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도자기에 분바르는 500년 역사를 이어간다

우리나라의 대표 도자기 ‘분청사기’의 세계를 열어가는 여성작가 이혜진

등록|2007.11.25 14:56 수정|2007.11.25 17:37

▲ '이혜진 도방'에서 기자와 인터뷰 하는 도중 이혜진 작가가 박장대소 하고 있다. ⓒ 송상호


분청사기의 원래 말은 분장회청사기다. 간단히 말해서 그릇에 분장을 시킨다는 의미다. 곧 도자기에다가 분을 바르는 화장을 한다는 것. 그러니까 도자기에다가 그림도 그려 넣고 흙으로 덧입히기도 하고 모양도 내는 그릇을 말한다.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 고유 3대 자기의 주역이 바로 분청사기다.

시대를 나누면 조선시대 임진왜란까지는 분청사기의 시대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감으로써 분청사기의 시대에서 조선백자의 시대로 넘어간다는 것. 그 후 일제강점기에 신식 그릇공장이 들어서면서 사기그릇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라는 설명으로 조선시대와 근대시대의 도자기 역사가 요약된다.

그러고 보면 임진왜란 (1592년)을 기점으로 분청사기의 맥이 이름 없는 도공들에 의해 소리 없이 흘러 왔으니 그야말로 현대에 분청사기를 고집한다는 것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온 우리 조상들의 500년 얼을 고스란히 잇는 작업이라 하겠다.

▲ 물레로 작품 만들기 삼매경에 빠진 이 작가 ⓒ 송상호


이런 역사적인 작업을 이어가는 이가 바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이혜진 작가이다. 도자기에 분바르는 역사를 잇는 여성 이혜진 작가는 분청사기 개인전을 1980년부터 열어왔다. 지금 열리는 개인전까지 무려 14회째다. 거의 2년에 한 번꼴로 개인전을 연 셈이니 가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원래 동양화 전공이다. 1977년 교사 연수회에 가서 만난 흙에 매료되어 10년간 다니던 고등학교 미술교사를 집어 치운 것이 일생일대의 전환점이 된 것. 흙을 만나면서 ‘아하, 이거구나. 이게 바로 나와 꼭 맞는 거구나’ 싶었다는 그녀는 도자기의 길이 이렇게 뜻대로 안 되는 험난한 길일 줄 알았다면 그렇게 선택 안 했을 거라며 웃는다.

“분청사기는 술로 말하면 막걸리에 해당하고요, 송편으로 말하면 기계로 빚은 송편이 아니라 손으로 일일이 빚은 송편에 해당하지요. 고려청자가 고상함, 조선백자가 세련됨을 상징한다면 분청사기는 자연스러운 수수함을 상징하는 것이죠. 꾸미지 않음에서 오는 아름다움은 분청사기에서만 볼 수 있죠. 본래 흙이 가지고 있는 특질 그대로를 드러내주는 것도 분청사기만한 게 없죠. 그래서 가장 서민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그릇입니다.”

작품1화산 모양 ⓒ 이혜진 공방


  

작품2화산 모양 2 ⓒ 이혜진 공방


작품3여인이 세상을 끌어 안고 있는 모양 ⓒ 이혜진 공방



작품4포도 문양 ⓒ 이혜진 공방


그녀의 분청사기 자랑은 끝이 없다.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는 완벽하고 화려하지만, 우리나라의 분청사기가 주는 자연미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 따라 올 것이라는 그녀의 말로 ‘가장 우리 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그녀의 작품은 하나같이 꾸밈이 없다. 소박하다. 자연스럽다. 소재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이다. 분청사기에 그려지거나 덧입혀진 소재들이 화초, 도토리, 콩, 조롱박 등 그녀의 집 주변에서 만나는 자연들인 게다. 그것들이 담겨지니 보는 이들도 이 작가가 느낀 교감을 그대로 느낀다고 하니 분청사기는 그녀의 세상을 담아내는 데 있어서 딱 ‘안성맞춤’이다.

생뚱맞은 이야기일 줄 모르지만 이 작가가 꿈에 계시(?)를 받은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한날 꿈에 외국인들이 몰려와서는 그 중 대표되는 사람이 저의 입에 김치를 먹여주면서 ‘이런 ‘김치’와 같은 것을 만들어보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꿈을 두고 1년 동안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 바로 ‘한글과 우리말’입니다. 우리가 늘 쓰는 말과 글이지만,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세계적인 것이 김치와 같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죠.”

한글자기다음 전시회 제목은 '한글 빛나라'로 정해졌다. 이번 14회 전시회에 출품하려 했으나 작품을 말리는 과정에서 깨지는 바람에 다음 전시회로 미루게 된 것이라고. ⓒ 송상호


다음 번 전시회 제목은  ‘한글 빛나라’로 이미 정해진 셈이다. 한글로 빛이 나라는 주제다. 이번에 시도하려다가 작품이 깨지고 부서지는 바람에 다음 기회로 미뤘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분청사기가 그림과 조각으로 만났지만 이제 한글과 만나고자 하는 것이다.

세기의 만남이 될지, 아니면 시시한 만남으로 끝날지는 이 작가의 손끝에 달려 있다. 안성 노곡리 산자락에 자리잡은 조그만 그녀의 작업실에 또 다른 가장 우리적인 것들의 탄생을 기대해보아도 좋을 듯하다.

작품5등잔 모양 ⓒ 이혜진 공방



작품6꽃 문양 ⓒ 이혜진 공방



작품7주전자 모양 ⓒ 이혜진 공방



작품8찻잔 모양 ⓒ 이혜진 공방

덧붙이는 글 이 인터뷰는 지난 24일에 이혜진 도방( 031-672-0859 , 안성 노곡리)에서 이루어졌다.


‘14회 이혜진 도예전’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기간 : 2007. 11. 28(수) - 12.4(화)
장소 : 한국공예문화진흥원 전시실 2층(서울 종로구 관훈동)
전시실 문의 : 02-733-9040~2, 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