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운동가, 피터 팬을 꿈꾸는 사람들
[청소년운동 20년] 자기 희생과 헌신 속에 청소년 권리 지키려 애써
▲ 입시경쟁 폐지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퍼포먼스 ⓒ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
대입수능시험이 한창이던 15일 오전 정부종합청사 앞에서는 입시경쟁폐지와 대학평준화를 요구하는 청소년들의 퍼포먼스와 기자회견이 펼쳐졌다. 입시, 자율학습, 수능에 찌든 학생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퍼포먼스, 대학평준화와 학벌주의 해체를 주장한 기자회견 등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청소년운동단체들이 진보정당들과 함께 준비한 것이었다.
예배를 강요하는 종교사학에 맞섰던 강의석군, 내신등급제와 두발규제에 항의해 촛불시위를 벌이던 청소년들, 그리고 주체적으로 학생의 날 관련 행사를 치러내며 입시교육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중 고등학생 등 최근 학교와 교육문제 관련해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모습들은 지금 청소년 운동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청소년 운동틀에 담아내는 자유와 인권
▲ 2007년 청소년 행동의날입시문제와 두발규제, 비정규직 문제를 비판하고 있는 학생들. ⓒ 성하훈
우리사회에서 청소년운동이 시작된 것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부독재정권에 저항하던 학생 및 민중운동이 활발하던 시절, 정치의식이 있던 고등학생들이 조직적 움직임을 보였던 것이 당시 고등학생 운동(현 청소년 운동)의 시발점이었다. 이는 87년을 뜨겁게 달군 6월 항쟁의 영향이기도 했다.
이후 사회민주화 요구가 확산되면서 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결성됐고, 선생님들에 대한 대량해고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움직임 또한 활발해진다. 90년대 초 교사와 학생들에 대한 세찬 탄압 속에 주춤거리기도 했지만, 이를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한 것이 바로 지금의 청소년 운동이다.
그간 청소년운동이 성장한 것은 20년의 세월동안 조금의 변화도 보이지 않는 교육현실에 기인한다. 입시 중압감에 목숨을 끊는 자살학생 문제와 사학 비리, 학생 권리 제한 등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에 비해 학생들의 요구는 조직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부당한 처우나 비민주적 비교육적 처사에 대해서는 당당히 목소리를 높일 만큼 그들의 운동역량은 성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청소년 운동이 2000년 이후 안정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데는 청소년 활동가들의 헌신이 존재한다. 2~3년간의 짧은 활동을 마치고 대학이나 사회로 진출하는 청소년들의 여건상, 이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청소년운동이 현재의 모습을 갖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해 준 학생회 활동
대표적 청소년 운동단체인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의 경기지부를 책임지고 있는 연미림씨는 청소년 운동에 14년째 정성을 쏟고 있는 청소년 전문가다. 92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연씨가 청소년 운동에 대해 자각한 때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고등학교 시절 학생회 간부였던 연씨는 학생 권익 신장 활동을 통해 얻는 가치가 너무 소중했고, 그 경험을 많은 학생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 청소년 운동가의 길로 들어섰다. 단체도 없고 황무지 같은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주자는 사명감이 작용했던 것이다.
"고등학교 때 활동이 뭐랄까 너무 유익했어요. 삶의 가치를 발견했다고나 할까? 학생으로서 권익을 찾아나가는 것이 재밌었고… 그래서, 내 경험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30대를 훌쩍 넘긴 나이지만 연미림씨가 늘 가까이 하고 있는 사람들은 10대 중 고등학생들이다. 14년째 활동하면서 10대들과의 삶이 익숙해진 그녀에게 청소년 문제는 끊임없이 헤쳐 나가야할 숲과도 같다. 올해 초 지부를 확장하면서 경기지부를 자원한 것도 서울에 비해 환경이 열악한 지역 학생들을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는 청소년 운동에 대한 희망을 이렇게 말했다.
▲ 청소년 운동가'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의 연미림씨와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의 유윤종씨 ⓒ 성하훈
"청소년들이 자기 목소리를 높일 수 있고,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제도화 시켜 나가는 것, 그래서 청소년들이 행복해하는 나라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유윤종씨는 4년째 청소년 운동에 몸담고 있다. 고2 때부터 활동을 시작한 그는 고3 즈음에 청소년 인권운동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되면서 대학진학 이후에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졸업은 했지만 아직 내 문제라는 인식이 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해 왔던 일이라 익숙한 부분도 있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오랫동안 청소년 문제를 생각했고,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대안을 생각하고 하다보니 이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연스럽게 높아지면서 청소년 운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오래 고민하다 보니 청소년 문제에 대한 의식 높아져
그렇다면 이들이 청소년 운동을 하면서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재정적인 부분을 이야기한다. 빠듯함을 넘어 한없이 부족한 활동비는 일을 할 때마다 부담을 느끼는 부분이다.
