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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를 걷다 길바닥으로 내팽개쳐진 41 킬로미터

[천진난만하게JH, 산티아고 가는 길 18] 에스피노사 델 카미노에서 부르고스까지

등록|2007.12.08 14:28 수정|2007.12.08 14:32
머나먼 길을 따라
사라진 내일을 향해
어제에 안녕의 말도 없이
내가 붙든 기억들은 진짜일까?
......
나는 혼자인 걸까?
이 버거운 발길 너머 누군가 있는 걸까?
이 길은 여전히 걸어가라 말하지.
무언가 나를 끌어당기는
그 모든 힘을 느껴.


- 'Gravity', Kanno Yoko / Sakamoto Maaya

2007년 7월 5일 목요일,
날씨 너무 맑음, 순례 13일째, 41km. 오전 6시 50분 출발, 오후 5시 도착.

새벽 5시 45분, 번쩍 눈이 뜨였다. 창밖으로 별들이 반짝였다. 이른 시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꾸린다. 매일같이 등짐 하나를 풀자마자 다시 짊어져야 하는 순례자로서 13일 째의 여정, 따뜻한 환대마저 등 뒤로 하고 길 위에 올라야 하는 운명이 오늘은 조금 매정하게 느껴졌다. 하루만 더 머물고 싶다는 마음에 방안을 이리저리 배회하지만 부질없는 욕심임을 알고 마음을 다잡는다.

곧 스피커를 통해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라 브라이트만이 신비로운 목소리로 ‘Don't give up'을 속삭인다. ’포기하지 마‘, 마치 내게 하는 말인 듯 느껴졌다. 길 위의 모닝콜로 손색이 없었다. 가방을 메고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물건 몇 개를 챙긴 후 방문을 열었다. 고개를 돌려 방을 둘러보았다. 하루도 채 안 되는 시간동안 벌써 익숙해져버린 풍경을 돌아서며 마음이 쓰렸다.

뒤뚱뒤뚱 가방을 메고 좁은 계단을 내려갔다. 할아버지는 벌써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계셨다. 문가에 가방을 내려놓고 식탁에 앉았다. ‘가예타(Galleta)'라고 불리는 비스킷과 따끈하게 데워진 우유, 그리고 카페(커피)가 차려져 있었다. 잘 잤느냐 묻는 할아버지께 ’무이 비엔(아주 좋아요)‘라고 답하며 웃었다.

“순례자들의 상징이 바로 이것이지. 비스킷, 그리고 카페 콘 레체.”

순례자들의 상징, 비스켓과 카페 콘 레체

환하게 웃으시며 권하는 할아버지와 함께, 비스킷 몇 조각과 카페 콘 레체(우유 탄 커피)를 먹었다.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이라며 삼가기만 했던 것들, 어떻게 저게 아침이 될 수 있냐며 끝까지 피했던 것들이 바로 비스킷과 커피였는데…. 사람은 이렇게 변하나보다. 적어도 길 위에서 나는 이렇게 변했다.

“할아버지, 이거 별 건 아닌데요. 한국 장식품이예요. 할아버지 장식하는 것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이건 제가 해먹으려고 샀던 건데요, 할아버지 드릴게요. 다른 순례자들 오면 이걸로 맛있는 저녁 해 주세요. 어제 저한테 해 주셨던 것처럼요.”

