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내리치는 18세기 다산의 죽비
[책으로 읽는 세상 46] 세밑에 <다산어록청상>을 읽다
1.
12월 초 며칠 동안 <다산어록청상>을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 다시 또 한 해를 보내는 자리에서 지난 한 해 내 삶을 돌이켜보는 시간이 되었다. 돌아보니 올해 초에 내가 결심했던 일들이 대부분 아퀴가 없고, 내가 꿈꾸었던 일에도 아직은 열매가 없으니, 헛되이 한 해를 보내고 말았다는 느낌이 가슴을 쳤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다산의 말을 빌리자면, 게으르게 하루 하루를 ‘소일’하다가 어느덧 한 해를 다 보내고 말았다는 느낌이랄까? 그 많은 날들이 흔적도 없이 내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간 듯한 망연함이 결국에는 묵직한 뉘우침이 되어 내 가슴에 쌓였다.
천하에 가르쳐서는 안 되는 두 글자의 못된 말이 있다. ‘소일(消日)’이 그것이다. 아, 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1년 360일, 1일 96각을 이어대기에도 부족할 것이다. 농부는 새벽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애쓴다. 만일 해를 달아맬 수만 있다면 반드시 끈으로 묶어 당기려 들 것이다. 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날을 없애버리지 못해 근심 걱정을 하며 장기 바둑과 공차기 놀이 등 하지 않는 일이 없단 말인가? (20쪽, 원전 :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
책을 펼쳐 몇 쪽 읽지 않아서 마주친 이 글은 누구랄 것도 없이 바로 내게 호통치는 소리로 들렸다. 아, 나 역시도 ‘소일’ 삼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산이 내리치는 죽비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어지는 여러 편의 글들도 자주 내 어깨를 후려쳤다.
2.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다산 정약용은 경세치용(經世致用)에 관심이 많았던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학자이다. 경세(警世)에서 경제(經濟)까지 모두 열 가지 주제로 나누고 주제별로 다산의 글 12편씩을 골라서 싣고 있는 이 책 <다산어록청상>에서도 다산의 그런 면모는 어김 없이 나타난다.
옛것에 안주함을 경계하고, 군비 확충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군포제 폐지를 주장하고, 양반의 폐해를 지적하고, 향리의 탐욕을 질타하는 등 세상을 다스리는 바른 도리와 방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글들이 그렇다.
또한 거처를 정하는 법, 땅 고르기와 집 꾸미기 등 생활 공간의 구성에 대해서 조언하고 벼농사와 함께 채소밭과 과수원도 꾸릴 것, 누에를 치고 특용작물을 심을 것 등 다각영농을 권하고 있는 글들에서는 실학 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용후생(利用厚生)’ 이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다산의 글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정치가로서 또한 실학자로서의 면모 이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평생 자기 수양에 힘쓴 강직한 문인, 유배지에서도 두 아들의 공부와 독서에 대해서 가르침을 전하려 애쓴 엄격한 아버지, 그리고 여러 벗들에게 고언을 아끼지 않은 충직한 친구 등 이 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다산의 또 다른 면모들은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오랜 유배생활로 인하여 자식들을 직접 대면하여 가르칠 수 없었던 그가 수시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떨어져 사는 안타까움과 함께 자식들에 대한 속 깊은 사랑도 엿보여 살가운 인간미가 느껴진다.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이 대부분 엄하게 다그치고 꾸짖으면서 가르치고 깨우쳐주는 엄격하고 딱딱한 내용의 글들임에도 불구하고 단호함과 동시에 자상함이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요컨대 아침볕을 받는 곳은 저녁 그늘이 먼저 들고, 일찍 피는 꽃은 빨리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람은 이리저리 옮겨 불어 한시도 멈추는 법이 없다. 이 세상에 뜻을 둔 사람은 한때의 좌절로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한 마리 가을 매가 하늘을 박차고 오르는 기상이 있어야 한다. 눈은 건곤을 작게 보고, 손바닥은 우주를 가볍게 보아야 한다. (36쪽, 원전 : ‘학유가 떠날 때 노자 삼아 준 가계(贈學遊家誡)’)
다산이 아들 학유에게 준 이 글에서도 아들에게 당부하는 말 이면에는 멸족한 가계의 아비로서 자식의 장래를 깊이 염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다산이 그런 안타깝고 염려스러운 마음을 옆으로 밀어내고 확신에 찬 분명한 어조로 아들에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누구의 삶도 아닌 바로 제 자신이 스스로 겪은 삶을 통해서 깨달은 바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위의 글에서 말하고 있는 사나이의 삶은 바로 다산 자신의 삶이기도 했기에 진실하고도 절실한 당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위 글은, 일찍 출세하여 정조의 총애를 받다가 하루 아침에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유배당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독서와 글짓기와 학문에 몰두하여 당대의 가장 뛰어난 문장가이자 실학자로서 이름을 널리 떨치게 된 다산의 삶 전체를 담고 있는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자신이 몸소 체험한 삶의 경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다산의 글들은 마치 창공에서 땅을 내려다보면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한 마리 가을 매의 눈빛처럼 여간 날카롭고 매서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의 글들은 자세를 바로 하지 않고 있다가는 지체 없이 내려치고야 마는 죽비가 되어 비루한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구부정하게 굽은 우리 어깨를 수시로 내려친다.
