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들꽃처럼 한결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57] 들줄장미(용가시나무)

등록|2007.11.26 11:40 수정|2007.12.07 17:43

들줄장미(용가시나무)찔레꽃의 바통을 이어 피어난다. ⓒ 김민수


꽃의 세계는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그 꽃이 그 꽃 같은데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차이로 인해 전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꽃들이 있는데 이번에 소개해 드리는 ‘들줄장미(용가시나무)’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름 없는 들꽃’이라는, 흔히 쓰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몇 년간 꽃 사진을 찍으면서 단 한 번도 이름 없는 꽃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꽃, 처음 만난 것을 카메라에 담아오는 날에는 여러 가지 상상을 합니다. 혹시라도 미기록종이면 이름을 뭐라고 질까 하는 그런 상상이죠. 그러나 도감을 펼치면 여지없이 제 상상은 깨지고 맙니다.

들줄장미땅바닥을 기며 피어난다. ⓒ 김민수


봄이 오는 길목에는 찔레꽃이 진한 향기를 머금고 피었다 집니다.
물론 조금 게으르게 피어난 것들은 봄의 끝자락을 붙잡고 피어나는 것도 있지만 여름이 되면 내년을 기약하기 마련이지요. 제가 들줄장미를 처음 만난 것은 제주도의 용눈이오름과 근처의 야산자락입니다.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오름에 올라 들꽃들을 찍으려 엎드렸는데 따가운 가시가 저를 사정없이 찌릅니다. 가시를 성성하게 달고 땅에 쫙 붙어 있는 줄기들이었는데 가만히 보니 하얀 찔레꽃을 닮았습니다. 그저 찔레꽃인 줄 알았습니다. 오름에서 자라다보니 위로 넝쿨이 올라가지 않고 땅으로 기나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찔레가 아니라 들줄장미(용가시나무)였습니다.

그렇게 그 이름을 알고 꽃술이며 이파리를 보니 닮은 구석은 많지만 달랐습니다. ‘아, 이런 차이들로 그 이름이 달라지는 것이구나!’ 생각하며 아주 작은 차이점들을 다 구분해 내고, 꽃들마다 이름을 붙여준 이들의 수고에 감사하게 됩니다.

용가시나무와 들줄장미라는 이름 중에서 저는 ‘들줄장미’가 더 마음에 듭니다. 어차피 장미과의 꽃들에는 성성한 가시가 있으니 꼭 가시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 같고, 들에 놓여진 줄처럼 뻗어가며 자기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으니 들줄장미라고 하면 기억하기도 편리할 것 같아서입니다.

들줄장미그의 향기는 은은하다. ⓒ 김민수


찔레에 대한 전설은 마음 아픕니다.
고려시대 몽골족에게 일 년에 한 번씩 예쁜 처녀를 바쳐야만 했는데 그 중에 찔레라는 소녀가 있었답니다. 찔레가 동생과 부모를 찾아 다시 고향에 돌아왔을 때 이미 동생과 부모는 생사를 알 수 없었고, 찔레는 너무 슬퍼 목숨을 끊었답니다. 찔레가 부모와 동생을 찾아 헤매며 다녔던 곳마다 피어난 꽃이 찔레꽃이라고 전해집니다.

찔레꽃의 꽃말은 ‘고독’입니다.
뭔가 애잔함이 묻어나는 꽃, 그래서 봄날 새벽 찔레꽃의 향기가 뜰에까지 들어오면 ‘찔레가 엄마 찾아 여기까지 왔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찔레꽃이 진 후에 바통을 이어서 피어나는 찔레를 닮은 꽃이 있으니 찔레꽃이 피었다 지기까지 가족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다가 피어난 꽃이 아닐까, 어머니 대지를 붙잡고 피어나는 꽃이니 들줄장미는 찔레의 마음을 담아 피어난 고독한 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들줄장미그들의 삶의 터전은 척박하다. ⓒ 김민수


꽃마다 저마다의 사연을 담아준 사람들, 그리하여 그 꽃의 의미를 더 깊게 해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간혹은 미리 알고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로 인해 다른 면을 보지 못할 때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면면들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겨울은 꽃들에게는 쉼의 계절입니다.

그 쉼 속에 들어 있는 고난의 시간들도 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계절이 오면 반드시 자기 안에 간직한 모습 그대로, 올해 우리가 만났던 그 모습 그대로 피어날 것입니다.

찔레꽃은 찔레꽃으로 피고
할미꽃은 할미꽃으로 핀다
가시가 싫어 할미되는 법 없고
구부러진 허리가 싫어 찔레되는 법 없다
향기 없는 꽃은 없는 대로 피고
못 생긴 꽃들은 못생긴 대로 핀다
그래서 꽃이다

<자작시 - 꽃>

들줄장미그들은 내년에도 꼭 같은 꽃을 피울 것이다. 그래서 꽃이다. ⓒ 김민수


내년에 피어날 꽃, 그것이 올해 핀 꽃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헛된 믿음이 아닙니다. 이런 믿음을 주는 사람이 그리워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온갖 미사여구는 넘쳐나는 데 믿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저마다 대선후보들은 국민들을 위해서 헌신하겠다고 합니다. 마치 자기가 아니면 이 나라가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위협합니다. 간혹 그런 헌신을 대통령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일까 싶기도 하고, 우리네 역사가 대통령 한 사람이 이끌어 온 것이 아니라 말없이 묵묵하게 살아온 이 땅의 민중들이 이끌어 온 것인데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저 해마다 자기의 때가 되면 말없이 피었다가 자신의 때를 다하면 말없이 사라지는 그런 들꽃같은 사람, 그렇게 한결같은 사람이 그립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