇게 하려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말할 나위없이 ‘장사’ 때문일 것이다. 지지율 10%도 안되는 후보들까지 모두 불러모아봤자 진행만 어렵고, 흥행에 실패할 확률도 커진다는 셈법이 작용했을 터이다.

KBS·MBC가 초청 대상을 3명으로 한 이유는?

그렇다면 아예 ‘빅2’로 화끈하게 할 일이지, 왜 3명? 대선후보 토론회에 소극적인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불참 가능성을 고려한 것일까?

두 방송사는 ‘지지율 10% 이상’으로 하다 보니 3명이 된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초청 대상을 3명으로 하기 위해 ‘지지율 10% 이상’으로 한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사실 ‘지지율 10% 이상’이든 ‘5% 이상’이든 애당초 그것은 절대적 기준일 수 없다. 다만 어느 선까지 후보를 초청할 것인가를 대략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지지율 5% 이상’이 가능한 한 초청 후보 대상을 넓히겠다는 방송사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면, ‘10% 이상’으로 하는 것은 가능한 한 초청 대상을 줄이겠다는 입장의 표현이다.

KBS와 MBC는 TV토론 초청 후보 기준을 지지율 10% 이상으로 올린 데 대해 ‘밀도 있는 토론’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말할지 모른다. 6, 7명의 후보를 한꺼번에 불러놓고 어떻게 토론회를 진행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 어떻게 되는가? 비록 소수정당이지만, 우리 사회의 상당수 계층과 세력을 대변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는 물론 새로운 정치세력의 형성을 지향하고 있는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 민주당의 이인제 후보는 초청 대상에서 배제됐다. 결과적으로 이들 두 공영방송은 모두 합쳐서 10%가 넘는 이들 후보 지지자들의 ‘목소리’를 대선에서 배제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방송사들의 고민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그것이 ‘10% 이상’으로 초청 대상을 자른 오만과 독선을 합리화해줄 수는 없다. 이 두 방송사가 공영방송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한국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와 이해를 표출시키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모아가기 위한 정치적 과정으로서 대통령 선거가 갖는 의미를 고려할 때는 더욱 더 그렇다. 아무리 후보 토론의 구성과 진행에 기술적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본’은 하고 그 바탕 위에서 고민과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다.

공영방송사들의 오만과 독선... 방송계 전체의 흐름도 마찬가지

KBS·MBC 두 방송사의 이런 대선 후보 토론은 스스로 다양한 토론 방식에 족쇄를 채우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도 자충수나 다를 바 없다.

이들 두 방송사가 내세우고 있는 밀도 있는 토론을 위해서는, 또 유권자들의 선택을 돕기 위한 토론을 위해서는 다양한 토론 방식이 필요하다.

이명박·이회창 두 보수 주자간 토론, 통합 논의가 진행되거나 거론되고 있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후보와 이인제 민주당 후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간  토론, 또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와 새로운 정치-경제 패러다임을 내세우고 있는 문국현 후보 간 토론 등 다양한 1대1 혹은 두세 명 후보 간 집중 토론을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두 공영 방송은 이들 후보들을 포괄하는 후보초청 토론회를 먼저 기획하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들 두 방송이 ‘지지율 10% 이상’으로 대선 후보 토론 초청 대상을 제한한 것은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보수적 흐름으로 왜곡된 한국의 정치과정을 더욱 왜곡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공영방송의 본분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문제는 이들 두 방송 뿐만이 아니라, 방송계의 전체 흐름이 그런 쪽으로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방송기자클럽은 오는 19~21일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무소속 이회창 세 후보만 초청해 후보 초청 토론회를 갖기로 했다고 한다.

원래는 지지율 1, 2위인 이명박·정동영 두 후보만 초청할 예정이었지만, 두 후보에게 통보까지 한 상태에서 이회창 후보가 출마를 선언해 지지율 2위를 기록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3명으로 초청대상을 늘렸다고 한다.

그런데도 방송계에서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되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 대선 때까지 ‘지지율 5% 이상’ 후보 초청 토론의 성사를 위해 노력했던 방송사 노조들도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고 있다. 공영방송의 정체성과 방송인들의 양식이 의문시되는 지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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