다산이 대나무처럼 올곧고 맑은 글로써 내리치는 죽비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우리에게 깨우쳐 준다.
옛날에 학문을 하는 것은 다섯 가지였다. 널리 배우고, 따져 물으며, 곰곰이 생각하고, 환히 분변하여, 독실히 행하는 것이 그것이다. 오늘날 학문을 하는 것은 널리 배우는 것 한 가지뿐이다. 따져 묻는 것 이하로는 마음에 없다. 무릇 한나라 때 유학자의 주장에 대해 그 핵심을 묻지도 않고 그 지향하는 뜻을 살피지도 않는다. 다만 마음과 뜻을 오로지 하여 이를 신봉한다. 가까이는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다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멀리는 세상에 보탬이 되고 백성을 좋게 하기를 구하지 않는다. 오직 스스로 널리 듣고 기억력이 좋으며 글 잘 짓고 말 잘하는 것만 뽐내면서 온 세상을 비루하다고 얕잡아볼 뿐이다. (116쪽, 원전 : ‘오학론(五學論)’)
18세기 당시 조선의 학문적 풍토를 비판한 글인데도 21세기 이 시대에 이 글을 읽는 내 가슴이 서늘했다. 이 글을 읽고 부끄러운 이가 어찌 나 하나 뿐이겠는가! 세상에 아는 것 많은 박사들이나 자신이 전공한 분야라면 모르는 게 없다고 자랑하는 숱한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이 글에 붙인 정민 교수의 단상처럼, 요즘 세상에서는 ‘반푼어치 공부도 없는 자들이 박식을 뽐내고 현학을 자랑한다. 입만 열면 비꼬고, 걸핏하면 삐죽댄다.’ 그러니 어찌 부끄럽지 않을쏘냐!
이러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은 몸과 마음을 닦는 공부, 즉 수신(修身)의 바탕이 없이 학문을 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밑바탕이 되는 자기 수양이 덜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산은 올바른 학문의 자세뿐만 아니라 좋은 문장을 쓰고, 훌륭한 시를 쓰는 비결도 바로 기교가 아니라 기본을 갖추는 것에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래서 그의 문장론은 수신론으로 읽힌다.
사람이 문장을 지님은 초목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 심는 사람은 처음 심을 적에 뿌리를 북돋워 줄기를 안정시킨다. 이윽고 진액이 돌아 가지와 잎이 돋아나, 꽃이 피어난다. 꽃은 갑작스레 얻을 수가 없다. 정성을 쏟아 바른 마음으로 그 뿌리를 북돋우고, 도타운 행실로 몸을 닦아 그 줄기를 안정시킨다. 경전을 궁구하고 예법을 연구하여 진액이 돌게 하고, 널리 듣고 예(藝)를 익혀 가지와 잎을 틔워야 한다. 이때 깨달은 바를 유추하여 이를 축적하고, 축적된 것을 펴서 글을 짓는다. 이를 본 사람이 문장이라고 여기니, 이것을 일러 문장이라 한다. 문장이란 것은 갑작스레 얻을 수가 없다. (158쪽, 원전 : ‘양덕인 변지의에게 주는 말(爲陽德人邊知意贈言)’)
3.
