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어찌 사냐?" "사는 게 그렇지, 뭐!"
23년 만에 만난 재경 여수고 친구 송년 모임
▲ 시청 앞 루미나리에가 연말의 분위기를 돋굽니다. ⓒ 임현철
“야, 너~ 나 알겠냐?”
“모르겠다. 너~ 누구지?”
“나, 완주여! 나도 너 모르겠다.”
평상시 “너, 누구냐?” 하고 물으면 굉장히 서운할 텐데 그냥 씩 웃으며 “나, 누구여”합니다. 그리고 기억나지 않은 고등학교 때로 돌아갑니다.
“나~, 5반.”
“그러니 모르지. 나, 11반.”
“그래 반갑다야~.”
지난 7일, 23년 만에 수도권에 살고 있는 여수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라는 궁금증보다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미래의 삶을 공유하던 친구들을 만난다는 사실에 마음은 들떴습니다.
송년 모임 장소인 서울시청 부근은 연말임을 상기시키듯 화려한 불빛으로 눈길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서울 지리에 문외한인지라 장소를 찾기까지 잠시 헤맸습니다. 전화를 걸어 장소를 다시 확인한 후 모임의 울타리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 반가운 얼굴들, 술자리가 익어갑니다. ⓒ 임현철
“야, 너 어찌 사냐?”
“사는 게 그렇지, 뭐!”
까까머리 땡땡한 피부에 장난기 넘치던 젖비린내 나던 앳된 얼굴들은 온 데 간 데 없습니다. 왠 중늙은이(?)들이 앉아 생선회와 밑반찬을 앞에 두고 소주를 들이키고 있습니다. 간간이 만나던 녀석도 있고, 고등학교 때 알지 못하던 녀석도 있습니다.
처음 보는 동창도 쑥스럽지 않은 일체감
동창이라지만 처음 보는 얼굴과 40여년의 삶이 흐른 지금,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만으로도 금방 친구가 되는 단순함 속으로 파고들어도 쑥스럽지 않은 일체감은 무엇을 의미할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벌써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저 동기동창이란 사실 하나가 삶의 위치, 역할에서 벗어나 일행을 하나로 묶는 지렛대. 우린 참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구나 싶기도 합니다. 이도 잠시, 소주가 한 잔씩 늘어갈 때마다 아쉬움의 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야! 상준이, 명률이, 수호, 철이 이놈들 왜 안 왔대~?”
“출장 가고, 바이어 만나고, 집에 일이 있고….”
▲ 할 말이 뭐 그리 많은지? ⓒ 임현철
“쪽 팔리고 싶지 않다. 고등학교 때는 잘 나갔는데, 이런 잘난 맛은 버려! 예전의 우월함 따윈 버려! 친구는 정말 보고 싶고, 좋아서 만난다는 마음이어야 돼. 객지에서 허전하고 쓸쓸할 때, 소주 한 잔 부담 없이 만나 마시는, 그런 조건 없는 친구여야 돼!”
이심전심. 박수가 터집니다. 많이들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나 봅니다. 그리움을 안고 있었나 봅니다. 까까머리의 고등학교 때가 그리운 게 아니라 사심 없이 흉금을 터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간절히 필요했나 봅니다.
“먹고 사는 것에 전전하며 살 수밖에 없지만 서로 이해하며, 친구가 그리울 때 소주 한 잔 나누며 위로해 주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친구 아니여! 헐뜯지 말고, 상부상조하며, 고마워하고, 즐거워하고, 내심을 허심탄회하게 드러내며 살아가자!”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조건이 있어야 서로 만나는 세상에서 조건 없이 만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혼자가 아닌 어느 덧 처자식이 옆에 떡 버티고 있으니 열심히 벌어야 하는 게 세상 이치인지라 마음은 꿀떡 같은데 몸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 건배! 내년에는 더 열심히 살자고~. ⓒ 임현철
▲ 전임 회장에게 감사패가 전해집니다. ⓒ 임현철
술맛 떨어지는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
은행에 다니다 그만두고 부동산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는 친구는 벌써 술이 취해 드러누웠습니다. 그 옆에 한 녀석이 붙어 챙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버리지 않고 챙기며 사는 게 친구겠지요. 대선의 화두도 던져집니다. 이것보다 더 나은 술안주는 없으니까.
“야, 너 누구 찍을 거냐?”
“야, 그런 거 묻지마. 근데 나는 누구 찍을란다.”
“야, 너 많이 변했다. 근데 누구 찍지?”
“나는 코드는 문국현인데~.”
“야, 술맛 떨어지니까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
한 사람씩 난도질을 하던 차인데 한 방에 자리가 조용해집니다. 다들 정치가 술맛 떨어지게 하나봅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책임지는 사람 없고 다 잘났다고 하니까 그런 거겠죠. 술이 거나해지자 2차가 이어집니다. 한 녀석씩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전화가 울립니다.
“야, 나 일이 있어 집으로 가고 있다.”
서운하지만 이해하고 넘어갑니다. 삶이 그런 것이니까. 연말연시, 술 적게 마시는 방법 때문에 무사히 집으로 향합니다. 택시를 잡아주고 넌지시 택시비를 넣어 주던 녀석은 잘 들어갔는지…. 아내가 아파 옆에서 간호를 해줘야 한다는 중명이의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인연이 길다면 쉽게 또 만나겠지요. 모두들 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 건강을 기원합니다.
▲ 정답고 그리운 얼굴들입니다. ⓒ 임현철
▲ 시청 앞 불빛에서 한 해의 저물어감을 봅니다. 뭘 했지? ⓒ 임현철
덧붙이는 글
SBS U포터와 미디어 다음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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