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돌쇠, 새 여친 생기다

마님이 떠난 간척지에 서서

등록|2007.11.30 08:16 수정|2007.11.30 08:17
“팀장님, 요즘 마님이 통 밥을 안 먹고 힘이 없이 비실거리는 게 이상해요.”
“어디 아픈 거 아니야. 내가 점심 때 시간 내서 병원에 한번 데리고 갈게.”


저는 마님을 데리고 현장에서 한참 떨어진 동물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에서는 우리 마님 같은 개는 개 취급도 하지 않고 ‘뭐 하러 이런 개를 물 흐리게 이런 곳에 데리고 와 귀찮게 하냐’는 표정으로 우리 일행을 대하는 겁니다.


“원장 선생님, 비용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녀석은 우리들의 기쁨입니다.
꼭 고쳐주세요.“


저의 흥분되고 상식에 벗어난 몸짓이 조금 지나쳤는지 원장선생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혹시 항문에서 피는 나오지 않던가요? ”하며 되물었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뭐라고 전문용어를 나열하더니 요즘 유행하는 개 전염병인데 폐사시키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며 주사 한 방이면 가볍게 끝난다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그분은 우리 마음을 너무 몰랐습니다. 자기 자식이 아파도 그렇게 말을 쉽게 할까요. 사람의 수명은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점점 늘어가지만 우리 마님 같은 개들은 수명이 점점 줄어들어 개의 나이 한살은 사람나이 20년에 해당하는 느낌입니다.


세상의 개들도 두 종류로 분류되는 걸까요. 귀족 개와 온갖 잡견. 혈통 좋고 뼈대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발톱에 매니큐어 바르고 염색하고 거세와 불임수술을 받으면서 개 전용 통조림 먹으며 사는 개만 우대받는다면 ‘과연 이 세상 개 가운데 몇 마리나 살아야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까?‘ 라는 웃기는 망상을 했습니다.

저는 마님을 데리고 원장선생님이 성의 없이 처방해주는 하얀 가루약 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차 안에서 나와 마님은 습관적으로 켜던 라디오 플레이 버튼에 손도 대지 않고 흑백 필름같은 창문 밖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지요. 그녀는 나의 침묵을 자기의 병에 대한 책망으로 받아들였는지 ‘끼잉’하고 신음을 한 번 하더니 두 다리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있습니다. 검은 눈동자와 윤기 나던 콧등은 눈곱이 끼고 하얀 소금가루가 맺혀 있네요.

굳어있는 마님의 옆모습이 애처로워 쓰다버린 칫솔처럼 뻣뻣해진 그녀의 털을 쓰다듬어 봅니다. 내 손에 그녀의 뼈마디가 잡힙니다. 생과 사의 기로에 선 한 생명의 불꽃이 가늘게 떨리고 있습니다.

저는 인천 연안 부두 근처 학익하수종말처리장 신축공사에서 전기공사 기사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이곳은 단지 각종 오폐수를 생물학적 산소요구량을 맞추어 바다에 내보내는 정수작용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과 부산물을 이용해서 식물원과 생태공원을 운영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건물 지하에서는 오염된 물들이 정화되어 바다로 내보내지고 지상에서는 그 물의 일부와 열, 폐 찌꺼기를 이용해서 주민들이 쉴 공간을 만드는 복합프로젝트라는 거죠.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망둥이 낚시와 조개잡이를 하던 갯벌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갯벌이 다 간척지가 되어서 대규모 물류시설과 냉동 창고들이 속속 세워지고 있답니다. 과거의 흔적이라고는 다 메워진 갯벌 구석에 반쯤 허리가 잠긴 폐선들이 서너 척 보이는 정도지요.

쿵쿵거리며 땅에 파일을 박는 기계음이 하루 종일 들리고 눈을 들어 왼쪽을 바라보면 송도 신도시의 불빛이 붉고 파르스름하게 윤곽을 드러내는 개발현장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현장의 땅 속에는 수많은 조개와 물고기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오전 7시에 국민 체조를 하고 안전구호를 외치고 손에는 공구를 챙겨 들고 입에는 종이커피 잔을 물고 현장에 투입됩니다. 창고 겸 숙소가 있는 컨테이너와 현장과는 걸어서 150미터쯤 떨어져 있습니다. 도면을 보고 작업을 하다보면 동절기의 어둠이 저만치 밀려옵니다. 

길고 지루하고 단조로운 노동자의 하루가 지나고 숙소에서 세면하고 밥을 먹고 나면 이곳은 깊은 어둠에 잠겨버리죠.  먼지가 많은 현장에서 사람들은 말을 아낍니다. 사람과 사람의 대화도 꼭 필요하고 사무적인 말 외에는 입을 열지 않으려고 합니다.

전기공사팀 직원들도 예외는 아닌데 어느 날 녀석들은 기쁨조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주인에게 버림받은 강아지 수놈이 이곳 현장까지 오게 된 겁니다. 조금 있다가 짐승은 혼자 있으면 외로움 탄다고 암놈 강아지가 비슷한 이유로 이곳에 입양되었습니다.