이처럼 오랫동안 정성스런 마음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바탕 위에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과 삶의 체험을 통해 깨달은 지혜까지 아로새겨 세상에 내놓은 글들이 바로 다산의 글이다. <다산어록 청상>은 우리 삶의 자세 전반에 걸친 성찰과 충고를 담은 다산의 주옥 같은 글 120편을 한 권의 책에 모두 담아내고 있다.
이 책에 실린 다산의 글들은 짧고 강렬해서 즉시 충격이 오지만 맑고 단단해서 그 여운은 오래 간다. 또한 18세기에 씌어진 다산의 글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신을 호령할 만큼 아직도 힘이 있다. 글 한 편 읽을 때마다 움찔하고 또 한 편 읽으면 부끄럽고 거기에서 한 편 더 읽으면 마침내 깊은 뉘우침이 뒤따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수신도, 책읽기도, 글쓰기도, 학문도, 경제도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마흔을 넘긴 내 삶이 부끄러워졌다. 그런데도 연초에 세웠던 새해 결심들과 목표들,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또 한 해를 보내고 말았으니, 어찌 뉘우침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여기 다산은 뉘우침에도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뉘우침에도 방법이 있다. 만약 밥 한 끼 먹을 사이에 불끈 성을 냈다가 어느새 뜬 구름이 허공을 지나가는 것처럼 한다면 어찌 뉘우치는 방법이겠는가? 작은 허물은 고치고 나서 잊어버려도 괜찮다. 하지만 큰 허물은 고친 뒤에 하루도 뉘우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뉘우침이 마음을 길러주는 것은 똥이 싹을 북돋우는 것과 같다. 똥은 썩고 더러운 것인데 싹을 북돋아 좋은 곡식으로 만든다. 뉘우침은 허물에서 나왔지만 이를 길러 덕성으로 삼는다. 그 이치가 다를 게 없다. (58쪽, 원전 : ‘매심재기(每心齋記)’)
그렇다. 똥이 곡식을 기르는 거름이 되듯이, 뉘우침은 덕성을 기르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정민 교수가 이 글에 부언하고 있는 것처럼, ‘허물이 잘못이 아니라, 뉘우침이 없는 것이 잘못이다. 사람은 뉘우침을 통해서 향상하는 존재다.’ <다산어록청상>을 읽으면서 내가 갖게 된 뉘우침을 오래 간직해서 내년 한 해 발전을 도모하는데 써야겠다.
12월 초 며칠 동안 <다산어록청상>을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 다시 또 한 해를 보내는 자리에서 지난 한 해 내 삶을 돌이켜보는 시간이 되었다. 돌아보니 올해 초에 내가 결심했던 일들이 대부분 아퀴가 없고, 내가 꿈꾸었던 일에도 아직은 열매가 없으니, 헛되이 한 해를 보내고 말았다는 느낌이 가슴을 쳤다.
천하에 가르쳐서는 안 되는 두 글자의 못된 말이 있다. ‘소일(消日)’이 그것이다. 아, 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1년 360일, 1일 96각을 이어대기에도 부족할 것이다. 농부는 새벽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애쓴다. 만일 해를 달아맬 수만 있다면 반드시 끈으로 묶어 당기려 들 것이다. 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날을 없애버리지 못해 근심 걱정을 하며 장기 바둑과 공차기 놀이 등 하지 않는 일이 없단 말인가? (20쪽, 원전 :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
책을 펼쳐 몇 쪽 읽지 않아서 마주친 이 글은 누구랄 것도 없이 바로 내게 호통치는 소리로 들렸다. 아, 나 역시도 ‘소일’ 삼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산이 내리치는 죽비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어지는 여러 편의 글들도 자주 내 어깨를 후려쳤다.
2.
▲ 책표지<다산어록청상> ⓒ 도서출판 푸르메
옛것에 안주함을 경계하고, 군비 확충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군포제 폐지를 주장하고, 양반의 폐해를 지적하고, 향리의 탐욕을 질타하는 등 세상을 다스리는 바른 도리와 방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글들이 그렇다.
