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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노동당 압승으로 12년 만에 정권교체

[호주 총선 리포트③] '파랑'에서 '빨강'으로 색깔 바꾼 호주... 왜?

등록|2007.11.25 14:58 수정|2007.11.26 09:33

▲ 캐빈 러드 당수가 이끈 노동당의 압승을 보도한 시드니모닝헤럴드 ⓒ 윤여문


어제(11월 24일) 실시된 호주 총선에서 '선거혁명'으로 불릴 만한 경이로운 결과가 나왔다. 노동당(ALP)이 현 집권당인 자유-국민 연립당(이하 연립당)을 상대로 86석 대 62석의 압승을 거둔 것.

선거 이전의 의석수는 88석 대 60석으로 연립당이 다수당이었다. 그런데, 최종개표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25일자 '데일리텔레그래프'는 75% 개표결과를 토대로 노동당 86석, 자유당 52석, 국민당 10석, 무소속 2석이라고 보도했다.

이런 결과를 놓고 호주국영 abc-TV의 캐리 오브라이언은 개표방송 도중에 "마치 색깔만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뀐 거울을 보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존 하워드가 이끄는 우파정부가 캐빈 러드가 이끄는 중도좌파정부로 바뀐 것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

결국 41일 동안 이어진 선거운동(election campaign) 내내 '새로운 리더십'을 외친 캐빈 러드 당수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호소한 존 하워드 총리를 물리친 것. 이같은 호주 총선 결과를 놓고 대부분의 언론은 호주의 장래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10년 이상 이어지는 지하자원 붐으로 탄탄대로를 걷는 '섬 대륙(Island continent)' 호주에서 왜 이런 정치적 지각변동이 발생했을까? 대통령선거 D-24인 한국의 정치계가 한 번쯤 눈여겨볼 선거 관련 뉴스는 없을까?

▲ 호주 총선 결과를 됴포로 보도한 데일리텔레그래프 ⓒ 윤여문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뀐 거울"

24일 밤, 개표방송을 진행한 채널9의 레이 마틴은 총선결과의 윤곽이 드러나자 "선거를 통한 혁명적 상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는 이어서 "11년 반 동안 집권하면서, 막판에 국민의 뜻을 외면한 존 하워드 총리에 대한 국민들의 엄정한 심판"이라고 단정짓기도 했다.

부드러운 말투로 정평이 난 마틴 앵커가 '선거혁명'까지 운운한 것은 이번 결과가 "노동당(ALP)이 이겨도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는 여론조사기관의 당초 예상을 뒤엎는 이변이기 때문이다. 노동당은 1996년 6월 총선 이후 11년 반 동안 무려 4차례나 패배를 당한 바 있다.

노동당은 법적 선거운동기간인 지난 6주 동안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계속 10% 안팎으로 앞서왔다. 그러나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지지율의 격차가 4% 정도로 줄어들어 대부분의 선거전문가들은 노동당이 승리해도 한두 석 차이로 이길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결과는 무려 24석 차이.

24일 오후 6시를 기해, 투표종료와 함께 시작된 개표에서 노동당은 초반부터 크게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서 저녁 9시경 노동당은 집권 목표의석인 76석을 이미 확보했다. 그와 동시에 호주국영 abc-TV 등의 방송사와 신문들은 노동당의 승리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12년 동안 야당 신세를 면치 못했던 노동당은 예상 밖의 압승결과를 확인하고 환호를 올렸다. 반면에 집권 자유-국민 연립당은 존 하워드 총리를 비롯한 5명의 현역 장관들이 지역구에서조차 패배하자 망년자실한 모습이었다.