식사를 마치고 식탁 한 쪽에 두었던 물건들을 할아버지께 내밀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매듭공예품과 검은 비닐에 담긴 감자와 양파를 드렸다. 할아버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물건들을 고맙다고 하시며 받아주신다. 그리고 냉장고를 가리키며 일본 종이인형 장식품을 보여주신다. 전에 이 집에서 나처럼 따뜻한 환대를 받은 일본의 순례자가 남긴 흔적인가보다. 할아버지는 나를 꼭 안아주시며 볼을 마주치는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의 턱수염이 마치 솜처럼 내 뺨을 간질거렸다. 문득 며칠 전 로그로뇨에서 만났던 마르첼리노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떠나는 내게 할아버지는 배지 하나를 쥐어주었다. 가방을 둘러맨 순례자 모양의 배지다. 꼭 할아버지 같아서 웃음이 났다. ‘이거 보면서 할아버지 생각 할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숙소를 나서는 길, 새벽 동이 터 오기 시작했다. 내딛는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몇 번을 뒤를 돌아보며, 쓰린 마음을 다잡았다. 조금, 눈물이 난 것 같기도 했다. 곧 마음을 다잡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길은 곧 오르막으로 이어졌다. 한 발짝 한 발짝, 힘이 실렸다. 왠지 오늘, 잘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구름 위를 걷듯숲길 사이로 난 드넓은 도보길 ⓒ JH


처음부터 산을 오르는 날이었다. 숲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높은 목소리로 영어를 구사하는 한 패가 뒤에서 걸어왔다. ‘내 생각에 신을 믿는다는 것은~’ 으로 시작해 아주 빠르고 퉁명한 목소리로 그들은 토론을 이어갔다. 신경이 쓰여서 어떻게 길을 오르내렸는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부지런히 앞서가는 게 방책인 것 같아 급히 걷다가, 제풀에 지쳐 ‘안녕’인사를 나누고 먼저 보내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길게 뻗은 길로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마음이 놓이는 나를 바라보며, ‘나도 참 징그럽다’싶었다. 그저 같은 길을 걷는 순례자일 뿐이었는데, 무엇이 그리 불안했는지 모른다.

2시간 정도 걷고 나자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에 도착했다. 순례자들 사이에서 이름 있는 마을이기에 꽤 클 줄 알았는데 작은 곳이었다. 성당에 인사를 하고 기념품이 전시된 곳에서 엽서 몇 장을 사고 나왔다. 오늘 목적지는 오르테가 다음 마을인 ’아헤스(Ages)'라는 곳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도착한 마을은 평온하고 마음에 들었지만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어제 할아버지네 집에서 받았던 힘을 내서 한 번, 부르고스까지 가 볼까?’

순례 후 처음으로 노래를 부르다

마음을 결심하고 나자 몸은 날듯이 가벼워졌다. 순례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입 밖으로 목소리를 내어 노래를 불렀다. 칸노 요코, m-flo, 성시경의 노래들을 떠오르는 대로 불렀다. 앞뒤로 사람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넓게 뻗은 길에서 나는 큰 소리로 노래하고 또 뛰듯 걸었다. 왠지 기분이 좋았다. 레파토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노홍철(!)의 ‘나는 문제없어’ 까지 도약했을 때, 눈앞에 커다란 간판이 이곳이 ‘아타푸에르카(Atapuerca)'임을 알려주었다. 선사시대 원시인 같은 얼굴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아타푸에르카에서스페인의 선사시대 유적지, 발굴은 현재진행형 ⓒ JH


시계바늘이 1시를 조금 넘긴 시간. 여기서 멈추고 싶지가 않았다. 이 좋은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도보 여행자들이 곧잘 경험한다는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혹은 마치 길과 내가 하나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선배 순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말한다.

“바로 이 때 신비스러운 연금술이 작용하여 몸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정신, 그 순수한 정신은 광야와 초원 혹은 산꼭대기 위로 날아오른다. 무한함 속에서 보이지도 않고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올라 모래바다 속의 모래알이 되는 그 때, 우리를 가두고 있던 일상이라는 감옥의 창살이 순식간에 부서져버린다. 그제야 비로소 천국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 <나는 걷는다 1(아나톨리아 횡단)>에서

아타푸에르카의 작은 전시관에서 도장 하나를 받고, 곧 길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 한 번 ‘부르고스(Burgos)'까지 걸어보자. 지금까지 25킬로미터, 앞으로 약 16킬로미터, 5시간이면 걸을 수 있을 거야. 돌 언덕을 하나 넘으니 어설픈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왼편에서는 탱크가 움직이고 군인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바짝 긴장했다. 아니, 겁이 났다. 눈 마주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딴 곳을 보면서 걸었다. 그림자 하나 없는 길이 이어지고 멀리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부르고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언덕을 내려오는 길에선 멀리 석회석같이 허연 돌들 사이에 자리한 거대한 공장이 부연 연기를 뿜고 있었다. 정말 무서운 길이었다. 방금까지의 무아지경이 거짓말 같았다.

