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을 바라보는 눈으로
우리 서로를 바라보자
금강산 1만 2천 봉을
나도 모르게 너도 모르게
바라보는 눈으로
우리 서로를 바라보자
- 고은 「금강산」 중
처음 마주한 북녘의 공기는 참 스산하다. 안개는 자욱하고, 땅은 척박하다. 하지만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듯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모습은 아름답다.
금강산으로 향하는 육로에 휴전선이 보인다. 남과 북의 경계는 기둥색으로 구분하는데, 하늘색이 은색으로 바뀌면 거기서부터 북녘 땅이다. 휴전선은 바로 그 경계선에 있다. 더 없이 광활하고 보기만 해도 섬뜩할 것만 같던 휴전선의 모습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인다.
비무장지대(DMZ)를 지나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도로를 만들기 위해 남과 북이 번갈아 지뢰제거작업을 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휴전선의 경계를 지날 때 나도 모르게 가슴 한 편이 울컥해 온 것은 단순히 긴장해서였을까, 아니면 밟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곳을 밟게 되는 것에 대한 감격의 표현이었을까(지금 생각해보면 후자였던 것 같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반갑습니다'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흥겨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할 즈음, 미소라는 단어는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듯 엄숙한 얼굴을 한 북측 군인들이 짐 검사를 시작한다.
남쪽의 각종 인쇄물이나 핸드폰 등의 통신물품은 북쪽으로 갖고 갈 수 없다. 특히 사진촬영에 대한 경계는 유독 심했다. 몰래 사진촬영을 하다가 북측 군인들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즉각 버스를 세워 카메라를 뺏어 가거나, 심할 경우 남쪽으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금강산에 오르기 전 아직 이곳이 한반도 북쪽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하는 길에 종종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북쪽 주민들을 보지만, 거리가 상당히 멀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과 같은, 특별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금강산에 오르는 길은 북쪽 사람들을 바로 앞에서 만날 수 있어 상당히 특별하다. 게다가 빼어나기로 소문난 금강산의 절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발걸음에 한껏 힘을 실어준다. 평소 산과 별로 친하지 않아 잘 모르지만, 금강산도 산행 초반에는 남쪽에 있는 여느 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등산로 중간에 북쪽 안내원들이 음료 등의 먹을거리나 기념품을 팔고 있다는 정도다.
안내원들은 생각보다 적극적이다. 등산객 대부분이 남쪽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 시원한 음료 한 잔 드시고 가세요”라며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런 안내원들의 친근함 반, 호기심 반으로 한번 사 먹어본다. ‘레몬 탄산단물’이라는 음료수, 겉모습은 사이다와 거의 흡사하다. 맛은 사이다라기보다는 탄산이 다 새어나간 ‘레몬 단물’이다.
금강산에 오르는 산행길은 그다지 험하지 않다. 어르신 분들도 거뜬히 올라갈 만큼 산세가 완만하고, 주변 풍경을 느끼기에 등산로도 한껏 여유롭다. ‘무용교’가 눈에 들어온다. 금강산에 가기 열흘 전에 ‘무용교’를 지탱하는 쇠줄이 끊어져 관광객 24명이 추락하는 사고가 뉴스에 보도됐다.
다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완벽하게 복구돼 있다. 금강산을 오르는 길은 정말 눈이 즐겁다. 침도 못 뱉게 할 만큼 자연보호에 많은 신경을 쓰는 북측의 노력이 묻어난다. 산골짜기 다람쥐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귀엽게 돌아다닌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카메라를 응시하는 센스도 보인다. ‘도토리’를 갖고 뛰어다니는 다람쥐는 남쪽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북쪽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겠지.
푸른 나무들은 저마다의 아름다운 색깔을 뽐내며 등산객들을 반긴다. 특히 압권은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이다. 바닥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에메랄드빛을 간직하고 있어 산을 오르는 내내 탄성을 자아낸다. 기암절벽 사이로 세찬 물줄기를 쏟아내는 ‘구룡폭포’를 지나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서린 ‘상팔담’으로 향한다.
지상에 내려온 팔선녀 중 옷을 감춘 한 선녀를 아내로 맞아 아이까지 뒀으나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 안타까움을 상팔담의 절경이 위로하는 듯 한다. ‘구룡폭포’까지의 등산로는 경사가 완만했지만, ‘상팔담’으로 올라오는 길은 경사가 급하다. 오르기 힘들다.
금강산의 또 다른 매력은 올라오는 길의 풍경과 내려오는 길의 풍경이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산은 올라갈 때는 타인이지만, 내려올 때는 친구가 된다는 말처럼 타인과 친구사이의 미묘한 느낌 차이라고나 할까.
산에서 내려와 남쪽에도 유명한 ‘옥류관 냉면’을 먹는다. 평소 냉면을 즐기지 않는 터라 그리 달갑지 않지만, 특산물은 한번 씩 먹어주는 게 예의라는 생각이 든다. 냉면은 생각보다 맛있다.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아 싱거울 거라 생각했지만, 식초 없이도 먹기 좋을 만큼 간이 잘돼 있다.
숙소 옆 문화회관에서 열린 금강산 교예단 공연은 금강산 기행의 또 다른 별미다. 거의 마술과 같았던 공연들은 긍정적 의미의 농락(?)이라는 단어로 묘사할 수 있을 정도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금강산 교예단의 공연은 역시 차원이 다르다. 또한, 관객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공연들은 ‘우리는 하나다’라는 의미를 가슴 속 깊이 새기는 기회가 됐다.
