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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홍대 앞엔 '앞치맛바람'이 분다

[현장르포] 실기시험 코앞, '미술학도'꿈 꾸며 전국에서 모인 '미대 입시생'들

등록|2007.12.03 16:24 수정|2007.12.04 11:50

▲ 1일 홍대 앞 미술 학원가, 합격자 명단이 붙은 미술 학원 사이를 앞치마를 입은 미대 입시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 곽진성


▲ 홍대 앞 미술학원가는 지금 전국에서 상경한 5천여명의 미대 입시생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미대 입시생들이 입고 다니는 앞치마는 이채롭게 보인다. ⓒ 곽진성


지난달 15일 대학 수학능력이 끝났지만, 12월을 맞아 홍대 앞은 또 다른 입시 전쟁이 시작됐다. 12월 말부터 2월초까지 진행되는 서울지역 대학의 미대 실기 시험 때문이다.

지금 홍대 주변 미술 학원가는 전국각지에서 상경한 미대 입시생들로 '입시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2500~5000여 명(학원관계자 추산)으로 예상되는 미대 입시생들은 고시원·하숙집·친척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미술 실기시험을 기다리고 있다. 그 현장을 탐사르포 했다.

앞치마 두른 입시생들, 홍대 앞 미술학원가 점령

12월 1일, 서울 홍익대(이하 홍대)앞에는 이색풍경이 펼쳐졌다. 홍익대 입구에서 신촌 방면으로 형성된 미술 학원가에는 각 학원마다 대학 수시 합격자 명단을 적은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학원 밖 거리에는 미술 학원생들의 그림이 액자에 장식되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옆에 선명하게 보이는 '미대를 꿈꾸는 여러분,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라는 문구와 학원 간판도 눈에 띄었다.

그 사이로 앞치마를 두른 어린 학생들이 거리를 총총 활보했다. 학생들은 물감 묻은 손에 붓을 꼭 쥔채 미술 학원으로 바삐 움직였다. 앞치마를 두른 어린 학생들의 출연을 사람들은 관심어린 표정으로 지켜봤다. 신촌 근방 학교에 다니는 한 대학생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한다.

"홍대 앞에 앞치마를 두른 고교생들이 이렇게 많다니 놀랍다. 미대 실기 시험기간에만 볼 수 있는 진풍경 인 것 같다" (김종석·23)

앞치마를 두른 학생들은 홍대 앞 크고 작은 50여 개 미술학원에서 실기시험을 준비하는 입시생이다. 그 숫자는 5000여 명에 달하고 있다.

홍대 근처 미술 학원에서 행정 업무를 맡고 있는 지혜린(29)씨는 "서울권 미대를 목표로 하는 지방 학생들은 서울과 연계된 지역 학원의 권유로 서울로 올라온다, 경기 불황 탓인지 그 숫자가 예년에 비해선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지방에서 많은 수가 올라오고 있다. 11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이 때가 가장 많은 입시생이 몰리는 시기" 라고 말했다.

▲ 바쁜 걸음을 옮기는 미대 입시생, 식사 시간을 빼놓고는 쉴틈이 없다. ⓒ 곽진성


▲ 편의점, 음식점, 화방등의 홍대 앞 상가는 증가하는 미대 입시생들로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 ⓒ 곽진성


비싼 학원비·생활비에 울상... 그래도 서울로?

학원비는 한 달에 약 50만~70만 원, 6개월에 약 300만~400만원 수강료가 든다. 미대 입시생을 둔 학부모들에게 결코 만만한 가격이 아니다. 지방 거주 학생의 학부모들은 부담이 가중된다. 서울 지역 미술학원에서 배우게 하려면 하숙비에 생활비까지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 미술학원에서 입시 상담을 받은 학부모 김혜숙(46·가명)씨는 "뒤늦게 서울 지역 미술학원에서 자녀를 배우게 하고 싶은데 학원비 부담과 생활비 때문에 고민이 된다, 하지만 아이의 미래와 직결된 일이니 배우게 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자녀를 생각하는 부모 마음 덕분일까? 예년에 비해 학원을 찾는 입시생 수가 많이 줄었다는 말이 무색하게 1일, 홍대 거리는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미대 입시생들로 가득했다. 가깝게는 서울 근교 일산·분당. 멀게는 익산·청주·여수 그리고 바다 건너 제주도에서까지 올라왔다.