33년의 정치여정, 그러나 '명퇴' 기회 놓친 존 하워드

▲ 노동당의 승리와 하워드 총리의 지역구 낙선을 예상보도한 데일리텔레그래프. ⓒ


특히 존 하워드 총리의 베네롱 지역구 낙선으로 연립당의 충격은 더욱 컸다. 그는 1929년 총선에서 낙선한 스탠리 브루스 총리에 이어서 78년 만에 현역 총리가 낙선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하워드 총리는 68살의 나이 때문에 그동안 정계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해왔다. 그러나 '5연속 집권'이라는 호주 역사의 신기록에 미련을 떨치지 못해 지역구 선거에 나왔다가, 패배를 통한 정계은퇴를 맞게 됐다. 그는 "5연속 집권에 성공해도 임기 중간에 피터 코스텔로 재무장관에게 총리직을 이양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치욕의 '더블 펀치'를 당한 하워드 총리는 밤 10시 30분경 시드니 시내 웬트워스 호텔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 나타나서 "조금 전에 캐빈 러드 당수에게 축하전화를 걸었다"고 밝히면서 "총선 패배의 모든 책임은 나한테 있다"고 선언했다.

사실상 정계은퇴 선언이나 다름없는 연설을 통해서 하워드 총리는 "33년 동안 나를 뽑아준 베네롱 지역주민에게 감사하고 11년 반 동안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준 연립당에 감한다"면서 "연립당 정부는 그동안 불안정한 시대를 지나오면서 호주경제를 탄탄하게 이끈 공로가 있다"고 자평했다.

예상 밖의 큰 패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지지자들이 격한 표현을 써가면서 감정을 노출하자 하워드 총리는 '플리즈'를 연발하면서 "노동당 정부가 호주를 더욱 발전시킬 것으로 믿는다"며서 "아름다운 나라 호주와 호주 국민에게 축복이 있기를"이라는 말로 33년간의 긴 정치여정을 마무리했다.

▲ 캐빈 러드 신임 총리와 존 하워드 총리를 물리친 맥신 맥큐 당선자(왼쪽) ⓒ 윤여문


노동당 '4전 5기' 이끈 캐빈 러드 당수

한편 캐빈 러드 당수는 자신의 지역구가 있는 퀸즐랜드 주 총리의 "새 호주 총리를 소개한다"는 소개말과 함께 브리스베인 썬콥 스타디움에 운집한 수천 명의 지지들 앞에 가족과 함께 등장했다.

캐빈 러드 신임 총리는 "존 하워드 총리의 전화를 받았다"면서 "노동당의 노선과 큰 차이가 나지만, 11년 반 동안 호주를 훌륭하게 이끈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오늘 호주는 미래를 선택했다, 오늘 호주 국민은 함께 미래로 전진할 것을 결정했다"고 총선결과를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이어서 "나는 모든 호주인의 총리가 될 것이다, 특히 호주 원주민의 총리가 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러드 신임 총리는 "오늘 투표에서 처음으로, 또는 오랜만에 노동당에 표를 찍은 유권자들이 많다 걸 잘 안다, 나와 우리 팀을 믿어준 그들에게 감사한다"면서 "나는 호주가 원하는 공통의 이익을 대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노동당의 노선에 불안감을 느끼면서 머뭇거리며 노동당을 찍은 사람들과 연립당 지지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그는 연설 말미에 "나의 오늘이 있게 만들어준 사랑하는 아내 테레사 레인과 아들, 딸에게 감사한다"면서 "가족이 없으면 아무 것도 없다, 지금은 가족과 함께 차 한 잔 마실 시간"이라는 말로 당선연설을 마무리해 '범생이 가장'다운 면모를 보였다.

2007년 총선으로 생긴 호주의 신기록들
1. 현역 존 하워드 총리의 지역구 낙선
1929년 총선에서 낙선한 스탠리 브루스 총리에 이어서 78년 만에 일어난 두 번째 기록.

2. 노동당의 대승
호주 노동당이 거둔 승리 중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두 번째로 큰 승리. 호주 역사상 최초로 중앙정부(연방정부)와 지방정부(6개 주정부와 2개 특별행정자치구)를 노동당이 100% 장악.

3. 퀸즐랜드 출신 총리
최초로 퀸즐랜드 주 출신 노동당 소속 연방총리 등장.

4. 역대 총리 중에서 재산이 가장 많은 총리
부인 테레사 레인이 27년 동안 운영한 회사에서 얻은 수익으로 형성된 재산임, 부인은 남편을 정치활동을 돕기 위해서 선거운동 시작 직전에 회사를 매각했다.