관동팔경 중 하나인 ‘삼일포’는 수많은 봉우리들이 호수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웅장하면서도 아늑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다시 북측의 출입사무소로 돌아오니 '다시 만납시다'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한번 와봤던 곳이라 그런지 처음과 다르게 긴장감도 덜하고 북측 군인들에 대한 경계심도 많이 사라진다. 다시 한 번 휴전선을 지나게 됐을 때 별다른 느낌은 없다. 이제 휴전선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 서로를 바라보자
금강산 1만 2천 봉을
나도 모르게 너도 모르게
바라보는 눈으로
우리 서로를 바라보자
- 고은 「금강산」 중
처음 마주한 북녘의 공기는 참 스산하다. 안개는 자욱하고, 땅은 척박하다. 하지만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듯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모습은 아름답다.
비무장지대(DMZ)를 지나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도로를 만들기 위해 남과 북이 번갈아 지뢰제거작업을 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휴전선의 경계를 지날 때 나도 모르게 가슴 한 편이 울컥해 온 것은 단순히 긴장해서였을까, 아니면 밟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곳을 밟게 되는 것에 대한 감격의 표현이었을까(지금 생각해보면 후자였던 것 같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반갑습니다'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흥겨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할 즈음, 미소라는 단어는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듯 엄숙한 얼굴을 한 북측 군인들이 짐 검사를 시작한다.
▲ ▲ 금강산의 절경인 상팔담의 위용 ⓒ 장형수 기자
금강산에 오르기 전 아직 이곳이 한반도 북쪽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하는 길에 종종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북쪽 주민들을 보지만, 거리가 상당히 멀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과 같은, 특별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금강산에 오르는 길은 북쪽 사람들을 바로 앞에서 만날 수 있어 상당히 특별하다. 게다가 빼어나기로 소문난 금강산의 절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발걸음에 한껏 힘을 실어준다. 평소 산과 별로 친하지 않아 잘 모르지만, 금강산도 산행 초반에는 남쪽에 있는 여느 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등산로 중간에 북쪽 안내원들이 음료 등의 먹을거리나 기념품을 팔고 있다는 정도다.
안내원들은 생각보다 적극적이다. 등산객 대부분이 남쪽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 시원한 음료 한 잔 드시고 가세요”라며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런 안내원들의 친근함 반, 호기심 반으로 한번 사 먹어본다. ‘레몬 탄산단물’이라는 음료수, 겉모습은 사이다와 거의 흡사하다. 맛은 사이다라기보다는 탄산이 다 새어나간 ‘레몬 단물’이다.
금강산에 오르는 산행길은 그다지 험하지 않다. 어르신 분들도 거뜬히 올라갈 만큼 산세가 완만하고, 주변 풍경을 느끼기에 등산로도 한껏 여유롭다. ‘무용교’가 눈에 들어온다. 금강산에 가기 열흘 전에 ‘무용교’를 지탱하는 쇠줄이 끊어져 관광객 24명이 추락하는 사고가 뉴스에 보도됐다.
다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완벽하게 복구돼 있다. 금강산을 오르는 길은 정말 눈이 즐겁다. 침도 못 뱉게 할 만큼 자연보호에 많은 신경을 쓰는 북측의 노력이 묻어난다. 산골짜기 다람쥐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귀엽게 돌아다닌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카메라를 응시하는 센스도 보인다. ‘도토리’를 갖고 뛰어다니는 다람쥐는 남쪽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북쪽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겠지.
푸른 나무들은 저마다의 아름다운 색깔을 뽐내며 등산객들을 반긴다. 특히 압권은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이다. 바닥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에메랄드빛을 간직하고 있어 산을 오르는 내내 탄성을 자아낸다. 기암절벽 사이로 세찬 물줄기를 쏟아내는 ‘구룡폭포’를 지나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서린 ‘상팔담’으로 향한다.
지상에 내려온 팔선녀 중 옷을 감춘 한 선녀를 아내로 맞아 아이까지 뒀으나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 안타까움을 상팔담의 절경이 위로하는 듯 한다. ‘구룡폭포’까지의 등산로는 경사가 완만했지만, ‘상팔담’으로 올라오는 길은 경사가 급하다. 오르기 힘들다.
금강산의 또 다른 매력은 올라오는 길의 풍경과 내려오는 길의 풍경이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산은 올라갈 때는 타인이지만, 내려올 때는 친구가 된다는 말처럼 타인과 친구사이의 미묘한 느낌 차이라고나 할까.
▲ 이번 금강산 기행은 한양대학교 총학생회가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제주도 자전거 기행에 이어 세 번째로 마련한 행사였다. 지난 달 25일부터 2박 3일동안의 짧고도 긴 여행이었다. 사진은 삼일포에서 150여 명의 한양대생들이 함께 한 모습. ⓒ 장형수
숙소 옆 문화회관에서 열린 금강산 교예단 공연은 금강산 기행의 또 다른 별미다. 거의 마술과 같았던 공연들은 긍정적 의미의 농락(?)이라는 단어로 묘사할 수 있을 정도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금강산 교예단의 공연은 역시 차원이 다르다. 또한, 관객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공연들은 ‘우리는 하나다’라는 의미를 가슴 속 깊이 새기는 기회가 됐다.
관동팔경 중 하나인 ‘삼일포’는 수많은 봉우리들이 호수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웅장하면서도 아늑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다시 북측의 출입사무소로 돌아오니 '다시 만납시다'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한번 와봤던 곳이라 그런지 처음과 다르게 긴장감도 덜하고 북측 군인들에 대한 경계심도 많이 사라진다. 다시 한 번 휴전선을 지나게 됐을 때 별다른 느낌은 없다. 이제 휴전선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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