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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귀곡산장'이 되었어요

[폐교된 소두라분교장 방문기] 작은학교는 지역주민의 희망

등록|2007.11.30 12:06 수정|2007.11.30 13:34

▲ 소두라도 마을에 들어서면 옹기 종기 집들이 양짓녁 비탈에 모여있고 선창엔 그물이 널려 있지만 사람 만나기가 어렵다. ⓒ 김치민


“여기 몇 가구나 살아요?”
“아홉 가구 살았는디 한 집이 이사가고 여덟 집 사요.”

소두라도 선창에서 두 어부를 만났다. 휑한 방파제에서 두툼한 외투에 손을 찔러 넣고 서성인다. 인사를 나누고 비탈을 오르는데 뒤통수로 어부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여?”
“중학교 선생들인디 학교 보러 왔다는구만요.”

지난 28일, 선생님들과 관내 학구를 돌아보기로 했다. 친목 모임을 소두라 분교에서 하기로 하고 이런 저런 준비를 마쳤다. 통학선을 탔다. 초겨울 쌀쌀하던 바다 바람은 자고 날이 맑다. 지나는 바닷물에 비친 햇살이 예쁘다.

소두라도는 올 봄까지 모두 아홉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는데 어느 틈에 한 가구는 여수로 옮겼다. 지금은 여덟 가구가 생활한다. 섬 북쪽 물살이 조용한 곳에 작은 가두리 양식장을 운영하고 척박한 산허리를 개간해 고구마와 채소를 심어 가꾸는 섬이다. 정기 여객선이 닿지 않는 섬이라서 찾는 이도 거의 없다. 가끔 찾는 손님이라야 마을에 관심 없는 낚시꾼 몇몇이 전부다.

소두라도, 아홉 가구 살았는데 여덟 가구로 줄어

소두라 선착장 방파제는 지난 여름 태풍 나리에 맞아 반 토막 났다. 끊어진 방파제가 옆으로 비스듬히 누웠다. 선착장에는 소두라도에서 사는 어부 두 명이 서성이고, 멀리 갯바위에서 낚시하는 사람 두어 명이 보인다.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가 끊긴 마을은 황망하기 그지없다.

▲ 소두라도 마을로 들어서면 이런 빈집들이 많다. 사람이 떠난 집에 거미가 산다. ⓒ 김치민


집들은 오래된 페인트 자국으로 모습을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마을을 이리 저리 둘러보아도 더 이상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오래된 교회의 십자가와 부서진 대문에 부지런을 떨어놓은 거미집이 있을 뿐이다. 소두라분교장 가는 길은 가파른 산비탈을 올라 혼자서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오솔길 끝에 있다.

▲ 소두라 분교장은 좁다란 길을 따라가면 그 끝에 있다. 모처럼의 나들이를 하는 여행자라면 고즈넉한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길이다. ⓒ 김치민


소두라에는 몇 해 전까지 화태초등학교 분교장이 있었다. 선생님 한 분이 10명 내외의 아이들과 꿈을 가꾸던 보금자리였다. 1965년 4월 두라국민학교 소두 분실로 개교하여 운영되다가, 1982년 3월 두라초등학교 소두분교장으로 승격하였다.

두라초등학교가 학생수 급감으로 화태초등학교 두라분교장으로 격하되면서 1991년 5월 화태초등학교 소두분교장으로 소속이 변경되었고, 1992년 9월 학생수 부족으로 폐교되었다. 지금도 한 칸의 교실, 고풍스런 화장실, 아이들이 닭을 키웠을 닭장, 선생님이 생활하시던 관사, 그리고 앙증맞은 운동장과 운동장을 빙 둘러싼 방풍용 생울타리는 여전하다.

교육청에서 몇 번 분교장 매각을 공고했지만 구매자가 없어 화태초등학교에서 매년 잡초를 제거하고 건물을 관리하고 있다. 올해도 초여름 폐교 관리를 위해 행정실 직원이 다녀왔지만 소두분교장의 모습은 귀곡산장에 등장하는 모습이다. 웃자란 생울타리는 손길을 타지 않은 선머슴 머리모양이다. 좁은 운동장은 잔디구장이다. 억새와 잡풀이 우거졌을 여름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초여름에 정리하지 않았다면 밀림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귀곡산장으로 변한 소두분교

우선 예초기로 운동장을 정리했다. 아련한 반공 이데올로기의 상징 반공소년 이승복 동상이 아직도 우뚝 서 있고 옆에는 다소곳이 앉아 있는 독서하는 소녀상이 보인다. 아이들이 주변의 풀들을 뜯어 먹였을 닭장과 고풍스런 화장실이 그대로다. 운동장에는 미끄럼틀, 그네, 철봉이 주인을 읽고 세월의 흔적을 기록하고 있다.

