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세상'에서 아침을 맞이하다
무턱대고 떠난 한 직딩의 안나푸르나 트레킹 이야기 ①
▲ 새벽 5시. 롯지 마당에서 본 안나푸르나 사우스(Annapurna South 7219m). ⓒ 김동욱
10월 26일 새벽 5시. 여기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의 생추어리 롯지(Annapurna Sanctuary lodge). 절로 눈이 떠진다. 밖은 아직 깜깜하다. 공기가 너무 좋아서 그런지 전날의 피로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리털 파카를 껴입고 방문을 나선다. 지금 내 앞에는 천상의, 아니 신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신의 세상에서 아침을 맞다
▲ 새벽 5시경 롯지 마당에서 본 마차푸차레. ⓒ 김동욱
나는 얼른 방으로 뛰어들어가서 카메라를 들고 나온다. 삼각대는 애초에 가지고 오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식당 문 옆에 버려진 듯 놓인 어느 포터의 때 묻은 운동화가 있다. 주워들었다. 그 운동화를 롯지 마당에 놓인 나무 탁자 위에 올려두고 카메라 렌즈를 운동화 위에 걸쳐 하늘을 향해 고정한다.
차례로 렌즈를 마차푸차레(Machhapuchhre 6997), 안나푸르나 사우스(Annapurna South 7219m), 히운출리(Hiun Chuli 6441m) 쪽으로 향하게 한 후 한 컷씩 찍어본다. 설산과 까만 하늘, 그리고 그 하늘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찍어본다. 다행히 릴리즈가 있어 거의 흔들림없는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 완전히 동이 튼 베이스캠프. 왼쪽 산이 안나푸르나 사우스(Annapurna South 7219m), 그 오른 쪽 산이 히운출리(Hiun Chuli 6441m). ⓒ 김동욱
▲ 동이 터오면서 산봉우리가 황금빛으로 변하고 있다. 곧 눈 부신 하얀 설산으로 다시 옷을 갈아 입니다. ⓒ 김동욱
이렇게 완전히 해가 오를 때까지 여기 안나푸르나는 시시때때로 다른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마치 늘씬한 모델들이 차례로 그들의 옷맵시를 뽐내며 내 눈앞으로 걸어 나오듯……. 뽀얗게 수줍은 설산이었다가 눈 덮인 웅장한 산으로, 또 거대한 황금 봉우리가 되었다가는 어느새 맨눈으로 바로 쳐다볼 수 없을 만큼 눈부신 ‘풍요의 여신’이 된다.
‘안나푸르나’는 우리에게 ‘풍요의 여신’이라는 뜻으로 잘 알려졌지만 정확한 뜻은 이것과는 좀 다르다. 내 가이드 먼바들이 전날 오전 데우랄리 롯지를 나서며 나에게 들려준 안나푸르나의 뜻은 이랬다.
"‘안나’는 쌀 같은 곡식을, ‘푸르나’는 접시 가득 푸짐하게 담긴 모습을 뜻하는 거야."
그러니 사실 안나푸르나는 신의 이름이 아니라 쌀, 혹은 밥이 수북하게 담긴 그릇을 뜻하는 말인 거다. 여기 이 지역이 그만큼 풍요로운 곳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여기에 사는 사람들의 작은 바람이 그들의 산을 통해 ‘안나푸르나’로 나타난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에게 ‘안나푸르나’는 이름 자체가 주는 묘한 아름다움이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안나푸르나는 ‘너무 예쁘다’.
맨눈으로 바라보기 부담스러운 ‘풍요의 여신’
▲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의 롯지 뒤편 언덕에 걸린 불교 기도 깃발. ⓒ 김동욱
난 이들과 좀 떨어진 곳 벼랑 끝에 서서 눈을 감아본다.
“딱, 우르르~” 뭔가 급히 다가오는 듯한 소리에 놀라 화들짝 눈을 뜬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 다시 눈을 감는다. “와르르~ 쿵~!” 이번에는 좀 더 심각한 소리다. 눈을 떠 주위를 살펴봐도 아무것도 없다. 이때 또 같은 소리가 들린다. 발 저 아래, 까마득한 곳에서 바위와 돌, 흙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다. 여기 내 발 아래에서 지금 크고 작은 산사태가 진행 중인 거였다. 자연은 이렇게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항상 변하고 있다.
▲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내려가기 전 나의 아침식사. 혹시 부실해 보이나?? ⓒ 김동욱
▲ 나의 트레킹 경로. 오른쪽 아래 포카라에서 출발해서 왼쪽 위 푼힐을 거쳐 오른쪽으로 고레파니(2860)-반단티(3180)-타다파니(2630)-촘롱(2170)-시누와(2360)-뱀부(2310)-도반(2600)-히말라야(2920)-데우랄리(3230)-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까지 올랐다. ⓒ 김동욱
오전 8시 반. ABC에서 내려간다.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 언제 또 오나. 아쉬움에 아쉬움이 겹친다. 나는 여기서 두 젊은 미국 아가씨 엘렌과 케리를 만났고, 이들과 함께 포카라까지 죽 같이 여행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지기 전날 술을 한 잔 마셨고, 몇몇 기막힌 사연도 만들었다.
아래 지도의 오른쪽 아래가 포카라. 여기서 나야풀까지 택시로 이동한 후 북서쪽으로 루트를 잡아 비레단티(1050m)-티케둥가(1540)-반단티(2210)-고레파니(2860)-푼힐(3193)-고레파니(2860)-반단티(3180)-타다파니(2630)-촘롱(2170)-시누와(2360)-뱀부(2310)-도반(2600)-히말라야(2920)-데우랄리(3230)-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까지 올랐다.
내려올 때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동쪽 루트를 따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데우랄리(3230)-히말라야(2920)-도반(2600)-뱀부(2310)-시누와(2360)-촘롱(2170)-지누단다(1780)-뉴브릿지(1340)-란드룩(1565)-톨카(1700)-담푸스(1650)-페디(1130)에서 택시를 타고 포카라로….
산에서의 순수 트레킹 일정은 9일이었고, 카트만두 인(in)-카트만두 아웃(out)까지의 일정은 13박 15일이었다.
덧붙이는 글
* 2편부터 이 트레킹의 시작~마침까지의 이야기를 풀어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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