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왜?... 검찰 발표후에도 'BBK'는 의문투성이
김경준의 변호인단 접견록 보니 풀리지 않는 쟁점 '여전'
▲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와 선대위 관계자들이 6일 오후 서울 명동입구에서 검찰의 BBK의혹 수사를 규탄하며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 권우성
대통합민주신당과 이회창 캠프 소속 변호사들이 연일 김경준씨의 진술을 공개하며 검찰의 BBK 수사의 문제점을 공격하고 있다.
'이명박 독주' 체제가 굳어진 상황에서 양측의 이같은 공세는 '검찰-이명박 유착설'을 유포해 반(反)이명박 진영을 규합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음이 명확하다.
그러나 김씨의 진술을 재구성하면 검찰의 '깔끔한' 사건 발표만으로 이번 사건의 의문점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마이뉴스>가 신당과 이회창 캠프가 공개한 '김경준 접견록'에 나온 새로운 쟁점들을 정리했다.
[쟁점①] 이명박은 김경준을 언제 처음 만났나?
11월22일 에리카 김의 라디오 인터뷰와 함께 쟁점으로 떠올랐지만, 다음날 김씨의 한글 이면계약서가 공개되며 유야무야 넘어간 부분이다. 검찰도 "이번 사건의 본질은 계약서의 위조 여부"라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무게있는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김경준과 이명박 양자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부분이다.
김씨는 "1999년 초 살로먼스미스바니 서울지점에 근무하던 시절, 이 후보의 측근 김백준씨로부터 전화가 와서 그를 만났고, 김씨의 소개로 같은 해 2~3월 서초동 영포빌딩 1층 동아시아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가 자주 다니던 리츠칼튼 호텔에서 점심을 먹으며 오랫동안 사업 얘기를 했고, 김씨 자신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뒤 한국에 더 머무르기 위해 비자가 필요한 상황이었기에 BBK를 급히 설립했다는 얘기다.
BBK의 설립 단계에서 이 후보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던 것은 1998년 11월 이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 객원연구원 신분으로 나가있었던 이 후보의 개인적 처지 때문이라고 김씨는 추정하고 있다.
이 후보가 "나는 미국에 있어야 할 사람이다, 한국에 있어서는 곤란한 상황"이라며 회사에 자기 이름이 처음부터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인데, 김씨는 "검찰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이 후보의 출입국 관련 자료를 본 뒤 이 후보가 거짓말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99년에 이 후보는 미국에 있었다"고 줄곧 얘기해오다가 이 후보의 이 시기 한국 체류 여부가 쟁점이 될 조짐이 보이자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이 11월 22일 오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 후보가 99년 4~5차례 귀국한 일이 있다"고 시인한 바 있다.
▲ 'BBK 주가조작 및 횡령 의혹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중앙지검 김홍일 3차장 검사가 5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6층 브리핑실에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연단에 오르고 있다. ⓒ 권우성
[쟁점②] 다스는 김경준에게 왜 190억을 투자했나?
검찰은 5일 "다스가 BBK에 190억원을 투자한 것은 이사회 등 내부 절차를 거친 정상적인 투자 행위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씨는 "다스 조사는 마지막 이틀(3~4일) 동안만 형식적으로 했다"고 주장하고, 검찰에서도 지난 주말부터 "사건의 결론이 이미 내려졌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 이를 종합하면 검찰이 사건의 마무리 단계에서 다스에 대해 '면피용' 수사를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김씨가 2000년 2월말 다스의 김성우 사장을 만난 뒤 불과 한 달여 만에 다스 이사회(김재정·이상은·김성우)가 1차로 50억원을 투자한 과정도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있다.
검찰이 다스측 관련자들의 조사결과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 가운데 김씨는 지난해 미국 법원 소송당시 다스측 증인들의 모순된 진술을 공개하며 검찰 수사의 '허점'을 공략하고 있다. 다음은 김씨가 전한 미 법원 판사와 다스측 증인의 대화 내용이다.
판사 "왜 투자하기로 결정했는가?"
다스 "한번은 갑자기 김경준이 찾아와서 20분 만에 (50억원을) 투자하기로 사인했다."
판사 "두 번째 투자는 왜 했나?"
다스 "35% 이익을 보장해줬고 언제든 투자금을 빼낼 수 있어서 했다."
