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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면허솜씨로 아이들 머리에 손대다

때아닌 머릿니 출현이 계기...삐뚤빼뚤 머리지만 아이들이 받아주니 고마워

등록|2007.12.06 09:05 수정|2007.12.06 09:07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매일 아침 아이들 머리 손질은 크게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없는 손재주에 나름 열심히 만져줘도 어쩜 그리 때깔이 안 나는지.

남들은 딸 하나만 몇 년 키우다 보면 없던 솜씨도 생긴다 하던데 난 둘이나 키우면서 아직도 머리 만지는 솜씨가 그야말로 한참 참아줘야 간신히 봐줄 정도다.

큰 애 때부터 지금까지 대충 해서 어린이집을 보내면 올 때는 어찌나 깔끔하게 하고 돌아오는지 엄마로서 민망하기조차 할 때가 많았다. 머리에 꽤 까탈을 부리는 둘째는 엄마가 곱게 머리 땋아주는 게 소원이라지만 괜히 손댔다가 바쁜 아침시간만 낭비하지 싶어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지 오래다.

▲ 평소 아이 머리를 묶어주는 내 솜씨 ⓒ 김소라

마음 같아서는 나 어릴 때 엄마가 그랬듯이 짧게 잘라주었으면 싶은데 나도 어릴 적 머리 좀 기르는 게 소원이었던지라 아이들 마음 맞춰주느라 그냥 두고는 있지만 아침마다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한 열흘 전 쯤인가? 누워있는 작은아이 머리에서 반짝거리는 뭔가를 발견하고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잡아 빼보니 이건 한 세대 전에나 극성을 부리던 머릿니가 아닌가? 놀란 마음 진정시키고 머리 속을 파헤쳐 보니 온통 반짝이는 하얀 것이 머릿니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 큰애는 내 손길을 타지 않은 지 한참이다. ⓒ 김소라

 요즘 초등학교에서 머릿니가 유행한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긴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그러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터라 당혹스럽고 부끄럽고 아이들에겐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동안 간혹 머리가 가렵다고 할 때가 있었건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긴 무심한 엄마 탓에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생각하면 엄마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죄책감이 드는 건 당연했다.

행여나 누가 알까 두려워 서둘러 보이는 대로 머릿니를 잡고 친정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니 재래시장에 가셔서 참빗을 공수해 오셨다. 참빗으로 빗으니 눈에 잘 보이지 않던 머릿니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이걸 통탄해야 할지, 통쾌해 해야 할지, 헷갈리는 그야말로 복잡한 심경이었다.

긴 머리의 두 딸 아이 머리를 참빗으로 빗는 일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엉킨 머리를 먼저 빗어서 손질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참빗이 잘 나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짜증이 나는 것이다. 내친 김에 머리가 길어 머릿니가 생긴 것이라며 살살 달래서 머리를 좀 잘라볼까 했더니 작은 녀석은 그나마 알았다고 하는데 한껏 멋이 든 큰 녀석은 절대로 안 깎겠단다.

그래서 협상을 한 것이 앞머리를 자르겠다는 것이다. 하긴 앞머리야 길면 눈을 덮어 보는 데도 지장이 있고 머리핀이든 머리띠든 해야 하니까 녀석들도 불편해 했는데 게으른 엄마가 미용실 가기를 꺼려하는 바람에 여직 못 자르고 길어진 형편이다.

앞머리를 자른다고 약속한 것이 그렇게 일주일을 넘겼는데 서로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휴일엔 다른 일정이 있다보니 흐지부지 되었다.

헌데 어제 저녁 마침 머리를 빗는데 작은 녀석이 대뜸 나더러 앞머리를 좀 잘라달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특별히 미용실을 갈 일이 없는데다 아이들 앞머리만 자르는데 몇 천원을 낭비하기가 좀 아깝기도 하여 없는 솜씨에 가위를 들고 나섰다.

어릴 때 우리 엄마는 늘 집에서 머리를 잘라주셨는데 너무 짧게 잘라 항상 맘에 안 들기는 했지만 사정 모르는 남들은 어느 미용실에서 깎았냐며 예쁘다고 하곤 했었다. 하긴 엄마야 젊은 시절부터 시골 학교 선생님으로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재주꾼이었다. 동네 사람들 머리 잘라주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경험은 물론 손재주도 없다. 무작정 가위를 들고 보니 떨리는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아이들을 안심시키려 일부러 큰소리를 쳤다. 최대한 실수를 하지 않으려 길게 잡아 가위질을 했으나 막상 가위가 비뚤어 나간 것인지 내 손이 비뚤어 나간 것인지 아이들 머리가 그야말로 쥐 파먹은 모습이다.

잘린 모습을 보니 어찌나 우스운지 수습할 겨를도 없이 한참을 웃었다. 혹시 까탈을 부리고 투정을 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이 녀석들 엄마가 머리를 잘라준 것이 흐뭇했는지 저희들도 웃는다. 그러니 내 마음이 놓인다.

▲ 앞머리를 자르고 기념사진 찍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이 표정이 묘하다. ⓒ 김소라

두 녀석 중 하나라도 제대로 자르고 싶었지만 솜씨가 솜씨인지라 둘다 삐뚤빼둘 앞머리를 하고 기념사진을 한장 찍었다. (헌데 아이들 인권보호를 위해 이 사진을 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망설여 진다)

생각해 보면 이 솜씨로 애들 머리를 자른다고 덤빈 용기가 무모하지만 그저 웃어넘겨주는 아이들에게 고맙기만 해 다음번엔 자신없으면 비록 몇 천원이 아깝더라도 꼭 미용실로 데려가겠다고 약속을 한다.

내일 학교에 가서 놀림 좀 받을 애들을 생각하면 안쓰럽고 미안하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앞으로 없는 솜씨지만 갈고 닦아 아이들 머리에 공을 좀 들여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때도 모르고 갑자기 등장한 머릿니로 인해 한동안 식구들은 공포에 떨었지만 새삼 옛날 생각도 나고 아이들 머리에 더 신경쓰는 계기가 되었으니 이를 조금은 고마워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어찌됐든 머릿니 박멸을 위해 요즘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머리를 감긴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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