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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 풀린 천안시 공무원 해외연수

천안시, 충남도 주관의 일부 해외연수... 일정 절반 이상 관광에 치중

등록|2007.12.03 15:29 수정|2007.12.03 16:17

▲ 공무원 해외연수가 본래의 목적보다 관광에 치중하기는 천안시 뿐만 아니라 충남도 주관의 해외연수도 마찬가지였다. 사진은 천안시청 모습. ⓒ 윤평호


전문성을 강화하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 실시하는 해외연수 일정의 절반 이상이 관광으로 짜여졌다면 관광일까, 아니면 연수일까?

천안시가 지난 2년 동안 공무원들의 해외연수, 공식적으로는 국외연수(국외출장)를 위해 해마다 평균 4억원 이상을 지출했지만 일부 연수의 경우는 일정의 대부분이 관광으로 채워져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귀국 후 작성해 제출하는 국외연수 보고서 역시 일반적인 자료를 짜깁기하거나 다른 연수 보고서의 일부 내용을 통째로 베끼는 등 도덕적인 해이까지 보이고 있다. 특히 무분별한 해외연수를 규제하고 연수의 타당성을 사전에 점검하는 심의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무원 국외연수, ‘관광’ 위한 연수로 전락

전문지식을 습득하고 재충전 기회로도 활용할 수 있는 해외연수를 적절히 잘 활용하면 공직사회의 경쟁력 향상에 좋은 기회가 된다. 또한, 일과 무관하지 않은 연수라 하더라도 둘러보는 곳이 평소 쉽게 갈 수 없는 해외라면 어느 정도의 관광일정은 정서상 용인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겉으로는 연수이지만 속내는 관광과 다름없다면 문제다. 연수의 일부로 이뤄지는 관광이 아니라 관광을 위한 국외연수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천안시가 시의회에 제출한 행정사무감사(행감) 자료에 따르면 천안시 공무원 28명은 천안시공무원직장협의회 주관으로 지난 5월 14일부터 22일까지 9일간 뉴질랜드와 호주로 선진 노사문화 연수를 다녀왔다.

▲ 천안시 공무원들이 선진노사문화연수를 위해 뉴질랜드와 호주를 찾았지만 노사문화와 관련된 방문지는 1곳에 불과했다. ⓒ 윤평호


9일의 일정 가운데 노사문화와 관계된 공식 일정은 5일 차에 실시된 2시간 정도의 PSA(Public Service Association, 노조협회)방문과 호주 올림픽파크 공식방문이 한 차례 있기는 했지만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보낸 7일간의 현지 일정 대부분은 와이토모 반딧불 동굴 관광, 타우포 호수관광, 블루마운틴 국립공원 관광 등 관광으로 채워졌다. 28명 공무원의 호주와 뉴질랜드 국외연수비용으로는 5152만원이 소요됐다.

지난 5월 28일부터 6월 5일까지는 퇴임을 한 달 앞둔 공무원 12명을 포함해 천안시 공무원 14명이 공로연수자 사회적응 목적으로 호주와 뉴질랜드를 8박 9일 방문했다. 3257만원의 예산으로 이루어진 국외연수에서 참석자들은 3, 4일차 일정 가운데 오전 두 시간씩 두 곳의 사회복지기관을 방문했다.

사회복지기관 방문을 제외한 다른 일정은 여느 관광일정과 차이가 없었다. 블루마운틴 국립공원 등 일부 관광지는 노사문화연수팀이 다녀간 관광코스와도 동일했다.

지난 10월12일부터 20일까지는 여성가족과 주관으로 천안시 공무원 15명이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3개국 연수를 다녀왔다. 총 3924만원의 경비가 투입된 연수의 목적은 여성의 사회참여와 사회복지제도 연수. ‘여성이 행복한 고을’ 전국 1위 선정 및 여성업무 유공자에 대한 사기진작도 포함됐다.

9일의 일정 가운데 연수 참가자들이 공식방문한 곳은 5일 차의 체코 여성권익단체, 8일 차의 오스트리아 보육원. 프라하 시내에 소재한 여성권익단체는 오전 9시부터 2시간 30분 가량 방문했고 비엔나 시내의 보육원은 2시간 방문했다. 출국과 귀국으로 소요된 이틀을 제외한 7일의 현지 일정 가운데 5일이 세계문화유산지정 견학 등 관광으로 진행됐다.

관광 일색 해외연수는 충남도 주관의 국외연수도 마찬가지

지난해 해외를 다녀온 천안시 공무원은 모두 297명이고 91회의 국외출장에 총 3억 8874만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올해는 지난 10월 말 기준 64회의 국외출장을 288명이 다녀왔다. 횟수와 인원은 전년에 비해 줄었지만 예산은 4억 8815만원으로 지난해보다 25.5%(9941만원) 증가했다.