또한 거처를 정하는 법, 땅 고르기와 집 꾸미기 등 생활 공간의 구성에 대해서 조언하고 벼농사와 함께 채소밭과 과수원도 꾸릴 것, 누에를 치고 특용작물을 심을 것 등 다각영농을 권하고 있는 글들에서는 실학 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용후생(利用厚生)’ 이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다산의 글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정치가로서 또한 실학자로서의 면모 이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평생 자기 수양에 힘쓴 강직한 문인, 유배지에서도 두 아들의 공부와 독서에 대해서 가르침을 전하려 애쓴 엄격한 아버지, 그리고 여러 벗들에게 고언을 아끼지 않은 충직한 친구 등 이 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다산의 또 다른 면모들은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오랜 유배생활로 인하여 자식들을 직접 대면하여 가르칠 수 없었던 그가 수시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떨어져 사는 안타까움과 함께 자식들에 대한 속 깊은 사랑도 엿보여 살가운 인간미가 느껴진다.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이 대부분 엄하게 다그치고 꾸짖으면서 가르치고 깨우쳐주는 엄격하고 딱딱한 내용의 글들임에도 불구하고 단호함과 동시에 자상함이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요컨대 아침볕을 받는 곳은 저녁 그늘이 먼저 들고, 일찍 피는 꽃은 빨리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람은 이리저리 옮겨 불어 한시도 멈추는 법이 없다. 이 세상에 뜻을 둔 사람은 한때의 좌절로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한 마리 가을 매가 하늘을 박차고 오르는 기상이 있어야 한다. 눈은 건곤을 작게 보고, 손바닥은 우주를 가볍게 보아야 한다. (36쪽, 원전 : ‘학유가 떠날 때 노자 삼아 준 가계(贈學遊家誡)’)
다산이 아들 학유에게 준 이 글에서도 아들에게 당부하는 말 이면에는 멸족한 가계의 아비로서 자식의 장래를 깊이 염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다산이 그런 안타깝고 염려스러운 마음을 옆으로 밀어내고 확신에 찬 분명한 어조로 아들에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누구의 삶도 아닌 바로 제 자신이 스스로 겪은 삶을 통해서 깨달은 바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위의 글에서 말하고 있는 사나이의 삶은 바로 다산 자신의 삶이기도 했기에 진실하고도 절실한 당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위 글은, 일찍 출세하여 정조의 총애를 받다가 하루 아침에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유배당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독서와 글짓기와 학문에 몰두하여 당대의 가장 뛰어난 문장가이자 실학자로서 이름을 널리 떨치게 된 다산의 삶 전체를 담고 있는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자신이 몸소 체험한 삶의 경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다산의 글들은 마치 창공에서 땅을 내려다보면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한 마리 가을 매의 눈빛처럼 여간 날카롭고 매서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의 글들은 자세를 바로 하지 않고 있다가는 지체 없이 내려치고야 마는 죽비가 되어 비루한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구부정하게 굽은 우리 어깨를 수시로 내려친다.
다산이 대나무처럼 올곧고 맑은 글로써 내리치는 죽비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우리에게 깨우쳐 준다.
옛날에 학문을 하는 것은 다섯 가지였다. 널리 배우고, 따져 물으며, 곰곰이 생각하고, 환히 분변하여, 독실히 행하는 것이 그것이다. 오늘날 학문을 하는 것은 널리 배우는 것 한 가지뿐이다. 따져 묻는 것 이하로는 마음에 없다. 무릇 한나라 때 유학자의 주장에 대해 그 핵심을 묻지도 않고 그 지향하는 뜻을 살피지도 않는다. 다만 마음과 뜻을 오로지 하여 이를 신봉한다. 가까이는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다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멀리는 세상에 보탬이 되고 백성을 좋게 하기를 구하지 않는다. 오직 스스로 널리 듣고 기억력이 좋으며 글 잘 짓고 말 잘하는 것만 뽐내면서 온 세상을 비루하다고 얕잡아볼 뿐이다. (116쪽, 원전 : ‘오학론(五學論)’)
18세기 당시 조선의 학문적 풍토를 비판한 글인데도 21세기 이 시대에 이 글을 읽는 내 가슴이 서늘했다. 이 글을 읽고 부끄러운 이가 어찌 나 하나 뿐이겠는가! 세상에 아는 것 많은 박사들이나 자신이 전공한 분야라면 모르는 게 없다고 자랑하는 숱한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이 글에 붙인 정민 교수의 단상처럼, 요즘 세상에서는 ‘반푼어치 공부도 없는 자들이 박식을 뽐내고 현학을 자랑한다. 입만 열면 비꼬고, 걸핏하면 삐죽댄다.’ 그러니 어찌 부끄럽지 않을쏘냐!