부르고스 가는 길푸른 하늘, 거친 벌판, 드문드문 나타나는 작은 마을들 ⓒ JH


걸어도걸어도 나타나지 않는 도시, 걷다가 몇 번을 그나마 큰 나무 아래로 작은 그늘조각이 나오면 걸음을 멈추었다. 차마 짐을 내려놓지를 못하고 그늘에서 서성거리며 걱정만 가득했다. 여기서 멈추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작은 마을을 지나 아스팔트가 이글거리는 길을 힘겹게 걸어갔다. 마음이 급해져 밀밭을 가로질러 걷기도 했다. 바싹 마른 흙밭에 신발이 푹푹 빠져들었다.

널따란 도로에 차들이 쌩쌩 달리는 것 보니 도시에 가까워졌나보다. 안심도 잠시, 끝없이 이어지는 자동차 회사들의 쇼윈도, 바람같이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견뎌내며 걷고 또 걸었다. 차를 마주보고 걷는 길에 어떤 트럭은 지팡이를 짚고 걷는 나를 보며 손을 흔들기도 했다. 순간 그들과 인사를 나누며 힘을 받기도 했다.

브릿지스톤이라는 회사가 시작되고 10분을 걸어도 망할 놈(?)의 회사 건물이 끝없이 이어졌다. 철창을 부여잡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쉬었다. 지나치는 상점들은 굳게 문을 닫은 채 낮잠에 빠져있고, 길가에서는 아주 가끔 동네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무심코 올려다본 전자 온도계는 40도를 알려주고 있었다. 이 시간에 나와 있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문득 C와 걸었던 로그로뇨 가는 길이 떠올랐다. 그 날도 하루의 막바지에 큰 도시에 들어가는 것이 고역이었는데, 앞으로 큰 도시에 진입할 때엔 정신이 제대로 박혀있는 때, 즉 아침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르고스입니다카스티야 레온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마을 안내판, 주요정보가 상세하게 안내되어 있다 ⓒ JH


그렇게 한 시간 반을 걷다 서다를 반복하며 옛 건물과 거대한 동상 하나를 스쳐갔다. 전형적인 구시가지의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쯤이면 숙소 하나쯤 있을 법 한데, 하는 신호로만 여겨졌을 뿐 도저히 제대로 들여다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그것이 스페인의 영웅 ‘엘 시드(El Cid)’의 동상임을 알았다. 이슬람과 기독교세력이 접전하던 이베리아 반도에서 양쪽 모두에게 칭송받았던 수완 좋은(?) 기사, 당신 모습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며 지나쳤군요.

구시가지 미로 속에서 숙소 찾기 숨바꼭질 벌이다

시에스타의 막바지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구시가지의 미로 속에서 숙소 찾기 숨바꼭질을 벌이던 나는 이제 어찌되었든 가장 가까운 호텔이라도 들어가 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 때 작은 옆가방만 두른 채 가이드북을 가지고 있던 M과 마주쳤다. 슬로베니아에서 온 그녀를 로그로뇨에서 만나고 며칠 만인지.

“와, 반가워. 너 혹시 여기서 오늘 지내니?”
“아니. 가방만 잠깐 맡겨놓고 걷는 중이야. 여긴 큰 도시니까 볼 게 많긴 하지만 지내기엔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다음 마을로 가려고.”
“그렇구나, 난 오늘 41km째라 더 이상은 못 가겠어. 여기 숙소 어딘지 아니? 내 정보지엔 잘 안 나와 있어.”
“어디 보자, 책에 보니까 이 근처야. 저 길을 따라서 가면 나와.”
“응. 고마워. 잘 걷고!”