공무원들의 모든 국외출장이 관광성 연수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천안시 공무원과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일본지방자치단체의 NPO 지원 정책과 민관협력 실태를 공동 조사하기 위해 실시한 국외연수나 충남도 주관으로 진행된 유럽지역 가축 방역관리 운영체계 연수는 목적이 뚜렷한 실무형 연수로 일정 자체가 관광위주로 짜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연수는 전체 일정 가운데 하루나 이틀 정도만 오전 한두 시간 기관방문으로 할애됐을 뿐 나머지 일정은 상당수 관광으로 진행됐다. 공무원 국외연수가 본래 목적에서 이탈해 관광으로 점철되기는 천안시 주관의 해외연수뿐만이 아니었다. 충남도나 다른 정부기관 주관의 공무원 국외연수에서도 비슷한 양상은 확인됐다.

천안시가 시의회에 제출한 행감자료에 따르면, 충남도는 천안시 공무원을 비롯해 18명 규모로 지난 10월 5일부터 10월 16일까지 유럽 4개국 국외연수를 실시했다. 연수 목적은 자치단체 재산관리 운영현황 파악.

공식방문기관은 프랑스 샹제르망시와 스위스 스테피스부르그시 단 2곳. 영국과 이탈리아는 문화탐방이라는 명분 아래 공식방문기관도 없이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영박물관, 버킹엄궁 등 유명 관광지만 들러봤다. 천안시는 소속 공무원 2명의 참여 비용으로 681만원을 부담했다.

지난 5월 28일부터 6월 9일까지는 충남도 주관으로 브라질, 페루, 멕시코를 방문하는 지방재정 제도 연수가 실시됐다. 연수 목적은 지방정부의 조세 및 주민참여 예산제도 운영현황 파악. 시에서는 497만원의 예산으로 권오복 기획실장이 참가했다.

10일간의 현지 일정 가운데 연수팀은 상파울루시, 상파울로 주청사, 이과수시 등 3곳을 공식방문했다. 기관방문지에서 머무른 시간은 1시간 정도. 3일차 일정은 이과수폭포 관광 하나밖에 없었고 다른 날의 일정도 마츄피츄, 시내 견학 등 관광이 주종을 이뤘다.


연수보다 관광에 치중한 공무원들의 해외연수가 버젓이 진행되는 데에는 미약한 사전·사후심사가 한몫하고 있다. 공무원들의 해외연수를 심의하는 제도적 장치로, 현재 천안시에는 ‘공무원 공무여행 심사위원회’(위원장 권녕학 부시장)를 두고 있다. 위원회는 지난해 45회, 올해는 10월 말까지 35회 개최됐다. 하지만 모든 회의는 서면심사로 진행, 대면심사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위원회도 위원장을 비롯한 9명 모두가 4급 이상의 시 고위공무원이다.

공무원들로만 구성된 위원회에서 매번 서면심사로 진행된 회의 결과 보완 및 반려된 안건은 1건도 없이 상정된 모든 안건이 원안 가결됐다. ‘천안시 산하 공무원 공무국외여행심사규정’에 따르면 해외연수를 다녀온 공무원은 귀국 후 30일 이내에 귀국보고서를 담당부서에 제출해야 한다.

일부 귀국보고서는 방문지의 나라와 관광지 소개가 대부분이고 내용이 동일한 것도 있다. 10월 12일부터 20일까지 실시된 유럽 3개국 연수의 귀국보고서와 6월 11일부터 16일까지 동남아시아 2개국 연수 뒤 작성된 귀국보고서는 결론에 해당하는 A4 두 쪽 분량의 글이 글자 크기만 다를 뿐 동일하다.

공무원 국외연수의 사전·사후 심사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연수일정의 변경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 26일부터 5월 4일까지 시 공무원 15명이 참여한 선진 복지행정 및 청소행정정책 연수일정에는 당초 독일의 폐기물처리 재활용업체 방문이 포함됐다. 그러나 현지에 도착해 확인한 결과 기관의 사정으로 방문이 취소됐다.

5월 8일부터 11일까지 천안시 수도사업소 공무원 3명은 하수슬러지 자원화 시설 관련 국외 선진시설 견학을 위해 일본연수를 떠났다. 하루에 1곳씩 3개 시설을 방문한다는 계획이었지만 1개 시설은 시설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견학 일정이 취소됐다.

공무원 국외연수 개선을 위해 장기수 천안시의회 의원은 “공무원 공무여행 심사위원회 위원의 절반 이상을 전문가나 시민사회단체 인사 등 민간인으로 위촉하고 프리젠테이션, 회의결과의 공개를 원칙으로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우수 천안YMCA 간사는 “퇴임을 앞두고 공로연수 중인 공무원들의 위로성 해외연수는 부적절하다”며 “사전·사후 심사강화를 위해 연수계획은 물론 귀국보고서를 시민들도 확인할 수 있도록 천안시 홈페이지에 게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서 천안시 국제협력팀장은 “연말에 민간인이 포함된 국제화추진협의회가 구성되면 공무원과 민간인의 연간 해외연수계획을 내년 초 일괄 자문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공무여행 심사위원회 민간위원 참여, 귀국보고서의 천안시 홈페이지 공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458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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