▲ 소두라 분교장에는 아직 아이들 소리가 묻어나올 듯한 미끄럼틀, 그네, 철봉 등이 마당 한켠에 서있다. ⓒ 김치민


▲ 반공소년 이승복 동상이 아직 건재하다. ⓒ 김치민


▲ 양편으로 남자용 소변기가 있고 가운데 대변기가 있는 오래된 화장실 ⓒ 김치민


이 마을에는 더 이상 이삿짐을 싸들고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 지금 생활하는 세대도 나이든 할머니 할아버지이거나, 아이들 다 키워 대처로 보내고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뿐이다. 어린 아이를 둔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다. 학교가 없고 문화시설이 없다. 농어촌에 학생이 적으니 작은 학교를 통폐합해야 한다는 경제 논리는 젊은이를 농어촌에서 몰아내고 있다. 통학버스 제공, 하숙비 지원을 미끼로 농어촌 소규모 학교 통폐합을 설득하는 교육당국이 허망할 뿐이다.

이제 모든 것이 돈이다. 점점 삭막해져가는 인심을 탓할 일이 아니다. 없는 돈에 대처에 집 마련하고 어린 아이 자취시키다가 부모가 섬을 떠나는 것이 도서지역 인구감소의 원인이라고 타박할 수 없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법률에 정한 의무교육 기간이다. 의무교육이란 국가가 국민에게 이행하도록 요구하는 교육이다.

▲ 닭장과 우물과 미끄럼틀 ⓒ 김치민


국가는 경제적 비용의 과다를 떠나 가장 적절한 내용을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적합한 환경에서 국민이 교육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에서 가장 적합한 환경은 좋은 교육 시설과 더불어 학생이 생활하는 터전에서 가족의 보호와 지도를 받으며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작은 학교를 유지하고 지원해야 하는 이유이다.

교육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하는 기업 활동이 아니다.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기업활동에서는 생산비가 지나치게 높으면 생산을 중단하고 공장 문을 닫는다.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활동에서 비용의 효율성만을 내세워 학교 문을 닫는 것은 미래 나라의 문을 닫겠다는 발상 아닌가?

농어촌과 도서지역의 학교가 주는 의미는?

농어촌 특히 도서지역에서의 학교는 교육기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학교가 있는 마을은 아직 활기가 있다.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이 있고, 학부모들이 모여 함께 만들어야 하는 교실이 있고, 마을일을 상의할 수 있는 선생님들이 있다.

마을에 큰 행사가 있으면 운동장에 모여 학교 마이크도 쓰고, 널찍한 운동장에서 동네잔치도 한다. 이렇게 어우러져 살면서 이들은 마을의 문화를 만들고 삶의 보람을 얻는다. 아름다운 작은 학교는 힘없는 농어촌 주민의 힘이고 희망이 된다. 쇠락한 소두라도의 마을 풍경이 통폐합을 앞둔 수많은 농어촌 마을 모습으로 다가온다.

주변 정리를 끝내고 임시 족구장을 만들어 세 팀으로 나누어 경기를 진행했다. 고르지 못한 운동장 덕에 족구하는 재미가 넘친다. 이기고 지는 것은 이미 남의 일이 우선 눈앞에 떨어진 족구공이 어디로 튈지 가늠하는 것이 먼저다. 오래 전 사라진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마을 사람들의 종종 걸음 소리 대신 중학교 선생님들의 웃음소리와 운동장을 정리하는 예초기 기계음으로 늦가을 작은 초등학교 분교 마당을 채웠다.

“여보쇼. 물이 나요. 어서 배 옮겨야것소. 조금 있으면 자갈밭에 배 언치고 마요.”

두어 시간이 지났다. 선창에서 봤던 그 어부가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정박한 통학선이 썰물 때문에 수위가 낮아지면 나갈 수 없다면서 급하게 부른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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