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로스쿨

등록|2007.11.22 14:21 수정|2007.11.22 14:36
얼마 전 졸업한 지 30년 만에 중학교 동창들이 모였다. 느지막이 참석한 자리에서 옛일을 돌아보고 웃음꽃을 피웠다.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좋은 일 나쁜 일 가리지 않고 담담히 돌아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 조금씩 나이의 무게를 느낀다.

물레를 돌려 ‘청(靑)5번’을 뽑고 그날 5시 라디오에 귀 기울여 어느 사립중학교에 배정된 후, 빗물 흐르던 계곡(?)이 뚜렷하고 비 오는 날이면 운동화에 흙이 떡처럼 달라붙던 운동장에서 자갈을 줍고, 건물 증축공사를 할 때 벽돌을 나르던 일, 겨울인데도 깨진 유리창을 한 달이 넘도록 갈아 끼워주지 않던 무심함을 탓하던 마음도 이젠 그저 그렇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공금횡령사건과 교장선생님의 구속... 조회시간에 이 사건을 해명하던 교장선생님은 학생들로부터 야유를 받고 말았던 기억이 스친다. 교실방화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억울하게 당한 친구의 이야기... 그때도 지금도 친구들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다 잘 알고 있었다.

횡령은 누가 했으며, 교장선생님만 억울하게 됐다는 것, 불 지른 범인이라던 친구는 진짜 불 지른 아이를 ‘불지 않고’ 매를 맞아낸 참 멋있는 놈이었다는 것 등 그때도 지금처럼 친구들은 이미 성숙해 있었다. 어느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니들이 나이 들면 이 모든 일들이 뭐가 문제였는지를 다 알게 될 거라고... 돌아보면 그 때도 알 건 다 알았다 싶다. 그러고도 학교 잘 졸업하고 공부 열심히 한 게 신통하기만 하다. 그래도 이 모든 것들을 덮을 수 있는 것은 세월의 무게와 학생들을 헌신적으로 가르쳐주시던 몇 분 선생님들의 사랑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김포외고 시험문제를 교사가 밖으로 빼돌려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문제를 빼내 학생들에게 제공한 학원에 다니던 학생들의 합격이 취소되었다. 세세한 사실관계까지 알 수는 없지만 들리는 얘기로는 그 학원에 다니고 있다 또는 다녔다는 사실 때문에 합격이 취소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소송을 제기하면 뻔할 뻔자로 학생들이 승소할 사건으로 보이는데 학교는 합격을 취소하였다. 일반계 고등학교 시험을 보게 하려면 빨리 취소할수록 학생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잘못은 영문도 모르고 문제지 받아서 읽고 우연히 읽은 문제가 나와서 정답을 골랐든, 주는 문제 읽어보니 쉽게 풀 수 있는 것이어서 시험에는 더는 도움을 받지 못했지만 합격하고야 만 수험생들에게 있지 않다.

시험문제를 빼돌린 교사와 문제유출을 막지 못한 학교, 그리고 돈을 주고 문제를 빼낸 학원 말고 이게 학생이 책임을 질 문제인가? 설사 학원에서 나눠준 문제를 보고 도움을 받아 합격했다 손쳐도 이게 합격을 취소할 일인가? 그걸 준 사람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그걸 받고 합격한 학생도 평생 동안 그 일은 분명 떳떳하지 못할 것임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 이상의 비난이나 불이익을 받을 일은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부인할까?

학교에 다니든 다니지 못하든 이 사건에 얽혀든 학생들은 평생 동안 상처를 안고 살아갈 텐데 어른 아니 선생이란 사람들은 학생들에게 더 큰 상처만 주고 있다. 사건의 본질이 뭔지는 모를 아이들이 아니잖은가? 문제 학원에 다니던 수험생들의 합격을 취소하는 것도 교육자들이 걸을 정도는 결코 아니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고 넉넉하게 잘 이겨내기를 바랄 뿐이다. 선생으로서 참 미안하고 안타깝다.

로스쿨 광풍이 불고 있다. 말 그대로 미친바람(狂風)이다. 로스쿨 설립인가를 받기 위해서 엄청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멋진 계획에 그럴싸한 실적 만들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 예를 들자면, 로스쿨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에게는 5년 동안 논문 800%가 요구된다. 쉽게 말하자면 학계에서 인정받는 학술지에 논문 한 편을 단독으로 실으면 100% 실적이 인정되니 5년 동안 8편을 쓰면 로스쿨 교원으로 적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하는 것이다.

책 한 권을 출판해도 마찬가지다. 로스쿨법이 통과된 이후 9월에서 10월중에 법학논문과 서적이 엄청나게 출간되었다. 기존에 나와 있는 책을 나눠서 책을 출간하기도 하고 필요한 양만큼만 찍어내기도 한다. 5년간 논문 한 편 안 쓰던 분이 갑자기 논문과 책을 합하여 800% 요건을 맞춰내니 신기에 가깝다. 어느 출판사직원은 이런 모습을 두고 2007년 9월과 10월중에 출판된 법학 책은 아예 인용을 할 가치조차 없다고까지 독설을 퍼붓는다.

교원이 강의중인 10월 중에 학교를 옮기고 갑자기 시간강사 신분이 되기도 한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또 다른 학교에서 그렇게 교원을 ‘모셔’오기도 한다. 학기 중인데도 주저함이 없다. 로스쿨이 된다 해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보다도 더 세상물정을 알 만큼은 다 아는 법학전문대학원생들에게 정의와 공평을 어떻게 가르칠지 걱정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정신이 몽롱하다. 날밤을 새웠기 때문이다. 어제 밤도 로스쿨신청서를 만들다가 아침을 맞고야 말았다. 선생 탓을 할 학생이 아니라 선생이 된 지금 나는 이제 이런 꼴을 만드는 제도와 극심한 경쟁만을 탓하여야 할까. 마음이 무겁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송기춘 교수는 현재 전북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이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