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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내 키질하는 솜씨 알지?"

늦게나마 서리태를 털어내며 수확의 기쁨을 느끼다

등록|2007.12.04 08:59 수정|2007.12.04 14:08

▲ 서리태를 털며 키질하는 아내. 키질도 요령이 있었다. ⓒ 전갑남


울긋불긋 단풍이 갈잎으로 바뀌었다. 그것도 잠깐, 한잎 두잎 떨어지다 어느새 바람에 우수수! 깔린 낙엽이 수북하다.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남았다. 계절은 이미 차가운 겨울이다.

일요일(2일) 아침. 잎은 죄다 떨어지고, 까치밥으로 남아있는 감나무에서 새소리가 요란하다. 새들도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는 걸까? 달콤한 홍시가 녀석들에게는 성찬인 듯싶다. 나무 끝에 매달린 홍시는 까치차지만은 아니다. 오늘은 아주 작은 새들이 모여 홍시를 쪼고 있다.

아침부터 분주히 떠드는 새소리에 아내 마음도 급한가? 설거지를 하는 손길이 바빠 보인다.

"오늘은 열일 제쳐두고 콩 털어버립시다."
"날이 추울 것 같은데!"
"춥지 않은 겨울이 어디 있어요. 더 추워지기 전에 마쳐야지요."
"당신, 힘들까 봐서 그렇지!"

내말 끝에 아내의 얼굴이 환해진다. 두툼한 옷을 꺼내 입고 일을 서두르는 아내가 고맙다.

콩 터는 일이 만만찮다

▲ 우리가 거둔 바짝 마른 콩대이다. 털어내는데 힘이 많이 들었다. ⓒ 전갑남


콩더미가 쌓여있는 밭으로 나왔다. 벌써 해가 중천에 떴다. 아침녘 따스한 햇살이 부드럽다. 덮개를 벗겨보니 콩깍지가 잘 말랐다. 두들겨 털면 잘 털릴 것 같다.

일을 시작하기 전, 아내가 말을 꺼낸다.

"콩 터는 일은 내가 선수이니까, 당신은 조수나 하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다. 어떤 일이고 일을 시작하면 야무지게 해내는 아내인지라 기대가 된다.

우리는 감자 캐고 남은 자리에 서리태를 심었다. 빈 자리가 있는 곳이면 콩씨를 넣었다. 풀매는 것 말고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거름을 주거나 농약을 치지 않아도 잘만 자랐다.

▲ 서리태가 잘 여물었다. ⓒ 전갑남


상강이 지나 잎이 죄다 떨어질 무렵, 우리는 콩을 베었다. 양지바른 곳에 멍석을 깔고 잘 마르도록 비 가림도 해주었다. 우리는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혼자서 서리태 터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털어야할 양도 많은데다 콩 터는 데는 일머리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농사일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이런 일은 예전 부모님 농사일을 많이 도와본 경험 있는 아내가 훨씬 낫다.

일하는 데도 요령이 있다

아내가 낭창낭창한 막대를 찾아왔다. 이제 콩 터는 일을 시작한다. 한 움큼을 멍석 위에 올려놓고 아내와 함께 두들겼다.

"탁탁! 토닥토닥!"

▲ 도리깨가 없어 막대로 두들겨 터니 힘이 더 들었다. ⓒ 전갑남


회초리를 맞은 바짝 마른 콩대에서 까만 콩이 튕겨 나온다. 그런데 생각보단 쉽지 않다. 한참을 두들기니 어깨가 아파온다.

"도리깨가 있으면 쉬울 텐데…."
"당신, 도리깨질 해봤어요?"
"아니. 예전 아버지가 하시는 것은 봤지!"
"도리깨질도 만만찮아요."

힘만 가지고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일에는 요령이 있고, 몸에 익숙해져야 쉬워지는 것이다. 도리깨가 있어도 일을 제대로 할까 싶다. 그래도 내년에는 도리깨를 구해 콩을 털어보고 싶다.

두들기고 또 두들기고. 두들긴 콩깍지가 부서지고 검정콩이 튀어나오는 게 신기하다. 두어 시간 콩대를 두들기다보니 점심이 훨씬 지났다.

"이제 검불만 걷어내면 돼!"

아내가 허리 펴며 점심을 먹자고 한다. 일하다 먹는 점심은 꿀맛이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다시 밭으로 나왔다.

검불과 콩을 분리하는 일이 만만찮다. 무식하게 콩대를 두들기는 일보다 더한 요령이 필요하다.

"콩 터는 날은 바람이 불면 좋은데…."
"그러게요. 바람이 잠잠하니 일하기 더디네."

오늘따라 바람이 불지 않는다.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수 없다. 아내가 구멍이 크게 뚫린 철망을 찾아왔다. 어레미와 키도 챙겨왔다.

▲ 콩 터는 작업 순서. 손으로 작업을 하자니 철망, 어레미, 키와 같은 작업도구가 필요하였다. ⓒ 전갑남


철망 위에 콩이 섞인 검불을 올려놓는다. 아내와 마주잡고 흔들자 아래로 콩과 함께 잔 검불이 쏟아진다. 부피가 훨씬 줄었다. 이제 코가 큰 어레미가 필요하다. 흔들흔들 어레미질을 하자 콩만 남고 잔 흙이 걸러진다.

예전에는 풍구를 사용하여 검불을 쉽게 날려 보낸 것이 생각난다. 콩 터는 데도 옛사람들의 지혜가 있었다.

즐겁게 일하고 느낀 보람

"당신, 내 키질하는 솜씨 알지?"

아내가 키를 달라한다. 키질하는 솜씨는 내가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능숙하다. 남아있는 검불이 까불리는 키질로 날려나간다. 몇 번을 되풀이하자 까만 콩만 키 안쪽에 모인다.

양이 많다보니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나는 어레미질을, 아내는 키질! 아내 얼굴에 가루가 날려 하얀 분칠을 한 것 같다.

힘들게 일하는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 콩 깎지가 씌었다는 말 알아?"
"상대를 무조건 좋게만 본다는 뜻 아냐? 왜요?"
"그냥! 당신도 나한테 콩깍지가 씌어서 시집온 것 같아서!"
"글쎄? 아닌 것 같은데…."

우린 서로를 쳐다보고 웃었다. 일도 즐겁게 하면 힘도 덜 드는 법! 졸지에 일이 쉬워 보인다.

아내가 땅에 흩어진 콩을 일일이 줍는다. 애써 가꾼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느껴진다. 수확한 양이 함지박으로 두 개다. 정말 '옹골지다'라는 말을 이런 경우에 두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 우리가 수확한 서리태이다. 아내는 일년 식량으로 넉넉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 전갑남


장에 나가면 많은 돈 들이지 않고 콩을 살 수 있다. 그런데도 손수 농사지어 거둔 콩을 보니 힘들어 가꾼 보람이 있다. 더욱 콩은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 가족이 일년 내내 먹고도 남을 양식으로 충분하다.

일을 마치자 해가 서산에 걸렸다. 아직도 작은 새들이 울어댄다. 녀석들, 우리를 부러워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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