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진 건물에서 나무책상 하나 줍다
[배다리 골목길 이야기 9] 시민모임 회의, 동무네 집, 책상 줍기
▲ 골목과 아파트30층, 40층, 때로는 50층이나 60층까지도 올라가는 이 아파트들이 참말로 우리가 살아가기에 좋은 집일까요? ⓒ 최종규
ㄱ : "파고들어가야 하는데, 파고들어가지지 않아서. 하는 사람은 하고, 안 하는 사람은 아예 차고, 그렇게 상황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관심은 있어요. 이 길을 파는데, 저거 왜 파는지 다시 봐야 하지 않아? 그러기는 하더라고요. 관심은 다 있어요. 그런데 한쪽에서는 왜 반대하느냐, 길 빨리 만들어서 깨끗하게 좀 하지 하면서 화 내는 친구도 있고, 그러면 할 말 없어서 가만히 있어야 하고. 재개발을 가지고 막는 언어를 쓰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이쪽이 재개발이 안 될까 봐 그냥 웅크리고 사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재개발도,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자존으로 갈 수 있는 재개발로 가도록 힘을 끌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너무 어려운 말인 거야. 이걸 쉬운 말로 어떻게 이야기하나? …… (종건본부장한테 그랬어) 임기 마치고 가실 거지요? 저는 그냥 살 거거든요. 저번에 놀랐어요. 재개발 바람 들어올 때, 그게 진짜 사실이라니까요. 동네 들어가면 위기감 느끼는 거야. 바람이 휭휭휭 불어요. (도장을) 왜 안 찍냐고 해. 왜 안 찍느냐고 다 찍는데, 바람이 부니까 불더라고요.
공산당 빨갱이는 저리 가라야. 아침에 나오기도 두렵고, 뒤에 할아버지 찾아가서 재개발이라는 게 이렇고저렇고 한데, 맞아요 맞아요 다들 왜 이러는 줄 몰라요 하는데 숨어 있다니까. 그러니까 옆에 할머니가 잠잠하더라고. 그때 그랬어요. 아유,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더라고요. 살기 싫어서, 아유 살기 싫어서, 그 집 하나 가지고 바람이 그런 바람이 없어요."
회의 끝무렵, 오늘 나누어야 할 안건 이야기를 마친 뒤, 재개발과 아파트와 이곳 사람들 생각과 삶을 놓고 저마다 한두 마디씩 마음 속 느낌을 털어놓습니다.
ㅇ : "그런 것도 모르고, 재개발되면 내가 보상받고 아파트 입주하고, 내 자산가치가 올라간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 단계만 생각하지, 내가 부담할 분양가는 얼마고 하는 생각은 없어요."
ㄱ : "그러니까 주택 가진 게 얼마나 부자인 줄 알아요. 주택은 태양을 받는 집이에요. 아파트는 주택처럼 받을 수 없어요. 누릴 수 없어요. 그 깊이를 어떻게 보여주나?"
ㅇ : "진짜 생각을 못하는 게, 무너뜨리고 아파트 다 짓고 나면 학교도 없는데, 애들이 다닐 학교가 없어요. 더 지을 생각도 없고. 아파트 다 지어도 분양도 다 안 되고 다 허물어지는 거잖아요. 뽑아낼 것도 없는데 밀어붙이는 것은 그 사람들이 생각이 있나 모르겠어요."
▲ 밤골목차가 드나들 수 없는 골목길입니다. 차가 드나들 수 없어서 이삿짐 나르기 힘들겠지만, 이삿짐 들어올 일은 딱 한 번뿐. 그 뒤로 서른 해고 쉰 해고 백 해고, 이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차에 치일 걱정이 없이 언제나 즐겁게 뛰어놀고 동네사람들이 이웃사촌이 되어 웃고 울며 어깨동무할 수 있습니다. ⓒ 최종규
오늘치(12월 7일) <인천일보> 기사를 보니, 동구 송림초등학교 둘레 삶터를 모두 밀어내고 ‘아파트를 올려세우는 재개발이 자꾸 늦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천시에서는 이곳 송림초등학교 둘레 작은 집들을 사람 사는 집이 아니라 ‘노후, 불량 주택이 밀집되’어 있다고 느낀답니다. 그래서 ‘기존 주택을 모두 헐어내고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시키는 전면개량 방식을 통해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추진되며, 사업이 완료되면 1천 414가구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합니다. ‘240% 용적률을 적용해 35층 이하 아파트 2개단지’를 세운다는데, 초등학교를 둘러싸고 35층이 조금 못 되는 아파트를 올려세우면,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햇볕도 못 쬐고 아파트숲에 둘러싸여야겠네요.
