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록 저렴한 3천원의 미니 족발이지만 잡내 하나 없고 참 맛있습니다. ⓒ 이효연
지난 토요일(17일) 점심으로 시켜 먹은 미니 족발입니다. 배달은 남편이 맡았습니다. 마침 집 앞에 4분 거리로 재래시장에 있고, 그 안에 미니 족발이며 전거리를 파는 선술집이 있어서 가끔 애용하지요.
미니 족발 3천원이면 넉넉합니다. 거기에 보태서 서울 막걸리 한 병을 사다 달라고 해서 기분 좋게 마시던 중이었죠. 멤버는 딸아이와 저 둘이었습니다.
<왕과 나>에서 그 끈끈한 부자의 정을 이어 나가는 판내시부사와 처선의 연기 장면을 보노라니 괜히 울컥하는 마음이 들지 뭡니까? 해서 비록 '내시 부자'는 아니지만 '모녀의 정'을 확인하고자 한 쪽에서 족발 뜯느라 여념이 없는 딸아이를 불러봤습니다.
"안나야-아, 이리 와 봐! 엄마, 사랑하지? 우우우우웅(쪽!) 엄마도 너 사랑해. 우리 많이 많이 사랑하자!"
이렇게 거침없이 애정표현을 하려는 찰나, 갑자기 "아이, 싫어" 하면서 저를 싹 피하는 딸아이를 보자니 설 마신 막걸리 한 잔 술이 퍼뜩 깨더라구요.
▲ 촬영의 기미를 포착 못 하고 '족발 삼매경'에 빠진 안나입니다 ⓒ 이효연
그때 날아오는 딸아이의 말.
"엄마, 입술이 족발 때문에 반짝거려서 드(더)럽단 말야!"
"드, 드(더)럽다구우우우?? 뭐가 드(더)러워? 엄만 안나 엉덩이도 닦아주고 안나 코도 풀어주고 그런 것 다 하는데 안난 엄마가 더러워?"
"…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럼 엄마는 안나가 먹던 것 먹으라면 안 드(더)러워?"
"그래, 엄만 하나도 안 그래. 안나 먹던 것 먹어도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아."
그래도 이제는 눈치코치 볼 줄 아는 나이인지라 이렇게 들이대면서 "왜 엄마가 드(더)럽냐?"면서 따지는 제 안색을 살피더니 한 발 물러섭니다.
한참을 도로록 도로록 머리를 굴리더니 "엄마가 지난번에 입술 대고 뽀뽀하는 것은 안 좋은 것이라고 가르쳐주지 않았느냐?"는 얘기에서부터 뭐라고 뭐라고 이유를 대며 나름대로 논리(?)를 세우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우습기도 하고 한편 가슴이 싸아해지면서 '나는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인생 아무 고민 없이 족발 맛있게 뜯으면서 속 편한 너, 정말 부럽다. ⓒ 이효연
어느 때인가부터, 글쎄요, 아마 안나 나이 즈음 예닐곱 정도 쯤이었겠죠. 엄마가 비벼주신 밥숟가락은 어쩐지 내키지 않아서 따로 두고 새것을 가져다 먹었던 기억입니다. 또 물도 누가 마셨던 기미기 보이면 제가 마실 것은 새로 떠다가 먹을 정도로 그렇게 어설픈 깔끔을 떨었지요. 그렇게 주욱 자라다가 싹 변한 것이 연애란 것을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어느샌가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남자 친구랑(물론 남편도 포함입니다)은 같이 비빔냉면을 섞어 먹거나 국물 요리를 시켜 같이 떠먹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했다는 거죠. 이 사실을 울 엄니가 아신다면 얼마나 섭섭해 하실까 생각하니 공연히 죄송해집니다.
또 한편 내 자식이 이다음에 저 좋은 사람을 만나 국수를 나눠 먹거나 숟가락 나눠 쓰는 일을 '드(더)럽다'는 말 없이 아무렇지 않게 한다면 제 기분은 어떨지도 궁금해집니다. 지금은 엄마 먹던 것이 드(더)럽다는 표현을 거침없이 하며 거부하던 제 딸아이도 커서 엄마가 되면 제 자식이 먹던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게 되겠지요? 그 모습에 저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요? 아마도 조금은 섭섭하다가 지금 오늘의 일과 비교하면서 '나도 그랬었지' 하며 슬쩍 웃음을 짓게 될까요? 아니면 못내 서운할까요?
문득 알쏭달쏭해집니다. 도대체 '드(더)럽고 안 드(더)럽고'의 기준은 대체 뭔가요? 사랑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요? 그래서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하는 것일까요?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지요?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http://blog.empas.com/happymc/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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