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학생운동이 죽었다고? 천만에!

NL,PD 논쟁에서 인권,평화 운동 등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록|2007.12.07 15:53 수정|2007.12.13 09:22

"빼빼로보다 중요한 그 무엇을 위하여" 지난 11월 11일 <범국민행동의날> 집회에 참석했던 대학생이 전경들에게 연행되고 있다. ⓒ 전소라


“80년대 구시대적 유물.”
“저러고 있는 거 부모님은 아시나?”
“진보라는 것을 멋으로 아는 애들.”


요즘 대학생들에게 학생운동에 관해 묻자 쏟아진 대답들이다. 이같은 대답에 움찔하게 되는 것은 비단 그들의 논조가 너무 강해서가 아니다. 90년대 중후반 제기되던 학생운동의 위기가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학생운동에 대한 ‘반감’으로 표출되고 있다. 4·19 혁명과 5·18 광주항쟁 그리고 6·10 민주항쟁의 주역이었던 대학생 집단이 이제 학생운동을 과거의 유물로 치부하고 있는 현실이다.

동시에 새로운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집회나 시위는 많이 줄었지만 소위 신사회운동이라고 일컬어지는 분야에 대한 대학생들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인권, 평화, 여성, 생태, 빈민, 교육, 공동체, 소수자, 반전반핵 운동 등 인류 보편적 가치들에 대한 대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시민단체와의 교류도 활발하다.

NL? PD? 그게 뭐야?

NL? PD? 일반 학생들에겐 생소한 단어들이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오고간다. 학생들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내두른다. “NL? PD? 그게 뭐야?”

NL과 PD는 80년대 사회운동의 이론들이 정립되면서 구분된 한국 사회 운동권의 갈래이다. NL은 Nation Liberation의 약자로 '민족해방'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고 PD는 People‘s Democracy의 약자로 '민중민주'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말 그대로 NL은 민족문제와 반미를 주장하고, 동시에 친북적인 성향이 있다. 반면 PD는 노동해방을 우선시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반자본주의적 성향을 띤다.

NL? PD?무의미 하다는 주장이 오고가지만 대학생들에겐 아직도 예민한 주제로 남아있다. ⓒ 윤태호


혹자는 이제 더 이상 이런 구분이 무의미 하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학생운동권에서는 미세한 차이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것이 때로는 총학생회 성향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 각 단과대끼리 파를 갈라 구분 짓기도 한다.

학생운동권에서도 이 두 계열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NL계열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과 PD계열의 전국학생행진(행진)이 그것이다.

한국사회에서는 80년대 후반 민족문제가 대중들에게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NL계열이 주도권을 잡게 된다. 하지만 현재는 한총련을 포함한 NL계열도 대중들에게 외면당하게 되면서 정파 학생운동권이 전반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 대해 2004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던 유지훈(국어국문 00학번) 씨는 “NL, PD를 따지기 보단 다각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NL계열 운동권으로 지금은 '대학언론연대'에서 언론운동을 하고 있는 그는 “주류적 흐름 속에서 비판적 지성에 관한 관심이 제기되고 있다. 등록금과 취업문제는 쌓여만 간다. 이런 대학생들의 분노가 폭발하게 될 때, 다시금 학생운동이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수 = 리더(?)지난 4월 개최되었던 '자유주의 대학생 네트워크'의 리더십학교의 모습. 새시대 리더를 꿈꾸는 학생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 자유주의 대학생 네트워크


우파도 학생운동 한다!

한편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 중 하나는 자유주의 학생운동의 출현이다. 지난 10월 '뉴라이트 대학생연합' 출범 이후로 자유주의 학생운동 진영의 파장이 거세다. 이들은 유신정권 시대를 옹호하는 수구진영과 기존의 운동권을 모두 부정하며 세계화와 자유민주주의의 확대를 주창한다.

'자유주의 대학생 네트워크' 김민수(전북대 졸) 씨는 “자유민주주의와 세계화에 관한 주장은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진보적인 것”이라며 “과거의 학생운동의 역할은 부정하지 않지만 변화에 순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자유주의 대학생 네트워크'에서는 작년부터 자유주의리더십학교를 주최해오고 있고, 많은 대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런 현상들에 대해 김씨는 “자유주의 사회에서 개개인의 요구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창구를 찾아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해구 성공회대 정치학 교수는 “자유주의 학생운동 출연은 두가지 이유로 볼 수 있다”며 “먼저 97년 IMF 이후 신자유주의의 강화로 대학생들이 많이 우경화된 부분이 있고, 또 하나는 다양한 사상들이 공존하게 되면서 나타난 학생운동 진영의 다양화다”라고 분석했다.

손으로 말하고, 눈으로 듣고<대학생 사람연대>에서는 2005년 가을부터 장애아동과 인연맺기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는 손으로 말하고, 활동가는 눈으로 듣는다. ⓒ 대학생 사람연대


“실천 속의 분노가 진정한 운동”

기존 정파운동의 투쟁일변도 방식에서 벗어난 학생운동도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기존의 학생운동 위기에서 “왜?”라는 물음을 던졌던 이들이 이제는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관한 실천적 대처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총학생회 단위로 연합했던 과거와는 달리 ‘학생대중운동’을 강조하는 '대학생 사람연대'(이하 대사람)가 바로 그것. “NL도 PD도 거부한다!” 며 당당하게 주장하는 그들은 기존의 투쟁뿐인 운동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데 동감하는 대학생들이 모여 결성한 단체다.