ㄱ : "시청에 가서 구월동에 아파트가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어서 그러는데, 경비가 하는 말이, 저 아파트가 내뿜는 열기가 얼마나 대단한 줄 알아요? 아열대를 다 저게 만드는 거예요. 세멘이 뿜는 게, 왜냐하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니까, 이게 집안으로 들어와서 순환이 되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안으로 들어갈 공간을 차단했잖아요. 그러니까는, 이게 숨을 안 쉬는 집이거든. 확실하게. 모르거든. 참 무서운 일인데."
ㅂ : "도시 하나 생기면 사막 하나 생기는 거예요. 땅을 다 도배하잖아요. 아스팔트로 콘크리트로."
ㄱ : "얼마나 좋은 데에서 사는 줄 모른다니까."
ㅇ : "나무가 불쌍해요. 저희 아파트에도 (돈으로) 소나무 심어 놓고 하루아침에 또 베고."
▲ 골목길 꽃그릇골목집들은 어느 집이나 해바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집이나 크고작은 꽃그릇을 집 바깥 골목길에 내어놓고 기를 수 있어요. 온통 시멘트밭인 도심지에 푸른 숨결을 불어넣습니다. ⓒ 최종규
봄이고 겨울이고 능금과 배를 먹을 수 있고, 낮이고 밤이고 삼겹살을 구울 수 있으며, 오징어, 고등어, 누런쌀, 검은쌀을 돈만 치르면 걱정없이 사먹을 수 있습니다.
ㅈ : "지난번에 시정질의 할 때 ㅂ의원이, 아니, 제일 처음 질의한 사람이 ㄱ의원이거든요. 그 사람이 조망코스 녹지벨트를 이야기했어요. 학교 녹지사업, 학교를 공원화 하는 것, 그거랑, 나무를 심어 놔서 우거지는데, 조명이 없어서 우범화된다고, 거기는 조명시설을 해 주면 될 거라 하면서, 청량상 문학산 그리고 분기점 해서 녹지조성 벨트를 하겠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속으로, 아유, 있는 배다리나 지킬 것이지. 여기는 깎아내고 거기는 녹지대를 만든다고, 남구 연수구 돌아가는 녹지대만 생각한다고. 나무만 새로 심는 걸 생각하고. 이쪽도 괜찮을 텐데."
ㅈ : "쫌만 가도 아파트단지에서 어르신들이 할 일이 없어서 공원에서 바둑이나 두시고, 어쩌다 보면, 잔디와 가로수 거기서 취로사업 한다고 그 여름 땡볕에 풀 뽑고 있어요. 그분들이 돈이 필요해서 하는 것보다 할 일이 없으니까 일이라도 하시는 거예요."
ㄱ : "사실 노인이 할 일을 만들어 내는 것밖에는 살 길이 없어. 노인 얼마나 많아? 전철 아침 나절에 타면 쫙 있어."
▲ 연탄연탄을 때는 골목집들. ⓒ 최종규
지금 우리들은 어디로 걸어가고 있을까요. 우리가 걸어가는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가 길을 걸어가는 동안 무엇을 보거나 느끼거나 부대끼거나 함께할까요. 우리가 걷는 길에 이웃사람이 있는가요? 우리 걸어가는 길목에 풀이, 나무가, 꽃이 있는가요? 새가, 짐승이, 물고기가, 벌레가 있는가요?
▲ 아파트아파트만 올려세우면 집 문제가 말끔히 풀릴까요? 숭의동 달동네 거의 꼭대기짬에서 바라본 새 아파트와 십자가. ⓒ 최종규
▲ 골목과 아파트골목집도 집입니다. 골목집 사람도 시민이고 주민이고 국민입니다. "재개발 대상자"나 "불량 낡은 주택 거주자"가 아닙니다. ⓒ 최종규
시민모임 회의를 마치고 나서, 국민학교 적 동무와 연락을 합니다. 한 해 갈무리를 하며 조촐하게 술이나 한 잔 할 생각으로. 동무 녀석은 어머님을 집으로 모셔다 드린 뒤 우리 도서관으로 찾아옵니다. 동무 녀석이 끌고 온 차에 탑니다. 얼음 섞인 듯한 비가 조금 떨어지는 밤길을 달립니다. 동무 녀석 식구들이 사는 ㅍ아파트에 닿습니다. 지하주차장 2층에 차를 세우고 술과 먹을거리 담긴 봉지를 들고 승강기를 타고 올라갑니다. 24층까지 있는 아파트입니다.
