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극인 선생의 생가가 있던 자리에 집은 헐리고 비석만 남아있다. ⓒ 조정숙
정극인이 지은 '상춘곡'의 배경인 칠보 원촌 마을 성황산에서 400여 년이 흘러간 지금 그 숨결을 느껴본다. 부모님의 고향인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이곳이 정극인의 상춘곡이 태어난 곳이다. 부모님 댁을 방문할 때마다 무심코 지나쳤던 그곳의 발자취를 교직에 계셨다 퇴임하신 후 귀향하신 아버님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따라가 본다.
▲ 자랏내가 보이는 냇가가 마을을 감싸고 흐른다. ⓒ 조정숙
상춘곡의 배경인 무성리 근교에 무성서원이 있어 상춘곡과 무성서원, 한정도 함께 소개해볼까 한다.
그 물은 바로 성황산 바위에 부딪쳐 웅덩이를 이룬다. 먼 훗날 이 깊고 푸른 물가에 선비들은 후송정을 짓고, 송정(松亭)에서 광해군 때 시국을 걱정하셨던 선비들(7狂 10賢)을 추모하고 시를 논한다. 눈부신 백사장에 천렵도 하고 술도 마시고 산나물(이곳은 고사리 고적이다)도 꺾는다. 지금도 산죽(山竹)이 무성한 길을 올라 산봉우리에서 내려다 보니 신선된 마음이 짐작이 간다.
▲ 상촌곡의 정극인 선생의 동상 ⓒ 조정숙
▲ 정극인 선생의 상춘곡비 ⓒ 조정숙
▲ 마을길 가운데 자리잡은 버드나무, 성황산에서 이 나무를 바라보며 풍류를 즐겼다. ⓒ 조정숙
산중에 거처하며 봄날의 홍취에 한껏 젖어 온갖 풍류의 즐거움을 느꼈고 높은 산에 올라
수많은 마을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자연의 품안에 머무니 부귀와 공명을 욕심내지 않았고
청풍과 명월을 벗하는 안빈낙도의 생활로 살아갔던 그 시절에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었던
가사문학의 첫 작품인 상춘곡의 고향을 찾아갔다.
1984년 9월 11일 송하철(宋河澈) 정읍 군수(郡守)가 정극인 대표작인 상춘곡비를 세웠다. 상춘곡비 바로 옆에 정극인의 동상도 세워졌다. 영광 정씨(靈光 丁氏)로 어려서 부모를 따라 선대의 고향인 영광에 가서 자랐던 정극인. 1429년 29세에 사마시(司馬試) 에 합격하여 서울의 태학관(太學館)에서 수학하였다.
▲ 상춘곡의 배경인 칠보 원촌마을 성황산 풍류를 즐겼던 모정 ⓒ 조정숙
상춘곡(봄경치를 구경하며 즐기는 노래) 해설
세속에 묻혀 사는 분들이여. 이 나의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한고? (속세를 떠난) 옛 사람의 운치 있는 삶을 따를까 못 따를까? 천지 사이에 남자로 태어난 몸으로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많건마는 (그런데 나인들 어찌) 산림에 묻혀서 사는 지극한 즐거움을 모르겠는가? 두세 칸 초가집을 맑은 시내를 앞에 둔 곳에 지어 놓고, 송죽이 울창한 속에 청풍명월을 마음껏 즐기며 사는 가인이 되었구나!
엊그제 겨울이 지나가고 새봄이 돌아오니, 복숭아꽃, 살구꽃은 저녁 햇빛 속에 피어 있고, 푸른 버들 향기로운 풀은 가랑비 속에 푸르구나. (이 아름다운 봄경치는) 칼로 마름질하여 냈는가, 붓으로 그려냈는가?
조물주의 신령스러운 솜씨가 보이는 것마다 아름답게 나타나 있다. 수풀에 지저귀는 새는 봄기운을 가누지 못하여, 소리마다 아양거리는 맵시로다. 자연과 내가 한 몸이니 (저 새의)흥이야 (나의 것과) 다를 수 있겠는가? 사립문을 나서서 걸어도 보고 정자 위에 앉아도 보니, 어슬렁거리며 시를 읊조리는 산 속의 쓸쓸한 나날에 한가로움 속의 참다운 맛을 알사람 없이 혼자로구나.
여보게, 이웃 분네들. 산수 구경 가자꾸나. 들놀이는 오늘 하고, 물놀이는 내일 하세. 아침에 산나물 캐고, 저녁에 낚시질 하세, 이제 막 익은 술을 갈건으로 걸러 놓고, 꽃나무 가지 꺾어 셈을 하며 마시리라. 부드러운 봄바람이 문득 불어 푸른 물을 건너오니, 맑은 향기는 술잔에 가득 배고, 붉은 꽃잎은 옷 위에 떨어진다. 술통이 비었거든 나에게 알리어라.
어린 아이를 시켜 술집에 술이 있는가를 물어, 어른은 지팡이 짚고, 아이는 술을 메고, 나직이 읊조리며 느릿한 걸음으로 시냇가에 혼자 앉아 고운 모래 깨끗한 물에 잔을 씻어 부어 들고, 맑은 시내를 굽어보니 떠오는 것이 복숭아꽃이로구나! 무릉도원이 가까웠나보다. (아마도) 저 들이 그것인가?