이러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은 몸과 마음을 닦는 공부, 즉 수신(修身)의 바탕이 없이 학문을 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밑바탕이 되는 자기 수양이 덜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산은 올바른 학문의 자세뿐만 아니라 좋은 문장을 쓰고, 훌륭한 시를 쓰는 비결도 바로 기교가 아니라 기본을 갖추는 것에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래서 그의 문장론은 수신론으로 읽힌다.
사람이 문장을 지님은 초목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 심는 사람은 처음 심을 적에 뿌리를 북돋워 줄기를 안정시킨다. 이윽고 진액이 돌아 가지와 잎이 돋아나, 꽃이 피어난다. 꽃은 갑작스레 얻을 수가 없다. 정성을 쏟아 바른 마음으로 그 뿌리를 북돋우고, 도타운 행실로 몸을 닦아 그 줄기를 안정시킨다. 경전을 궁구하고 예법을 연구하여 진액이 돌게 하고, 널리 듣고 예(藝)를 익혀 가지와 잎을 틔워야 한다. 이때 깨달은 바를 유추하여 이를 축적하고, 축적된 것을 펴서 글을 짓는다. 이를 본 사람이 문장이라고 여기니, 이것을 일러 문장이라 한다. 문장이란 것은 갑작스레 얻을 수가 없다. (158쪽, 원전 : ‘양덕인 변지의에게 주는 말(爲陽德人邊知意贈言)’)
3.
이처럼 오랫동안 정성스런 마음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바탕 위에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과 삶의 체험을 통해 깨달은 지혜까지 아로새겨 세상에 내놓은 글들이 바로 다산의 글이다. <다산어록 청상>은 우리 삶의 자세 전반에 걸친 성찰과 충고를 담은 다산의 주옥 같은 글 120편을 한 권의 책에 모두 담아내고 있다.
이 책에 실린 다산의 글들은 짧고 강렬해서 즉시 충격이 오지만 맑고 단단해서 그 여운은 오래 간다. 또한 18세기에 씌어진 다산의 글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신을 호령할 만큼 아직도 힘이 있다. 글 한 편 읽을 때마다 움찔하고 또 한 편 읽으면 부끄럽고 거기에서 한 편 더 읽으면 마침내 깊은 뉘우침이 뒤따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수신도, 책읽기도, 글쓰기도, 학문도, 경제도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마흔을 넘긴 내 삶이 부끄러워졌다. 그런데도 연초에 세웠던 새해 결심들과 목표들,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또 한 해를 보내고 말았으니, 어찌 뉘우침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여기 다산은 뉘우침에도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뉘우침에도 방법이 있다. 만약 밥 한 끼 먹을 사이에 불끈 성을 냈다가 어느새 뜬 구름이 허공을 지나가는 것처럼 한다면 어찌 뉘우치는 방법이겠는가? 작은 허물은 고치고 나서 잊어버려도 괜찮다. 하지만 큰 허물은 고친 뒤에 하루도 뉘우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뉘우침이 마음을 길러주는 것은 똥이 싹을 북돋우는 것과 같다. 똥은 썩고 더러운 것인데 싹을 북돋아 좋은 곡식으로 만든다. 뉘우침은 허물에서 나왔지만 이를 길러 덕성으로 삼는다. 그 이치가 다를 게 없다. (58쪽, 원전 : ‘매심재기(每心齋記)’)
그렇다. 똥이 곡식을 기르는 거름이 되듯이, 뉘우침은 덕성을 기르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정민 교수가 이 글에 부언하고 있는 것처럼, ‘허물이 잘못이 아니라, 뉘우침이 없는 것이 잘못이다. 사람은 뉘우침을 통해서 향상하는 존재다.’ <다산어록청상>을 읽으면서 내가 갖게 된 뉘우침을 오래 간직해서 내년 한 해 발전을 도모하는데 써야겠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ㅇ 정민 지음
ㅇ 도서출판 푸르메 펴냄
ㅇ 2007년 9월 10일 1판 1쇄
ㅇ 값 12,800원