판사 "두 번째 투자할 때까지 (35%) 이익이 남았는가?"
다스 "(이익이) 안 났다. 실망했고 화냈다."
판사 "그 이유를 알아봤냐?"
다스 "안 했다."
판사 "그런데 왜 50억원을 추가로 투자했나?"
다스 "이유가 없다."
특히 김씨는 2001년 12월 미국으로 도피하기 전 BBK 투자자중 유독 다스에만 140억원을 돌려주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다스로부터 들어온 돈은 투자금이 아니라 운용자금"이라고 검찰에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은 "다스 돈이 BBK 운용자금으로 들어왔다고 진술하면 죄가 된다. 투자금으로 얘기해야 혐의를 벗는다"고 김씨를 설득했다고 한다. 검찰은 결국 "다스의 돈은 (운용자금이 아니라) 투자금이었다"며 이 부분에 대해 김씨를 무혐의 처리했다.
신당의 한 관계자는 "김경준은 다스가 이 돈을 섣불리 '내 돈'이라고 외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돌려주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쟁점③] 이 후보의 비서는 사건의 '깃털'이 아니라 '몸통'?
김씨는 "이명박 후보의 비서 이모씨가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2000년 LKe뱅크 대표이사실 비서로 채용된 이씨는 이 후보와 김씨가 '결별'한 이후 옵셔널벤처스로 옮겨 회사 자금과 통장·인장 등을 관리하고 주식주문 입력 업무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김경준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진술했고, 사건과 관련해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김씨는 "이 후보의 허락을 받고 옵셔널벤처스 주식을 매집했고, 주식 거래와 자금 거래는 이씨가 다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씨 말대로라면 당시 20대 여직원이었던 이씨가 사건의 핵심인물이었다는 것인데, 김씨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두 사람의 대질신문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김씨의 지시로 여권 등을 위조한 또 다른 이모씨만 유일하게 대질신문했다.
여권 위조는 김씨가 비교적 고분고분하게 혐의를 인정하고 있는데 굳이 대질 신문을 하고, 김씨 주장과 정면으로 엇갈리는 이씨와의 대질신문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 지난달 19일 새벽 BBK 주가조작의 핵심인물로 알려진 김경준씨가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이송되던 중 차에 타기 전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김주성
[쟁점④] 검사들의 회유·협박 있었나?
검찰이 김씨를 회유·협박했다는 '김경준 메모'는 BBK 수사 발표 이후에도 적잖은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메모가 나온 4일 최재경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은 "김씨에게 물어보니 '(미국과 달리) 검사가 계속 조사하고 추궁해서 어떤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품고 가족에게 몰래 줬다'고 진술하더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씨는 7일 변호인단과의 접견에서 "11월23일 어머니가 이면계약서 원본을 제출하자 검사가 '계약서를 검토할 생각이 없고, 계약서 따위는 없애면 그만'이라고 말했다"고 자신의 주장이 진실임을 강조했다.
김씨에 따르면, 11월 25일경 검사가 "이면계약서가 2001년 3월 이 후보와 같이 만들어서 도장을 같이 찍었다"고 진술하라고 요구해서 그대로 진술서를 작성하고 검사가 상부에 보고했더니 상부에서 "이 후보는 BBK와 아무 상관이 없으니 김경준 혼자서 다 저지른 일로 진술서를 바꾸라'는 지시도 내려왔다고 한다.
김씨가 이같은 요구에 응하지 않자 검사가 짜증을 내며 "지금까지 협조했다는 것은 다 무효다", "12년 이상의 형량을 받도록 하겠다"며 위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김씨가 "11월28일 새벽4시 수사팀을 지휘하는 부장검사가 직접 김씨에게 '진실을 말하면 10년 형량을 7년으로 줄여줄 것'이라고 말했다"는 주장도 폈지만, 검찰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검찰과 김경준간의 협상설에 대해 정치권과 법조계의 시각은 엇갈리고 있다.
김씨를 접견한 송영길 의원(신당)은 "제도적으로는 없지만 양형상 '형량 경감' 협상이 가능하다"며 "피의자가 죄를 인정하면 검사가 '정상 참작을 많이 해주겠다'는 제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일부 지검의 검사들이 그런 문제를 일으켜 징계를 받은 적은 있지만,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에서 서울중앙지검이 같은 실수를 저질렀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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