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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으로써 자신에게 돌아가는 여행

[서평] 이병률의 <끌림>

등록|2007.12.05 16:30 수정|2007.12.05 16:30

▲ 이병률의 산문집 <끌림>표지 ⓒ 랜덤하우스 중앙


"내가 걸어온 길이 아름다워 보일 때까지 난 돌아오지 않을 거야."

책장을 넘겨 처음 마주한 글이다. 왠지 이 말이 나에겐 "걸어온 길이 아름답지 않아도 난 돌아올 수밖에 없어"라고 독해된다.

여행자의 고향인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은...

여행을 시작하는 발을 딛는 누구든지 어디론가, 돌아갈, 돌아가야 하는, 돌아가고 싶은, 돌아갈 수밖에 없는, 그 어떤 곳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행을 떠남이라 부른다. 그 떠남은 항상 출발점과 도착점이 있다. 그 출발점과 도착점이 일치하는 부메랑 같은 떠남을 여행이라 우리는 뇌까린다.

저자는 아마 책을 엮기 위해 사진과 글을 분류하고 정리했을 것이고, 그 분류와 정리의 공간은 돌아온 공간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아니면 필연적으로 돌아오는 그곳은 정주의 공간이고, 그곳이 여행의 뿌리가 된다. 그곳은 떠나려 몸부림쳐도 언제나 공기처럼 그냥 그렇게 있는, 바로 ‘일상’이고, 그 일상이 여행자의 고향이 된다.

#001 '열정'이라는 말
저자는 10여 년간 170차례 비행기 타고서 50개국 200여 도시를 떠나 다녔다. 그리곤 돌아와 이삿짐을 정리하며 묵혀두었던 사진과 글을 책으로 묶었다. 책엔 #에 일련번호가 붙어있다. #001, 바로 첫 이야기의 제목이 바로 <'열정'이라는 말>이다. 글에서 저자는 자신이 느낀 열정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열정이란 말에는 한 철 태양이 머물다 지나간 들판의 냄새가 있고, 이른 새벽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올리며 무언가를 끼적이는 청년의 눈빛이 스며 있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타고 떠날 수 있는 보너스 항공권 한 장에 들어 있는 울렁거림이 있다. 열정은 그런 것이다."

여행을 이끈 건 전적으로 ‘열정’ 덕분이라고 저자는 읊조리듯 고백한다. 그리고는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물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라며 하나의 금언으로써  열정을 정의한다.

너무 지나친 자기 긍정처럼 들려 읽는 순간 어색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가 찬양한 그 열정이 저자 자신에게만 배타적으로 소유된 에너지가 아니고, 닳음 없이 글을 읽는 모든 이를 뜨겁게 물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유익하게 받아들여졌다. 

나를 책으로 빨아들였던 사진들

이 책은 산문집이란 타이틀을 달았지만, 나에겐 사진집으로 여겨진다. 글에 대한 어떤 문학적 평가로서가 아니라, 사진의 컬러풀한 흡입력 때문이다. 사진의 다채롭고 깊은 표정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심지어 글이 사진의 각주처럼 읽혀지기도 한다.

처음엔 사람을 시선을 끌고, 다음으로 마음을 훔치며, 이에 글이 가세해, 독자를 젖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을 보아야 하는 것인지, 읽어야 하는 것인지, 느껴야하는 것이지, 그 감상법을 쉽게 고정할 순 없다.

나만의 감상법으로 책을 다시 음미한다. 타국의 사람, 자연, 풍경, 건물, 그리고 낯설기에 일상적으로 보이지 않은 그들의 일상들이 내게 스민다.

시장에 진열된 수산물과 기차 창으로 밖을 주시하는 아이의 맑아서 서러운 눈, 낡고 꾀죄죄한 건물과 하늘하늘 바람에 뒤척이는 빨래. 넘실대는 이국의 풍경 속 바다, 멕시코 이발사와 달큼한 비누 향, 라임아저씨와 새콤했던 물맛, 그리고 마신 후 입 안에 오래 남았던 향까지. 풍경에서 사람이 읽히고, 사람에게서 그 삶을 배경이 드러난다.

에필로그, 다시 열정, 살 것 같은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도망가야지, 도망가야지" 하며, 고등학교 시절 첫 단독 여행을 회상한다. 길 위에서 자신을 끌어당기는 길의 자유를 호흡하며 비로소 그는 "살 것 같았다"라고 말한다. 또 쉬지 않고 돌아다녔지만, 왜 자신을 그 여행지와 그 곳의 사람들의 자신을 끌어 당겼는지 "분명하지 않다"라면서도 넌지시 자신 안에 출렁대는 ‘열정’을 옅은 자랑으로 다시 이야기한다.

여행을 일탈의 톡 쏘는 별미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떠남은 돌아옴의 무거운 짐을 지운다. 하지만 그 무거움 또한 돌아올 수 있는 또 다른 끌림이 된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렇기에 떠났었던 사람은, 떠나는 사람은, 떠나있는 사람은, 떠날 사람은, 바로 머물러있는 그 어떤 곳을 떠남으로써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덧글)
책에는 페이지가 없다. 그래서 한 번 봤던 글이나 사진을 다시 보고플 땐 책장을 이리저리 넘기며 찾아야 한다. 그 번거로움 때문에 첨에 눈여겨보지 않았던 글과 사진이 이따금 섬광처럼 번쩍인다. 몇 번이고 곱씹게 하는 그 불편함이 사실은 배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본 기자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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