"보통 10~30만원 정도이고 많아야 50만원 안팎의 비용이 지원될 뿐이라 자기희생이나 헌신이 없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교통비도 안 되는 돈을 받아가며 애쓰는 것이지요."
한 관계자가 밝히는 청소년 운동가들의 현실이다. "그래서 주축을 이루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95년을 전후해 청소년 단체들이 지역별로 만들어질 무렵, 이들은 자비를 털어가며 활동을 벌여야 했다. 1인당 30~40만원씩 각출해 사무실을 얻고 운영비를 쓰면서 행사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자부심이 없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청소년기를 한참 지난 나이에 청소년운동을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때때로 청소년들이 직접 결정하고 입장을 발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는 그것을 대신해야 하는 입장이라 부담스럽기도 하다. 청소년들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은 보통 평일 일과 시간 중에 해야 하지만 그 시간 청소년들은 모두 학교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과의 괴리감을 없애는 것과 청소년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것도 늘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 고척고 김융희 교사와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구정인 위원장 ⓒ 성하훈
민주노동당 청소년 위원장인 구정인씨(36)는 청소년 분야에만 17년째 몸담고 있는 청소년 운동가다. 청소년 관련 행사가 있을 때는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미림여고 출신인 그는 고등학교 시절 봉천놀이마당과 한물결 등의 단체에서 활동했고, 이후 청소년 지원활동에 몸담으면서 20년 가까이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
진보정당의 청소년 위원장을 맡게 된 이유도 청소년 문제에 대한 고민과 연관되어 있다. '청소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제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그는 제도를 바꾸기 위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 마음을 정책적으로 지원해 주는 곳은 진보정당 뿐이었다. 민주노동당의 청소년 정책이 집약되어 있는 학생인권법 제정은 그가 가장 애쓰고 있는 부분 중 하나다.
이들과는 다른 위치지만 고척고 김융희 교사도 20년째 청소년 운동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전교조 결성 당시 학생사업국장을 맡았던 그는 현재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의 이사. 88년부터 당시 고등학생들의 집회에 나가 학생들과 어울렸을 만큼 학생문제에 관심이 많았기에,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의 관심은 청소년 문제와 청소년 운동이다.
김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학생의 입장을 이해하는 일은 당연히 할 일"이라며, "인간적인 그리고 공동체 적인 교육을 위해 도우미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 20년째 청소년 운동에 관심을 갖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의식 있는 청소년이 다수가 된 대중적 운동
이렇듯 청소년 운동가들이 공개적인 단체를 만들며 정착하게 된 데는 기존 운동에 대한 반성이 영향을 끼쳤다. 초기 고등학생 운동은 학교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철저히 비공개적인 활동을 추구했다. 다른 학교와의 연대를 통한 모임이나 학생 집회 등은 은밀하게 조직됐고, 이 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아 왔다.
'결국, 비공개가 탄압을 자초했다는 반성이 있었고, 합법적 활동을 하면 탄압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2000년에 청소년 단체들이 연합해 사단법인을 출범시켰다. 공개된 형태로 바뀐 청소년 운동은 이후 정부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수주해 사업비도 받고 관련부처에서 협력하는 방식을 취하면서, 지금은 학생들에게 다가서기 좋은 환경으로 변화되고 있다.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의 이은미 사무국장은 이전과의 차이에 대해 "초기 고등학생 운동이 의식 있는 청소년의 비합법 활동이었다면 청소년 운동은 이제는 그들이 다수가 된 대중적 운동"이라고 규정했다.
청소년 운동가들의 노력이 고등학생 운동으로 시작된 비합법 운동을 대중적인 운동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 청소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중고등학생들 ⓒ 성하훈
그러나 청소년 운동에는 아직도 많은 제약이 따른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는' 기본 틀을 벗어나는 것을 싫어하는 분위기는 늘 부담되는 부분. 서명운동만 해도 학생들이 제재를 받는 일선학교들의 억압도 이들이 앞으로 계속 헤쳐 나갈 어려움이다.
또한 앞으로의 전망도 그리 밝지만은 않다. 고척고 김융희 교사는 "지금이야 사회적 분위기 탓에 지원도 받고 하지만 보수 세력이 정권을 차지할 경우 그들이 청소년 운동에 대해 좋은 시각으로 보는 것은 아니어서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며 대선 이후의 상황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 운동가들의 역할은 소중해 보인다.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자기희생을 감수하고, 사명감 하나로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사람들. 학생들을 억압하는 제도에 맞서 학생들 편에서 열과 성을 다해 애쓰는 그들은 후크 선장에 맞서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싸우는 우리시대의 피터팬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한, 청소년 운동의 미래는 계속 '희망'이 싹 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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