부르고스 시내 순례자 숙소정면의 건물 3층이 순례자들의 보금자리 ⓒ JH

지친 몸이 버거워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가 퍽 삭막했다. 미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길을 향했다. 오래지 않아 찾을 수 있었던 곳은 각종 유적, 관광지와 가까운 곳에 있는 명당자리 숙소였다. 18개의 침대뿐인 이 숙소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침대를 차지한 시간은 오후 5시에 가까웠다. 대충 짐을 던져놓고 순례자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전화방이 어디냐고 물었다.

후반부의 길이 정신 사나워서 그랬는지 몰라도 계속 불안한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빨리 집으로 전화를 하고 싶었다. 다들 잘 모르겠다는 가운데 오스피탈레로 아저씨에게 물으니 무엇이라고 스페인어로 말씀하신다. 다른 순례자가 다리가 되어 통역해주었다.

“잠깐만 기다리면 그쪽으로 데려가주겠대.”

말이 통하지 않자 아예 같이 가겠다는 것 같았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안절부절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른 후, 아저씨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이리저리 헤맨 끝에 찾아낸 전화방은 히잡을 두른 여자, 구릿빛 피부에 까만 수염을 기른 중동지역의 사람들이 바쁘게 드나들고 작은 종이에 세계 각국의 국기그림과 1분당 얼마라는 가격표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 나라들은 보통 중동과 유럽에 집중되어 있었다. 중국과 일본은 찾을 수 있었지만 한국은 알 수 없었다.

종이에 'South Korea'를 써서 점원에게 내밀어 가격을 묻고 비좁은 칸막이 방에 앉았다. 한국은 자정, 번호를 눌렀다. 집, 어머니의 가게, 모두 받지 않았다. 머리가 복잡해지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동생 휴대전화로 전화했다. 아주 긴 울림이 이어진다.

“뭐야, 왜 이렇게 안 받아.”
“응? 언니야? 지금 엄마랑 조개구이 먹으러 왔는데.”

문득 불안감이 퉁명스러운 화로 변했다가 곧 안도감이 되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문득 좋은 시간을 갖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아 끊기로 했다. 술을 한 잔 하셨는지 조금 나른한 엄마의 목소리에서 걱정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딸, 사랑해. 엄마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지?”
“네…, 저도요. 에이 됐어요. 끊을게요. 건강히 계세요.”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아직 따끔거리는 발바닥을 이끌고 마지막 미사시간에 뛰어 들어가 성체를 모셨다. 그 유명한 부르고스 대성당은 관람시간이 끝나 그저 미사를 한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섰다. 카메라에 성당을 담으려 이리저리 움직여도 첨탑이 삐져나오는 등, 너무나 거대한 이 건축물은 한 장의 사진에 다 담을 수 없었다.

부르고스 대성당한 폭에 다 잡히지 않는 거대한 성당 ⓒ JH


열정의 밤으로 접어드는 부르고스의 노천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부산하게 오고가는 사람들, 테이블에 둘러앉아 격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유모차에 실린 채 손을 바둥거리는 아기, 의자 사이를 따라 꼬리를 흔들며 떨어진 음식을 찾는 개를 쳐다보며 30분쯤을 기다리고서, 거뭇거뭇 탄 듯이 튀겨진 닭이 담긴 ‘플라토 컴비네이션(일품요리)’을 칼로 썰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잘 채비를 하는데 위층 침대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금발의 여자아이와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다. 순례 중에 폐렴에 걸리고도 계속 걷고 있다는 핀란드에서 온 에바, ‘이건 항생제고 이건 잘 모르겠지만….’ 하며 그녀가 보여주는 약 다발들을 쳐다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10시가 되어 불이 꺼진 열여덟 개의 침대는 침묵에 휩싸이고, 창밖으로 술병이 깨지고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보니 이제부터가 스페인의 밤이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메세타’구간이다. 황량한 벌판 위에서 가감 없는 자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침착할 수 있을까? 견뎌낼 수 있을까? 또 다시 찾아드는 걱정과 불안 그리고 발목의 통증은 깊어진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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