청주에서 온 김상훈(19)·이정대(19)·신혜성(20)씨는 "수능이 끝난 뒤 청주에서 올라와 고시원에 묵으며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다"며 "학원에는 우리같이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이 절반이 넘는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지방 입시생들은 수능이 끝난 11월 중순에 서울로 올라왔지만 이미 2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자리를 잡은 입시생도 있다. 구미에서 올라온 추가영(20·재수생)씨는 지난 3월에 서울로 올라와 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재수생은 일찍 올라와 실기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입시생 덕분에 웃는 홍대 대학가... 음식점·화방 '호황'

▲ 청주에서 온 김상훈(19), 이정대(19), 신혜성(20)씨 ⓒ 곽진성



▲ '꿈'을 찾아 전국 각지에서 서울로 상경한 미대 입시생들 인터뷰 ⓒ 곽진성



미대 입시철을 맞아 긴장된 입시생들과 달리 호황에 웃는 이들이 있다. 바로 주변 상가 사람들이다. 편의점·음식점·화방·고시촌 등은 입시생들 덕에 매출이 크게 올랐다.

홍대 학원가 근처 한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는 정윤진씨(23)는 "평소에 비해 매출이 50% 늘었다. 식사 시간 때면 주변 음식점들이 입시생들로 북적거린다"라고 말했다.

근처에서 김밥집을 운영하는 김명숙(47)씨도 "입시생들로 거의 곱절은 손님이 많아졌다. 학생들이 돈이 없기 때문에 값싼 음식 등에 몰리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주변 편의점도 몰려드는 입시생 덕에 웃음을 짓고 있었다.

홍대 인근에 자리 잡은 화방들 역시 미대 입시생들로 활기를 띄고 있다. 화방을 운영하는 배대상(38)씨는 "화방은 요맘때가 가장 호황"이라며 "물감, 색연필을 사러오는 입시생들로 인해 30% 정도 매출이 늘었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미대 입시생으로 단기 원룸이나 월세방 예약은 끝난 지 오래였다. 고시원·하숙집 값도 높은 가격으로 치솟고 있었다.

현선아(35)씨는 "11월부터 2월까지 단기 원룸, 월세 방들은 이미 한달 전에 계약이 다 끝났다"며 "이 근처 고시원이나 하숙도 지금 방이 없어 10만원, 20만원 웃돈을 줘도 못 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홍대 근처에서 방을 구하지 못한 학생들은 이 지역에서 한참 떨어진 대방이나 신도림에 방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새우잠에 샌드위치 끼니, "그래도 꿈 이룰래요!"

12월 1일 홍대 주변 미술 학원에 다니는 미대 입시생들은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종일 학원에서 미술 실기 연습를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쉬는 시간이라고는 점심·저녁 식사시간 밖에 없다. 하지만 목표로 하는 서울권 미술 대학 진입을 위해 전국에서 올라온 입시생들은 힘든 타지생활을 견디고 있었다.

오후 1시, 점심시간을 맞아 홍대 주변 학원가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나왔다. 점심시간이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편의점이나 샌드위치 가게에 들려 간단한 인스턴트 음식을 샀다. 점심시간도 아까운 입시생들이 빵 몇 조각으로 식사를 떼우고 있었던 것이다.

익산에서 올라온 이하나(19)·오다솜(19)씨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밥은 거의 먹지 못한다"며 "아침이랑 점심은 샌드위치로 떼우고 저녁에야 비로소 밥을 먹는다"고 했다.

비싼 학원비 때문인지 지방에서 올라온 입시생들의 씀씀이는 작았다. 대다수 입시생들은 인근 고시원·고시텔 혹은 친척집에 방을 구했다. 갑작스런 타지생활이 편하지 않다고 입시생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식사 역시 마찬가지, 입시생들은 밥 대신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여수에서 올라온 전태헌(19)씨는 "다행히 서울 누나 집에 머물고 있기에 큰 불편함은 없지만 타지생활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서울이랑 여수는 배우는 그림 방식이 많이 달라서 힘들지만 꼭 열심히 해서 원하는 서울권 미술 대학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 부천에서 홍대 앞 미술학원으로 통학 하는 미대 입시생 장인영, 신혜현(19)양 "빨리 실기시험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곽진성


미대 입시생들은 수능이 끝난 후에도 쉴틈 없이 곧바로 실기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장인영(19)·신혜현(19)씨도 그런 미대 입시생 중 한 명이다. 두 사람은 서울 근교의 부천에서 홍대 앞으로 아침 일찍부터 통학하고 있었다.

