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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소王, 훈王이 넘쳐난다

미디어 '왕의 귀환' 열풍...개인보다는 시스템이다

등록|2007.11.29 18:42 수정|2007.11.30 10:26
그 내용이 ‘반지의 제왕’도 아닌데 왕의 귀환이 드라마, 영화, 출판에 범람하는 것은 너무 많아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데 그 왕들은 모두 완소왕 혹은 훈왕이다. 완소왕은 완전 소중한 왕이고, 훈왕은 훈족의 왕이 아니라 훈훈한 왕이다. 완소남이나 훈남의 다른 버전인 셈이다.

‘태왕사신기’의 태왕 담덕(배용준)은 관미성을 치면서 부하들에게 절대 죽지 말고 살아 있으라고 명한다.

왕을 위해 죽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듯 담덕은 자애롭고 부드럽다. 항상 자신의 부하와 백성을 생각하기 때문에 심지어 적국인 백제의 백성들까지 담덕을 따른다. 문제는 늘 신하다. 신하들은 역적이 아니면 결핍의 존재들이다.

연씨 집안과 연호개는 반역을 도모하고, 신하들은 태왕의 완벽함에 경외를 보내는 어딘가 부족한 존재들이다. 담덕의 아버지 고국양왕도 항상 백성만을 생각하는 자애로운 임금이다. 역시 그를 위협하는 것은 신하들이다.

완소왕의 대표는 정조다. 뮤지컬 ‘정조대왕’, ‘화성에서 꿈꾸다’를 비롯해 드라마 ‘한성별곡-정’, ‘정조 암살 미스터리 8일’, ‘이산-정조’는 한결같이 정조를 나라와 백성을 위해 불의에 맞서고 개혁을 추진하는 완소남으로 그린다.

드라마 ‘이산-정조’에서는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인 영조조차 괴질에 걸린 백성을 직접 돌보다 자신이 이질에 걸려버리는 완소왕이다. 정조도 백성의 안위만 생각하고, 부정부패를 없애려는 소중하고 훈훈한 왕이다. 반면 문제는 신하들이나 왕후다. 그들은 백성을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홍국영조차 백성보다 자신의 성공을 우선한다. 드라마 ‘대조영’에서도 고구려를 망하게 한 것은 보장왕이 아니라 부기원이나 남생 같은 신하들이었다.

이는 조선이 망할 때도 마찬가지다. 개봉 흥행작인 영화 ‘식객’에서는 육개장을 먹고 조선 백성의 삶을 생각하며 우는 순종의 모습이 묘사된다. 역시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왕이 아니라 신하들이었다. ‘왕과 나’에서 조치겸과 김처선은 왕을 무조건 받드는 데서 같다. 왕실의 권력욕이 다른 드라마들보다 현실적이지만 정작 성종보다는 왕후들이 문제다.

주몽, 대조영, 광종, 세종, 정조, 대무신왕, 무왕 등등 왕들의 리더십에 대한 책이 쏟아지고, 심지어 제왕의 리더십을 묶은 책도 왕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하다. 왕의 귀환은 정치와 국정운영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한 면이 있다. 완소남이나 훈남과 같은 리더였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현대인의 실존적 고민을 대신하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지만 왕은 왕일 뿐이다. 너무나 식상한 말이지만, 그들은 전제군주다. 정조도 왕권강화와 주자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우선과제였다. 당연히 역사는 왕이 혼자 만들어가는 것도 영웅 혼자 이끌어가는 것도 아니다. 대중지성의 시대를 거스르고 있다. 더구나 대통령학의 대가인 리처드 뉴스타트의 언급이 아니라고 해도 21세기 국정운영에선 대통령 개인보다 시스템이 중요하다. 조선이건 고구려나 발해라고 해도 시스템에서 통치력은 발휘되었다. 왕의 인성에 대한 상상력은 넘쳐나지만, 그 시스템에 대한 상상력은 부실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뉴스메이커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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