올해 4월에 정식 출범한 이들은 차별과 배제에 저항한다는 모토로 사회안전망 구축에 힘을 쏟으며 비정규직과 같은 쟁점적 사안들에 대해서도 외면하지 않는다.

▲ "일상에서 실천하라" '대학생 사람연대' 김희선 씨 ⓒ 이채훈

왜 기존 정파운동에 합류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서울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희선(국어국문 휴학) 씨는 “시위를 하고 돌아오면 변화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며 “내 삶에서부터의 실천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답했다.

'대사람'에선 2005년 여름, 장애인 아동을 도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동대문 지역교회에서 실시하고 있는 공부방 모델을 본 따 그 해 가을부터 본격적인 장애아동 운동을 실시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애아동 공부방 '인연맺기학교'는 끊이지 않고 현재 3년째에 접어든다.

게다가 '인연맺기학교' 교사들은 기나긴 투쟁 끝에 올해 4월 ‘장애인 교육 지원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김씨는 “실천 속에 분노가 진정한 운동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학생운동의 실천적 발돋움을 역설했다.

시민사회단체와 손잡고 나가기

2000년대 이후 시민사회단체(NGO)는 급격히 성장했다. 그 성장의 기반에는 70~80년대 학생운동이 있었다. 90년대 중반 이후 386 운동권 학생들이 시민사회로 진출하게 되면서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지형을 형성한 것이다.

여성, 생태, 인권, 평화, 공동체, 장애인과 같은 쟁점들도 그간 민주화 운동에서 논의의 중심에 서지 못했지만 시민사회운동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게 되었다. 대학생 중에서도 그런 신사회운동의 가치에 동의하는 학생들이 개인 또는 소모임 단위로 시민사회운동에 동참하는 추세들이 나타난다. 그 중 '대학생 나눔문화'(이하 대나눔)는 박노해 시인이 참여하고 있는 NGO단체인 '나눔문화'와 연계되는 단체로 생태와 평화를 외치는 대학생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평화 캠페인을 주최하고 우리쌀 살리기 운동, 새만금 살리기 운동 등의 활동을 하며 생태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특히 그 중에서도 국제적 평화활동에 열심이다. 파병반대는 물론이고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최근에는 미얀마 민주화 문제까지 두루 활동하고 있다.

국방부에 고함<대학생 나눔문화>는 지난해 7월부터 매주 수요일 광화문에서 레바논, 이라크, 아프간, 버마 등 지구마을 이웃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평화캠페인을 이어오고 있다. ⓒ 대학생 나눔문화


'대나눔' 팀장 김예슬(고려대 경영학과 휴학) 씨는 "선배세대가 이룬 민주화와 경제성장의 풍요 및 자유 속에서 우리 세대는 세계화 시대 새로운 사회와 운동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운동권에 관한 의견을 묻자 그는 “대학사회 내 저항의 분위기는 필요하다. 그들의 투쟁도 인정하지만 우리(대나눔)와 같은 운동도 필요하다”며 서로가 존중하며 나가야 함을 강조했다.

이처럼 시민사회와 연계된 형태의 학생운동들이 새로운 운동의 형태로 등장하게 되면서 제기되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학생운동이 개별화 또는 소모임화 되면서 자체조직력과 응집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과 시민단체에 귀속될 수 있는 우려가 그것.   

이런 비판에 대해 안진걸 대선시민연대 조직팀장은 “시민단체와 함께 같은 주제를 가지고 운동을 하는 것은 발전적인 모습이지만 시민사회와 학생사회 서로의 공간은 존중하면서 교류와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진보와 보수의 치열한 각축전 될 것”

▲ 성공회대 조희연(사회학) 교수는 앞으로의 학생운동을 보수와 진보의 각축전으로 전망했다. ⓒ 이채훈

1980년대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으로 NL, PD 분석과 더불어 운동권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던 조희연(성공회대 사회학) 교수는 정파학생운동이 흔들리게 된 이유를 “보이는 적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또 “대중의 정치참여가 수월해지면서 과거 전투적, 역동적인 학생운동의 자세가 완화되어도 될 지점들이 늘어난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분석했다. 그에게 앞으로의 학생운동을 어떻게 전망하는지 묻자, “진보와 보수의 치열한 각축전이 될 것"이라며  “이 자유공간 속에서 보수를 뛰어넘는 진보의 호소력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88만원 시대, 운동이 거북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한 때는 시대의 양심이며 진리의 상아탑으로 불렸던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학생들은 독재타도 대신 영어단어를 외우고, 인문학 서적대신 토익책과 씨름하며 캠퍼스를 거닐고 있다.

88만원 세대, 운동이라는 것 자체가 거북스럽고 부담스러울지도 모르는 그들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무언가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세상, 그리고 바꾸려 하지 않는 그들, 이 모순된 관계 속에서 학생운동은 어디쯤 와있는 것일까?

2000년대에 들어선 지금, 대한민국 학생운동사는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 속에서 학생운동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고, 넓은 스펙트럼 위에서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다양함 속에서도 토대와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 그것은 '저항과 비판적 지성의 정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눈'일 것이다.

저항과 비판적 지성.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이들이 추구했던 가치. 그것은 결코 20대의 전유물은 아니다. 건강한 시민사회를 위해서는 30대에도 아니 그 이후에도 여전히 지켜져야 할 숭엄한 가치일 것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