5. 호주역사상 최초로 줄리아 길라드 여성 부총리 탄생
길라드 부총리는 변호사 출신으로 강성좌파 정치인이어서 선거운동 기간 내내 연립당으로부터 "공산당원 출신"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또한 정치활동을 위해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연립당 헤프너 상원의원으로부터 "아이를 낳은 경험이 없는 여성은 총리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범생이' 캐빈 러드 신임 총리는 누구?

▲ 캐빈 러드 노동당 당수의 투표장면을 보도한 데일리텔레그래프. ⓒ


호주노동당의 '4전5기' 신화를 이룩한 캐빈 러드 당수는 2006년 12월 노동당 당권경쟁을 통해 전임 킴 비즐리 당수를 승계한 다음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노동당을 '비전이 있는 미래정당'으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러드 당수는 '해리 포터'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젊음이 넘치는 외모와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범생이'로 소문났다. 그는 노동당 리더답지 않은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하지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는 결단력으로 젊은 층과 여성 유권자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퀸즐랜드 출신인 그는 11살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최근 데일리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중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쓸모없는 존재(I was nerd)였다"고 토로했지만, 사실은 학생대표를 맡고 토론그룹 리더로 활동한 수재였다.

지금은 연립당의 한 축인 국민당으로 당명을 바꾼 지방당(Country Party) 소속 당원이었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의 가족들은 차 안에서 잠을 자야하는 극빈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러드 총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일들이 사회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회상하면서 보수당 출신 아버지를 둔 아들이 진보정당인 노동당에 합류하게 된 속사정을 내비쳤다.

러드 당수는 외교부 공무원과 퀸즐랜드 지방정부 관리를 거쳐 1988년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호주국립대 중국어과 출신으로 만다린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그는 시드니 APEC 정상회담에 참석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만다린어로 대화를 나누어 중국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런 연유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관계를 유지하면서 11년 반 동안 친미 일변도의 외교관계를 이어온 존 하워드 총리와는 달리 캐빈 러드 총리가 친 중국 외교를 펼칠 것으로 예상하는 호주인들이 많다.

그러나 러드 총리는 선거운동 기간에 행한 한 연설을 통해 "하워드 총리와 부시 대통령이 같은 시기에 활동하기 때문에 가깝게 지내면서 후원을 아끼지 않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부시 대통령과 자주 만나서 미국과의 관계를 잘 이어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이라크에 파병한 호주군을 단계적으로 철군시키겠다고 공약했다.

한편 백악관의 한 대변인은 24일 밤 노동당 승리 소식을 접한 후에 부시 대통령이 전하는 축하메시지를 공개하면서 "오랜 동맹국가인 미국과 호주의 관계를 상기하면서, 부시 대통령은 노동당 정부와도 친선관계를 계속 유지하기를 바란다"는 부시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러드 당수는 '새로운 리더십(New leadership)'의 기치를 높이 들고 "과거의 낡은 가치에 머물러 있는 존 하워드 총리의 시대를 청산하고 호주의 밝은 미래를 이끌기 위해서 내가 왔다"면서 40일 선거운동의 대장정에 오른 바 있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혁명이 최우선의 과제"라면서 "노동당이 승리하면 교육총리(Education Prime Minister)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선거운동 내내 수많은 학교들을 방문했다.

러드 당수는 지난 11월 21일, 호주 기자클럽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서 "호주가 중국경제의 빠른 성장으로 예상치 않았던 지하자원 붐을 맞았고, 그 덕분에 OECD국가 중에서 지속적인 경제호황을 누리고 있다"면서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빈부의 격차가 더 커지는 상황이다, 그 해결책은 교육혁명을 통한 기회균등을 부여하는 길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서 "나의 목표는 호주의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이 세계적인 수준의 교육(world class education)을 받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강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특성상 빈곤의 대물림을 막을 방법은 공평한 교육밖에 없다"면서 교육총리가 되려고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 하워드 총리와 맞붙은 맥신 맥큐 노동당 후보가 지지자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다.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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