동무네 아이 윤이는 쉬지 않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옆지기는 잠깐 종이접기를 함께 해 주고, 술과 고기를 먹습니다. 이렁저렁 시간이 흘러 새벽 1시께. 동무네 부부가 불 끄고 누울 때까지 잠잘 생각을 않는다는 네 살배기 윤이가 하품을 합니다. 먼저 졸립다고 하는 적이 없다는 아이가 졸려 하기에 자리를 털고 일어섭니다.
▲ 동무 녀석과 딸아이쉬지 않고 뛰고 말하고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노는 이 아이가, 언제나 안전하고 즐겁게 배우고 크고 자랄 수 있는 터전은 어디일까요. ⓒ 최종규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바람이 셉니다. 우산을 받고 가다가 끄기로 합니다. 산업도로 낸다며 쫙 밀어서 빈터가 되어 버린 길을 걷습니다. 용역업체가 부순 건물 찌끄레기가 뒹구는 한켠에, 퍽 묵은 나무책상 하나 구르고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이리저리 살피고 쓰다듬습니다. 옳거니! 이 책상 가져가서 우리가 쓰면 좋겠다!
우산은 책상 위에 얹습니다. 옆지기와 들고 영차영차 나릅니다. 10m쯤 나르고 쉬고, 또 10m쯤 나르고 쉬고. 건널목을 건너는데 가운데짬에서 불이 바뀝니다. 우리는 멈춥니다. 차들은 불을 깜빡깜빡 하면서 지나갑니다.
▲ 헌 나무책상그대로 두면 불쏘시개가 되거나 나무쓰레기로 삶을 마감했을 나무책상 하나. 낑낑거리며 도서관까지 날라 왔습니다. ⓒ 최종규
히유. 그예 도서관까지 책상 하나 옮겨 왔습니다. 걸레로 먼지를 닦아 줍니다. 걸레 한 번 빨아서 한 번 더 닦습니다. 또 한 번 빨아서 한 번 더 닦습니다. 서랍을 모두 꺼내어 닦아 줍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부터 해가 밝게 걸립니다. 서랍을 옥상으로 가지고 와서 널어 놓습니다. 이렇게 하루쯤 해바라기를 시킨 뒤 걸레질 또 한 번 해 주면 말끔하게 다시 태어나는 나무책상이 되겠지요.
네 번쯤 걸레질을 해 줍니다. 손바닥으로 살며시 쓸어 봅니다. 참 야무지게 만든 녀석이구나 하고 생각하며, 이 책상이 여태껏 몇 해쯤 살아왔을까 헤아립니다. 내 나이보다 많을까? 내 또래일까? 나보다 조금 어릴까? 어느 쪽이라고 해도, 책상이 되기 앞서 땅에 뿌리박은 나무였을 때는 벌써 제 나이를 앞지르고 있었겠지요.
지지난달에는 나무걸상을 넷 길에서 주웠고, 지난달에는 나무장식장 큰 것 하나와 중간 것 하나를 길에서 주웠습니다. 어제는 나무책상을 하나 줍습니다. 이 걸상이며 장식장이며 책상이며는 ‘짧으면 서른 해쯤’ 묵은 녀석들일 텐데, 겨울날 불쏘시개로 쓰면 하루도 안 되어 재가 되어 사라지겠지요. 하지만 잘 손질하고 걸레질하여 도서관 한켠에 고이 모셔 놓으면, 멋진 집안살림이 됩니다. 뒷날, 제가 죽고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도, 또 제 뒷사람들이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도, 이 걸상과 장식장과 책상은 고이고이 도서관을 지키면서, 이 동네 사람들한테 자기가 거쳐 온 세월과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주겠지요.
오늘은 마침 제 난날. 묵은 나무책상 하나는 제 서른두 번째인가 서른세 번째 귀빠진 날을 축하해 줍니다.
▲ 나무책상부지런히 걸레질을 하고, 서랍을 빼내어 해바라기를 하기 앞서.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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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이름이나 많은 돈벌이나 큰 힘 하나 없이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동네가 이곳 인천 중ㆍ동구, 또 남구입니다. 경제개발과 경제성장하고는 조금도 안 어울릴 수 있겠지만, 온 삶을 바쳐 땀흘려 일하고 조그마한 몸뚱아리 드러누울 작은 집 한 칸이나 방 한 칸 마련하여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도 ‘내 집에서, 내 땅에서, 조용하면서도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다가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님 정책을 한 번도 거스르지 않고 허리 구부정할 때까지 살아온 사람들 숨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배다리 골목길 이야기]를 띄웁니다. 이 땅에는 사람이 살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고, 골목길에는 낮은자리 사람들, 그러니까 서민들 숨결이 녹아난 보금자리가 있음을 들려주고 싶고, 돈으로는 헤일 수 없고 물질로는 채울 수 없는 눈물과 웃음이 서린 우리 손때 묻은 길과 집이 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