- 홍대 앞 미술 학원에서 입시준비를 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정보도 많고, 학교와 인접하기 때문에 올라왔다. 둘 다 부천에서 살고 있는데 홍대 쪽 미술학원으로 통학하며 배우고 있다. 조금 힘든 면도 있지만 다른 학생들은 더 먼지역에서 오고 있기 때문에 그런 내색은 잘 안하려고 한다."

- 다른 지역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많이 있나?
"한 반에 100명 정도인데 거의 절반 정도가 타지역에서 올라온 학생이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학생도 10명 가까이 된다. 그 친구들은 고시원등에서 생활하며 학원에 다니고 있다."

- 입시 준비의 어려움을 꼽자면?
"아무래도 수능이 끝났는데 놀지 못하는 점 같다. 그리고 학원에 8시까지 와야 하는 점도 어렵다. 빨리 실기시험이 끝나고 원하는 대학에 가서 편하게 놀았으면 좋겠다."

"수능 끝났지만,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입시 시작"

▲ 미대 입시생인 안혜진(19),정예지(19)씨는 "원하는 미술 대학을 목표로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 곽진성


한 샌드위치 가게에서 미대 입시생 안혜진(19), 정예지(19)양을 만날 수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다른 학생들처럼 놀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다는 그들, 하지만 아쉬움을 토로할 시간도 없이 얼른 샌드위치를 먹고 다시금 미술 입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안혜진(19)양에게 양해를 구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 미술 입시 준비는 언제부터 했나?
"고1때 흥미가 생겨 디자인 쪽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집(인천) 근처 학원을 다녔는데 작년 5월부터 홍대 쪽 미술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왕복하려면 3시간이나 걸렸지만 정보나 여러 면에서 필요했기에 홍대 쪽 학원으로 옮겨 오게 되었다. 처음엔 통학을 했지만 지금은 친구들과 근처에서 고시텔 생활을 하고 있다."

- 홍대 앞 고시원 생활은 언제부터 하게 되었나?
"수능 직후 바로 고시텔 생활을 하고 있다. 목표가 서울권 미대 K대와 H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님과 상의 끝에 결정했다. 처음에 부모님이 걱정이 많으셨지만 미대 쪽 진학을 위해서는 필요한 선택이기에 이해해주셨다."

- 고시원 생활이 힘들지는 않나?
"오전 9시부터 밤10시까지 쉴틈 없는 실기 연습이 끝나고 돌아오면 그제야 장보고 반찬거리 사러 다니고 그런다. 부모님 보고 싶고 외로운 점이 힘들다."

-학원에서는 어떤 식으로 실기시험을 준비하고 있나?
"H대 학교 반하고 일반 대학교 반하고 나뉘어서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실기 전형도 틀리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사시간만 빼놓고 계속 실기 연습을 한다. 일요일은 원래 쉬는 날이지만 실기시험이 얼마 안 남았기에 우리 학원을 비롯해서 몇몇 학원에서는 일요일에도 나오고 있다."

- 또래의 다른 입시생들을 보는 느낌은?
"홍대 주변 미술 학원에 이렇게 많은 입시생들이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나와 같이 미술 준비하는 아이들이라는 생각에 자극도 많이 되고 그렇다."

- 수능 끝난 후, 다른 이들처럼 못 노는 것이 아쉽진 않나?
"속상하다. 하지만 수능이 끝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입시 시작이다. 원하는 미술 대학을 목표로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1월 말까지는 이런 생활이 계속 되겠지만 잘 이겨낼 것이다."

인터뷰를 마친 뒤, 시간이 늦었다며 다시금 학원으로 쪼르르 뛰어가는 혜진씨. 홍대앞에 있던 다른 미대 입시생들도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학원 안으로 경쟁하듯 들어갔다. 미대 입시생들은 실기시험이 끝나는 2월을 향해 바쁘고, 고단한 입시생활을 진행하고 있었다.

미대 입시 중심에 서있는 홍대 앞은 지금 앞치마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입시생들의 '소리없는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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