소나무 숲 사이 좁은 길에 진달래를 손에 들고 산봉우리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 보니 수많은 촌락들이 곳곳에 널려 있네! 안개와 놀 빛나는 햇살은 수놓은 비단을 펼쳐 놓은 듯 엊그제까지 검던 들에 봄빛이 넘치는구나! 공명도 나를 꺼리고, 부귀도 나를 꺼리니, 청풍과 명월 외에 어떤 벗이 있겠는가? 소박한 시골 생활 속에서도 허튼 생각을 아니하네. 아무렇든 한 평생의 즐거운 삶이 이만하면 넉넉하지 아니하랴
▲ 무성서원 전경 ⓒ 조정숙
▲ 외국인도 관심을 갖고 연신 질문하는 모습이 보인다. ⓒ 조정숙
무성서원
1968년 12월 19일 사적 제166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최치원을 제향하기 위한 태산사였으나, 1696년(숙종 22) 사액(賜額)을 받아 사액서원인 무성서원이 되었다. 태산사는 1484년(성종 15) 최치원을 제사지낸 유상대 위의 선현사를 이건한 것으로, 1544년(중종 39) 신잠을 같이 모셨고, 이어서 정극인·송세림·정언충·김약묵·김관 등을 함께 모셨다.
문루인 현가루는 두리기둥을 쓴 정면 3칸, 측면 2칸 기와집이고, 그 안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 기와집인 강당인 명륜당이 있으며, 오른쪽에 4칸의 강수재 왼쪽에 3칸의 흥학재(興學齋)가 있어 동서재(東西齋)를 이룬다. 3칸인 신문(神門)을 지나면 사우(祠宇)인 단층 3칸의 태산사가 있는데, 그 안에 최치원을 북쪽 벽에, 같이 모신 사람들의 위패(位牌)는 좌우에 봉안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844년(헌종 10) 중수한 것이며, 명륜당은 1825년(순조 25)에 불탄 것을 1828년에 중건하였다. 특히 여기에는 1486년 이후의 봉심안(奉審案)·강안(講案)·심원록(尋院錄)·원생록(院生錄)·원규(院規) 등 중요한 서원 연구자료가 있다.이곳에 방문했을 때 외국인도 방문하여 동행한 사람으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 인생과 세상사의 토론장이었던 정자 ⓒ 조정숙
▲ 유학자 면앙정 송순, 퇴계 이황, 하서 김인후, 일재 이항, 인당 조희 등과 더불어 풍류를 즐겼던곳 ⓒ 조정숙
한정(閒亭)
선인들의 풍류 담긴 쉼터요, 인생과 세상사의 토론장이었던 정자는 그 자체가 훌륭한 건축물은 아니지만 장소 선택의 동기나 정자를 만들고 즐기는 사람의 마음 등이 어우러지는 매력을 갖고 있다.
담양의 송강정, 면앙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한정은 조선 초 1520년대 창건되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했다가 중건했다고 한다. 한정은 김약회의 정자로 그는 그 당시의 유명한 유학자 면앙정 송순, 퇴계 이황, 하서 김인후, 일재 이항, 인당 조희 등과 더불어 풍류를 즐겼기 때문에 현재 이곳에는 많은 편액이 보관되어 있다. 그 중에서 면앙정 송순의 시를 은석 김병수 문집에서 옮겨본다.
이 늙은이 여기 와본 지 오래 되어서 어린 버들 어느덧 커서 시냇물을 덮었네
(不見此翁久/稚楊高蔽川)
늙은 몸 묻힐 땅 필부로 돌아온 뒤에 만인 앞에 두렵지 않은 대담한 기백
(筋骸匹夫後/膽氣萬人前)
세상사 모두 게으름 속에 포기했고 푸른 산 맑은 바람 술 취한 끝에 부르네
(世事抛慵裏/ 山風引醉邊)
시를 짓고 읊조리는 게 되례 수고로움이라. 묵묵히 혼자 앉아 그 천지를 보노라
(吟詩還費力/ 黙黙臥看天)
- 면앙정 송 순 -
주변관광명소:무성서원, 한정, 삼층석탑, 단종비 유허비, 시산사, 필양사, 남천사, 도봉사(공신녹권 국가 보물 소장), 불우헌 정극인의 묘. 연화동 분묘, 칠보 섬진강 수력발전소(옥정호), 백암리 남근석, 상춘곡 시비⇨한정(시지정 문화유산 1호)⇨송정(문화유산)⇨동편 고적⇨ 단종비 송왕비 비석⇨남전 충민공 유적⇨송산⇨ 화장동 충민공 기단⇨유상대⇨사메 묘지⇨ 연화동 묘원(慕鄕공원)⇨김회련 공신록권⇨ 칠보(국가지정 보물) 이태조 왕지⇨칠보(국가지정 보물) 고현(古縣)동 향약 즉남전(藍田) 향약⇨ 칠보(국가지정 보물) 무성서원
상춘곡의 원류와 무성서원 한정이 있는곳을 찾아가려면?
호남 고속도로 정읍 IC 또는 정읍터미널 - 1번 국도 - 북면 삼거리 - 무성교 - 무성서원
서해안 고속도로 부안(신태인)IC- 신태인- 태인IC- 칠보(30번국도)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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