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거닐며 성의 앞날을 생각하다
[남도여행] 대몽항쟁 근거지였던 진도의 두 성
▲ 배추밭용장리 가는 길에서 만난 배추밭. 진도 들녘에는 어디나 배추밭과 파밭이 있다. ⓒ 이현숙
▲ 용장사용장산성 옆에 있는 용장사. ⓒ 이현숙
▲ 용장산성 터용장산성 터. ⓒ 이현숙
이곳이 삼별초의 근거지가 되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강화도에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던 함선의 이동이 쉬웠고, 몽고군이 가장 난처해 하는 섬이라는 것. 강화도와 비슷하게 넓고 육지가 가까워서 만약의 경우에는 자급자족도 가능하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고.
성벽은 서벽이 망바위를 지나 토성으로 이어져 벽파진 북쪽 바다에까지 닿아 있으며, 축성 연대는 1270년 6월 이후로 추정. 현재는 용장산 좌우 능선을 따라 석축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성내에 용장사지와 행궁지가 보존되어 있다.
▲ 남도 석성남서쪽으로 난 남문과 만호비. 조선시대 무관이었던 만호들의 공덕을 새겨놓은 비이다. 마을 중앙에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의 합의로 동문쪽으로 옮겨놓았다고. ⓒ 이현숙
남도석성은 남서쪽 끝 부분에 있고, 용장산성은 북동쪽에 있다. 그리고 이 두 곳은 다 고려말 삼별초가 몽고에 항쟁할 때 근거지로 삼았다. 남도석성은 삼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삼별초의 지도자 배중손이 여몽연합군에 쫓겨 최후를 마친 곳이라고 알려졌으며, 둘레 610m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지만, 현재의 성은 조선 중기 다시 축성했으며 당시 조선의 수군이 왜군을 경계하기 위해 다시 쌓았다고 한다.
세상에 우리나라에 이렇게 멋지고 아담한 성이 있다니!
▲ 남도 석성성위로 난 길. 왼쪽은 성안에 있는 마을이고, 오른쪽은 성밖에 있는 마을이다. 성위로 올라가면 바다가 보인다. ⓒ 이현숙
▲ 관아성안에 있는 관아. 예전부터 있던 게 아니라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옛모습을 살려 복원한 것이다. ⓒ 이현숙
해미읍성이나 낙안읍성 등과 같은 다른 성들과는 차원이 달라 보였다. 건재하기도 했지만 조금도 윤색되지 않은 본모습이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 남도 석성성 안의 동네...조상때부터 살았다는 어르신은 이곳을 떠날 일이 걱정이라고 하셨다. ⓒ 이현숙
제발 재정이 부족해서라도 개발을 미뤘으면...
마당에서 일을 하시던 동네 어르신이 있어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이 마을은 증축도 개축도 할 수 없어 무척 불편하다고 하신다. 게다가 이젠 집을 비우고 나가라고 하는데, 조상대대로 살아온 집을 어찌 떠나느냐고 한탄하신다.
동네 어르신의 걱정도 마음에 와 닿았지만, 옛 풍경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해 나는 그만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리고 보존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렇다고 몽땅 개발해 버리면 결국 본모습은 완전히 잃게 마는 것이다. 한 번 잃은 것은 영영 되찾을 수도 없고.
▲ 남도 석성동문쪽 성위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있다. 문도 없는 휘어진 길로 성안으로 들어 가게 되어 있다. ⓒ 이현숙
▲ 남도석성남문을 거쳐 성곽 위로 둥글게 길이 나 있다. ⓒ 이현숙
▲ 배중손 장군 사당진도군 임회면 굴포리에 있는 배중손 장군 사당.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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