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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롱잔치, 아이들도 즐거울까요?

유아교육기관 재롱잔치의 허상과 이면

등록|2007.12.06 16:46 수정|2007.12.06 16:46

▲ 아이들의 재롱잔치 ⓒ 신기철


요즘 전국 각 지역의 문화회관이나 일반 공연장에서는 어린아이들의 재롱잔치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전국에 있는 유치원, 어린이집, 미술학원 등이 서로 경쟁하듯이 더 화려하게 더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각축전을 벌이고 있지요.

보통 11월부터 시작되어 2월까지 약 4개월동안 웬만한 공연장은 일정잡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여기서 저의 직업을 소개하자면 유아 레크리에이션 강사입니다. 이렇게 겨울 시즌동안에는 각 공연장을 다니면서 재롱잔치의 사회를 보는 게 저의 일입니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하게도 재롱잔치로 돈을 벌면서 내 아이는 절대로 재롱잔치를 하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는 보내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거지요. 제가 15년정도 행사 진행을 하면서 경험한 일들은 결코 재롱잔치가 아이들을 위한 행사라고 볼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재롱잔치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1년동안 원에서 배운 율동이나 학습을 발표하는 게 아니라 댄스 음악에 맞춘 각종 댄스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지요. 재롱잔치라는 말 그대로 아이들의 학습 발표회가 아니라 어른들을 위해 재롱을 부리는 재롱잔치입니다.

먼저 3년전 서울에 있는 어린이집에서 보았던 재롱잔치를 기준으로 시작 전부터 끝나고 난 후까지를 대략적으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보통 재롱 잔치는 저녁 6시 전후로 시작이 됩니다. 그럼 오후 3시경에 리허설을 위해 공연장에 아이들이 들어옵니다. 30개 가까이 되는 프로그램 순서를 하나 하나 리허설을 합니다. 시간이 빠듯하니 교사들의 목소리가 커집니다. 심지어 구타까지 합니다. 네살반 아이 하나가 말귀를 못 알아듣고 빨리 안움직인다고 머리를 주먹으로 세게 내리치더군요.

무대는 방송 쇼프로그램을 뺨치듯 레이저, CO2, 불기둥, 에어샷, 드라이아이스 등의 특수효과가 장식하고 아이들은 성인 쇼프로그램의 댄서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의상으로 분장하고 섹시댄스를 춥니다.

난방시설 없는 분장실에서 옷 갈아입는 아이들

그리고, 무대 뒤에 분장실에서는 아이들이 추운 겨울에 난방 시설도 없는 곳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옷을 갈아입기 위해 윗옷을 벗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한두 명의 교사가 많은 아이들을 빠른 시간에 옷을 갈아입히려 하니 무대 뒤의 분장실은 전쟁터나 다름없지요.

30여 개의 발표회 시간은 대략 세시간이 넘습니다. 6시에 시작하면 9시가 넘어서야 행사가 끝나지요. 아이들은 녹초가 됩니다. 리허설 시간부터 공연시간까지 6시간을 넘게 옷갈아입고 춤을 추느라 정신이 없지요. 먹은 거라고는 김밥과 차가운 우유나 생수가 전부입니다.

끝나고 일부 부모님들은 교사에게 수고했다고 꽃다발을 안깁니다. 그중에 아까 머리를 심하게 맞은 아이의 부모가 아이와 함께 교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더군요. 리허설 때 그렇게 인상 찌푸리던 교사들은 행사가 끝나면 인자한 교사로 바뀌어 있습니다. 보통 이것이 재롱잔치의 실상입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경험상의 제 주관적인 통계를 내보자면 재롱잔치를 하는 교육기관의 비율은 유치원, 어린이집, 미술학원의 순서로 1.5 : 4 : 4.5 입니다. 유아교육을 전공해야만 교사가 될 수 있는 유치원은 상대적으로 발표회를 많이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의식이 있거나 교육관이 투철한 어린이집이나 미술학원도 재롱잔치를 하지 않거나 재롱잔치가 아닌 말그대로 학습 발표회로 대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유아교육기관들이 오늘도 아이들의 학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춤을 추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재롱잔치의 성공이 원아모집과 직결된다는 부담감을 안고 말입니다.

어쩌면 일부 유아교육기관의 삐뚤어진 재롱잔치는 우리 학부모들이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의 빤짝이 의상에 환호하고, 허리를 유연하게 흔들어대는 섹시 댄스에 박수를 치는 게 아니라, 1년동안 배운 모든 학습 내용을 무대위에 펼쳐놓는, 그래서 자극적이지 않고 평범한 무대에 오히려 더 많은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면 우리나라의 유아 교육은 더 발전할 수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재롱잔치를 하지 않는 유아교육기관도 많아

실제로 그런 교육기관이 많이 있습니다. 자극적이고 화려한 재롱잔치에 가려있을 뿐이지 진정 아이들을 사랑하고 재롱잔치라는 말 자체를 싫어하는 교육자들은 정말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한 한 어린이집의 발표회는 제 기억에 강하게 남은 극단적인 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재롱잔치를 하는 모든 유아교육기관이 이와 같다는 오해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2년 전 용인의 한 어린이집의 발표회는 재롱잔치가 아니라 학습 발표회였습니다. 리허설은 없었구요, 교사들은 부모가 있으나 없으나 한결같이 아이들을 인자하게 대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재롱잔치를 학습발표회로 양성화해서 댄스 중심의 율동을 많이 줄이고 학습 발표를 주류로 한다면 아이들에게는 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됩니다.

댄스 중심의 율동을 없애자고 하는 게 아니라 줄여야 한다고 하는 이유는 분명 무대에 올라 신나게 춤을 추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도 많이 있을테니 그런 아이들의 장기를 살려주는 것도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오늘도 아이들의 또 다른 엄마라는 생각으로 많은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는 유아교육기관의 모든 선생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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