지방에 집이 있어 컨테이너에서 숙식을 하는 직원들 가운데 한 분이 개 담당이 되셨고 우리들은 개가 아직 어려 밥을 잘 먹지 못하는 것 같아 미성숙견용 개사료를 사다가 먹이고 개똥도 치워주고 새참으로 나온 우유도 덥혀서 먹여가며 녀석들을 보살폈습니다.

현장에 투입될 때와 잠시 휴식을 취하러 들어올 때마다 두 놈들은 우리들을 반겼습니다. 꼬리를 흔들며 껑충껑충 뛰면서 우리 주위를 맴돕니다. 함바식당(현장직원들 전용 식당)에서 돼지고기 볶음이나 뼈해장국이 나오면 슬그머니 싸가지고 와서 녀석들에게 주면 그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릅니다.

녀석들이 이곳에 온 지 일 년이 지나가면서 두 녀석의 족보가 몸에 확실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수놈은 두 눈과 입 주위에 주먹만 한 검은 점이 있는 발바리 종이고, 암놈은 몸 전체가 하얀 토종견이더군요.


다리가 짧고 통통한 녀석을 우리는 돌쇠라고 부르고 다리가 길면서 날씬한 놈을 마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강아지 사료에서 중견 사료로 바꿔 먹이면서 녀석들의 활동 범위는 넓어졌습니다.

우리가 일하는 현장에도 소장님이 순시한 다음에 녀석들도 따라와서 우리 주변을 촐랑거리면 머리라도 한 번 쓰다듬어 줘야합니다. 무관심하게 우리 작업만 하면 드라이버나 장갑을 물고 도망가서 우리 눈치를 살핍니다. 그 덕분에 우리도 잠시 쉬면서 살아있는 생명체와 교감을 나눕니다.


녀석들이 가장 기분 좋을 때 취하는 행동은 벌렁 드러누워 네 다리를 들고 있는 겁니다. 그 천진한 눈망울과 재롱을 보면 웃음이 나오고 피로가 한 순간에 날아갑니다. 비록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마님과 돌쇠는 우리의 가족이고 자식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마님은 끝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나와 개 당번 반장님은 돌쇠를 묶어놓고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마님을 묻었습니다. 마님이 먼 길을 떠난 후 돌쇠는 눈에 띄게 위축되었습니다. 우리들은 더욱 신경을 써서 돌쇠에게 장난을 쳐도 돌쇠는 마지못해 몇 번 응하다가 자리를 피했습니다. 돌쇠가 밥을 먹지 않고 비실거리자 우리 전기공사팀 직원들도 덩달아 축 처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야, 이러다가 돌쇠마저 가는 거 아니야, 뭔 대책을 세워야 하잖아”
“홀아비가 과부 만나는 거 이상 가는 약이 어디 있겠어. ”
“사료가 입에 맞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닐까? ”
“돌쇠 녀석 우울증에 걸린 것 아니야. 우리 차가 지나가면 피하지도 않고
멍하니 있어. 이러다가 교통사고 당할까 걱정이야”

말들은 많았지만 별 신통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서 고민하는데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삶에는 예기치 않은 행운이 가끔 생기는가 봅니다.

“팀장님, 돌쇠의 새 여자 친구 보셨어요?  점심때 울타리 근처 억새풀 사이에서 돌쇠를 보았는데 귀가 쫑긋하고 털색은 마님하고 같은 하얀 암캐랑 같이 나오더라구요.“


그 후에 저도 돌쇠의 여자 친구를 몇 번 목격했습니다. 녀석의 모습을 지켜보는 제 감회는 남과 달랐습니다. 불과 보름 전만해도 녀석이 밥도 잘 안 먹고 풀이 죽어서 비실비실 거렸던 것을 저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돌쇠의 연인이며, 누이였던 마님의 죽음은 장난기 많고 낙천적인 녀석에게도 메울 수 없는 그늘을 가져온 것이지요.


나이는 돌쇠보다 연상인 듯 했습니다. 다리에 흙이 묻어있고 눈빛이 항시 긴장되어 있는 걸 봐서 주인 없는 개 같았습니다.  순박한 마님과는 달리 세상풍파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한 아줌마 냄새가 풍겼지만 우리 돌쇠가 아줌마를 더 좋아하는 눈치니 어쩌겠습니까? 아직은 그녀가 우리에게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멀리서 맴돌지만 돌쇠와 좋은 인연이 되어 우리 식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별과 만남, 희망과 절망, 고통과 기쁨이 우리의 감정을 하루에도 몇 번씩 쥐었다가 놓는다고 해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한 가지는 꼭 붙잡고 살고 싶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생명체도 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11월의 서해안 바다 바람이 차갑습니다. 늘 안개와 먼지가 시야를 가리는 이곳에서 내년 봄에 새 생명의 소식이 들려오면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문화방송 여성시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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